2004년 계명대 산악회 에베레스트 원정대 단장…김상홍 계명대 체육대학 석좌교수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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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1-01   |  발행일 2016-01-01 제44면   |  수정 2016-01-01
“백준호가 ‘교수님 6천m까지 같이 갑시다 업고서라도 모시겠다’고 했지요”
2004년 계명대 산악회 에베레스트 원정대 단장…김상홍 계명대 체육대학 석좌교수
김상홍 전 계명대 에베레스트원정대 단장이 지난해 11월 히말라야 페리체에 있는 에베레스트 메모리얼 추모비를 찾아 백준호·박무택·장민과 에베레스트에서 숨진 산악인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사진제공=김상홍 계명대 석좌교수>


가슴에 깊은 상처…아물길 없다
히말라야 들를 때마다
에베레스트 메모리얼 찾아 추모

 

2007년 에베레스트 실버원정대
부대장으로 활동하기도
앞으로 10년간
매년 5천m 이상 고산 등반 계획

3월, 햇살은 가장 먼저 에베레스트 이마에 금빛으로 날이 서다가 풀잎 사이로 다급하게 내려서면 금새 눈부신 미소로 흩어진다/능선을 따라 내딛는 바람결은 풍경을 흔들어 숨돌리게 하고/영겁을 꿈꾸어도 사그라들지 않는 젖빛 속살을 쿰부 골짜기로 숨기며 달아나는 두드코시 강물/강물은 뒤돌아보지 않고 소리치며 달아난다/‘사가르마타 사가르마타’하며.

김상홍 계명대 체육대 석좌교수가 지은 ‘에베레스트의 3월’이란 시다. 그는 지난 해 10~11월 히말라야산맥 고쿄리(해발 5천360m)~촐라(5천330m)~칼라파타르(5천550m)까지 홀로 17일간 등반했다. 재작년엔 히말라야 랑탕과 고사인쿤드, 낭시사카르카 일대를 60대 후반, 70대 초반 5명과 함께 등정했다. 김 교수는 지금까지 15차례나 네팔을 방문해 히말라야에 올랐다. 그가 히말라야를 자주 찾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제자들이 거기 묻혀 있어서다. 그가 말하는 제자란 누구일까. 바로 2004년 5월 히말라야에서 사망·실종한 계명대산악회 백준호, 박무택, 장민이다.

김 교수는 2004년 당시 계명대산악회 에베레스트원정대 단장이었다. 그는 원정대와 동행해 1주일간 베이스캠프에서 숙식을 같이 하며 끈끈한 정을 나눴다.

“아내와 함께 얼마 전 영화 ‘히말라야’를 봤습니다. 지난해 에베레스트 메모리얼을 찾은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영화를 보니 마음이 짠해 눈물이 나더군요. 대명대 대신 계명대라는 학교명이 들어갔으면 좋았을텐데. 섭섭한 마음이 좀 들어요. 그땐 티벳에서 올라갔습니다. 티베트에선 에베레스트를 초모랑마라고 하지요. 1주일간 같이 머물렀는데 백준호가 나를 보고 ‘교수님 6천m까지 같이 갑시다. 제가 업고서라도 모시고 가겠습니다’고 했지요. 참 존경할 만한 산악인입니다. 난 그때 고소증이 왔습니다. 두통이 나고 구토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산했지요. 가슴에 3명의 별을 묻고 왔습니다. 사고 후에도 유가족과 함께 현장에 갔는데 이미 어쩔 도리가 없었지요.”

그는 그때의 회한과 충격으로 히말라야를 들를 때마다 거의 빠짐없이 에베레스트 길목 페리체(Pherich)에 있는 ‘에베레스트 메모리얼’(에베레스트를 등반하다 목숨을 잃은 산악인을 기려 세운 추모비)을 찾아 3명의 제자를 기리며 추모를 한다. 그가 지은 책 ‘실버원정대, 에베레스트 정상에 서다’에 그가 느낀 아픔을 시로 적고 있다.

내가 왔네/죄스럽네/이것이 산 자의 몫인가/그대들의 숭고한 인간 정신은 산 자보다 더욱 살아 우리의 가슴을 채우고 있네/에베레스트의 햇살과 바람이 느껴지는가/그대들,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시울을 그만 붉히게 하고 평온 속에 영면하게나.(후략)

김 교수는 2007년 한국산악회가 기획한 에베레스트 실버원정대에 부대장으로 선정된 이력을 갖고 있기도 하다. 당시 그는 베이스캠프2(해발 6천300m)까지 올랐다 아쉽게 하산했다.

2004년 계명대 산악회 에베레스트 원정대 단장…김상홍 계명대 체육대학 석좌교수
김상홍 계명대 체육대 석좌교수가 과거를 회상하고 있다.

“실버원정대는 2007년 고(故) 고상돈 에베레스트 등정 30주년을 맞아 60세 이상 75세까지 산악인이 참여해 꾸린 에베레스트원정대입니다. 그해 7월부터 49명이 지원해 매주 주말과 휴일 북한산, 설악산, 한라산, 지리산을 등반하며 혹독한 훈련을 했습니다. 이 가운데 28명이 선발됐으며 이듬해 3월 하순 최종관문을 통과한 8명의 대원과 지원 대원 5명이 에베레스트로 향했지요. 히말라야 아일랜드피크(6천198m)를 등정하고 정상 공격조 4명을 선정했는데 당시 김성봉, 조광현, 이장우씨와 함께 저도 포함됐습니다. 김성봉 대장은 당시 63세로 맨발로 마라톤풀코스를 완주한 경험이 있는 분이었고 이장우씨는 27일간 무보급으로 백두대간을 종주했죠. 또 조광현씨는 UDT 초대 창설대장이었습니다. 다들 쟁쟁한 분들이었죠. 전 개인적으로 6천m 등좌가 목표여서 사실 아일랜드피크 등정에 만족했습니다. 욕심을 내 정상까지 간다고 하면 동료들이 부담을 갖게 되니 포기했지요. 통풍이 다시 찾아왔고 설맹 현상도 있었습니다. 결국 극한의 어려움을 뚫고 김성봉 대장이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해 한국산악 역사상 최고령(63) 에베레스트 등정 산악인이란 기록을 남겼지요. 이후 김 대장과 저는 깊은 우정을 나눴습니다. 둘이서 지난해 에베레스트를 다시 등정하자고 약속을 했습니다. 제 나이가 69세이고 김 대장이 72세인데 김 대장이 오르면 세계 최고령 에베레스트 등정기록을 갖고, 제가 오르면 한국 최고령 기록을 깰 수 있다고 했지요. 그런데 김 대장에게 갑작스러운 병마가 찾아와 돌아가셨습니다. 참 좋은 분이었는데 안타깝습니다.”

그는 2007년 당시 발등과 무릎 통증 때문에 베이스캠프로 돌아와 휴식하던 중 페리체에 있는 추모비를 찾아 세명의 제자와 영혼의 대화를 나눴다고 했다.

“2004년 당시 단장을 맡은 사람으로서 깊은 상처가 가슴에 남아 아물 길이 없었지요.”

김 교수의 고산등반은 히말라야뿐만이 아니다. 97년 영국 방문교수 시절엔 아프리카 최고봉인 킬리만자로(5천895m)를 홀로 등정했다.

“안내자 없이 혼자 갔습니다. 말라리아 예방주사 등을 맞아 몸살이 난 상태에 등반을 했지요. 오르는 도중에 한 일본인이 사망해 들것에 실려 내려오더군요. 정상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저체온증으로 사망할 뻔 했습니다.”

김 교수는 현재 계명대 체육대 사회체육학과 석좌교수다. 춘천고 재학시절엔 역전마라톤 선수였다. 강원도지사 추천을 받아 육상특기생으로 경북대 사범대 체육학과에 입학해 전국체전에 경북과 강원대표로 출전하기도 했다. 그는 경북대를 졸업하고 성균관대에서 석사, 동아대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72년 대구 효성여중 체육교사를 했습니다. 취미가 사진이었는데 대구사우회 회원이었지요. 오지탐험이나 다큐멘터리 사진에 관심이 많아 영남일보 사진부기자 시험에 응시해 합격했어요. 그런데 사진기자가 그런 것만 하는 건 아니란 걸 알고 사진기자직을 포기했습니다.”

김 교수는 경주전문대에 잠깐 적을 뒀다 계명대로 와 사범대 교양과정부 교수를 하다 84년 계명대에 체육과가 새로 생기면서 28년간 근무했다. 그는 2012년 퇴직 후 석좌교수로 있다. 재직시절엔 육상부를 지도하면서 김종윤, 김영길과 같은 걸출한 장거리 육상선수를 길러내기도 했다. 그는 대학에서 아웃도어스포츠를 주로 가르치면서 산과 바다 등 자연과 자연스레 친숙해졌다. 학생들과 지리산 종주를 32회나 했다. 계명대산악회와의 인연은 2000년 학생처장을 할 때부터 시작됐다.

“계명대의 이미지 전환을 위해 2002년 7월 해외환경봉사단을 만들어 중국 대학생과 황사예방을 위해 사막에 측백나무 5만 그루를 심고 돌아왔습니다. 그해 12월엔 네팔환경봉사단, 2004년 1월엔 베트남환경봉산단을 조직했지요. 산악회 지원도 그 일환입니다. 산악회가 거칠면서도 강인한 이미지가 있잖습니까. 2004년 에베레스트 원정대에 지원한 금액이 5천만원이었어요. 좀 더 지원을 했으면 셰르파도 더 쓸 수 있었을 텐데 그게 늘 마음에 걸리죠.”

김 교수는 퇴직 후 청년 시절부터 꿈꿔왔던 오지탐험, 어드벤처의 세계로 다시 뛰어들었다. 그간 안나푸르나를 비롯한 히말라야 트레킹, 유럽과 남미 일주 배낭여행, 뉴질랜드 남·북섬 탐험 등을 다녀왔다. 그는 술과 담배를 하지 않고 꾸준히 체력관리를 해 오고 있다. 새해엔 가까운 산악인과 함께 아일랜드피크에 다시 도전할 계획을 갖고 있다. 또 앞으로 10년간 매년 5천m 이상 고산을 등반할 예정이다.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 단지 내 헬스장에서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며 하루에 평균 15㎞ 정도를 달리고 있습니다. 1주일에 두번은 자전거를 타는데 70~80㎞를 갑니다. 아무리 첨단시대라 하더라도 몸과 건강은 자신밖에 관리해 줄 사람이 없지요.”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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