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교 시인보호구역 대표, 문학다방 차린 詩人 “독자·시민과 소통…커피는 팔지 않아요”

  • 이은경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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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3-04   |  발행일 2016-03-04 제35면   |  수정 2016-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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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정훈교씨가 자신이 운영하는 ‘문학다방 시인보호구역’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씨는 예술·인문 공동체를 표방하는 이곳에서 문학, 미술, 음악 등과 다양한 협업을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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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다방 시인보호구역’에 걸린 캘리크래피 작품들. 정씨는 이곳에서 시구(詩句)를 캘리그래피로 그려 상업화하는 작업도 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오후. 때늦은 2월의 눈발을 헤치며 대구시 중구 동인동 뒷골목을 헤맨다. 고만고만한 가게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동네는 추운 날씨 탓인지, 경기 탓인지 인적조차 드물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경로 안내를 종료합니다.” 친절한 ‘내비씨’의 반복된 멘트에도 불구하고 ‘시인보호구역’이라는 간판은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결국 전화를 건다. “건물이 모두 하나의 지번으로 되어 있어서 내비게이션을 따라와도 종착지는 제각각”이라는 정훈교 대표의 설명에 잠시 위안을 얻는다. 그 정도로 내가 길치는 아니지. 애꿎은 아이큐 탓, 부모 탓을 할 뻔했다.

‘문학다방 시인보호구역’. 시인인 정씨가 예술·인문 공동체를 표방하며 선보인 공간이다. 한적한 뒷골목, 내비게이션을 따라와도 찾기 힘든 곳에 ‘시인 보호 구역’을 선포한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차를 몰고 드라이브 스루를 이용해 톨사이즈 아메리카노를 사는 요즘 세상에 다방이라니. 그것도 문학 다방. 게다가 시인 보호 구역은 또 뭔가.

4년前 김광석길 ‘시인보호구역’ 마련
문인들과 공부하다 비싼 貰에 쫓겨나
작년 5월 “스스로 보호해야겠다” 결심
10년 다니던 회사 관두고 전업작가로

예술문화조합 ‘청연’ 협업 경험 바탕
예술·인문공동체 표방 ‘문학다방…’
11월 동인동 한적한 뒷골목 새 터전
詩 그리는 캘리그래피 등 다양한 시도


◆김광석길에 튼 첫 둥지를 잃다

“방천시장, 김광석 벽화거리 사람들이 흘리고 간 지문을 지우며 비가 온다/ 나른한 오후에 나무가 된 사내는, 가을을 지나 나뭇잎 다 떠나보내고 어느 봄, 꽃이 되어 아파트 열기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골목은 사내가 빠져나간 것과 상관없이 낡아갈 것이고 점점 무덤의 곡선을 닮아갈 것이다/ 서른 즈음의 휴식도 잠깐 동안의 불륜이거나 짧은 사랑으로 끝나는 것이다/ 어쩌면 사내는 시(詩)를 낳기도 전에 꼬리 없는 온음표로 태어나, 어느 새벽 내리는 비처럼 모든 것을 지우며 돌아갈 것이다/ 많이 가벼워진 것들이 종국엔 떠나거나 무너지는 것처럼”

(벽화에 세 들어 사는 남자-정훈교)

정 시인을 이야기하자면 대구 중구 방천시장 김광석 길에서 시작해야 한다. 2012년이다. ‘시인보호구역’이라는 이름으로 대구지역의 또래 시인들이 함께 모여 시 공부를 하는 공간을 만들었다. 저렴하고 조용하면서도 예술가들이 함께 모여있던 곳이었다. 보증금 없이 월세 10만원. 가난한 예술가에게는 최상의 조건이었다. 김광석과 시인 자신을 오버랩하여 쓴 ‘벽화에 세들어 사는 남자’라는 시도 이즈음 발표했다.

번잡한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한 작고 허름한 공간에서 시를 쓰던 행복한 시절은 그러나 잠시였다. 김광석길에 사람이 몰리자 상업자본이 들어왔고 보호구역은 파괴되었다. 뻔한 결과였지만, 그는 상처를 입고 떠났다. 정확하게는 쫓,겨,났,다.

“문화와 예술이 상업적 자본에 의해 어떻게 파괴되는지를 생생하게 경험했다. 30년 넘게 좌판을 깔고 생업을 이어오던 시장 상인들이 술집과 커피숍에 자리를 내주고 떠나는 것을 보았다. 예술인이라 해도 경제논리가 우선인 시대에는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의 작품 세계를 마음껏 펼치는 일이 자본과 정치 논리에 휩쓸려 상술로 변질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시인보호구역은 이제 시인만을 보호하지는 않는다. 시인보호구역이 아닌, 예술인보호구역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문학, 미술, 음악 등과 협업이 펼쳐지고 있다. 음악 공연이 열리기도 하고, 시를 그리는 캘리그래피와 만나기도 한다. 시낭독회, 문화기획, 디자인, 기획전 등을 아우르는 문화공간이자 예술 현장이다. 지역에서는 드물게 시인이 거리로 나와, 적극적으로 독자와 시민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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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간행물 월간 ‘시인보호구역’.

◆전업 시인의 길로 들어서다

지난해 11월. 동네에 희한한 가게가 문을 열었다. 다방이라는데 커피를 팔지 않는다. 젊은 사장은 사장이 아니라 시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정 사장, 하고 부르면 손사래를 친다. “저는 사장이 아니라 시인입니다. 여기는 다방이 아니고요.” 굳이 사장이 아니라니, 사람들은 이도저도 아닌 그냥 ‘정 선생’이라고 그를 부르기로 한다.

시인보호구역에서 선보이는 인문·예술 프로그램은 다양하다. 시창작 교실, 책쓰기 교실, 맛있는 시읽기, 인문학 특강, 작가와의 대화, 문학기행 등의 문학프로그램부터 문학과 미술, 문학과 연극, 문학과 노래가 함께하는 융합교육프로그램도 열린다. 출판사업의 일환으로 정기간행물인 월간 ‘시인보호구역’도 발간하고 있다. 인문학을 콘텐츠로 하는 지역의 독립문화공간을 소개하기도 하고, 시인의 신작시와 젊은 예술가의 인터뷰도 실려 있다. 매월 300부를 찍어 100부는 정기구독자에게 발송하고 나머지는 무료 배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사명감 같은 게 있다. 한때 대구는 문학의 도시였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문학의 표현 방법도 시대에 맞게 변해야 한다. 그래서 문학다방을 찾는 예술가들과 이야기를 많이 한다. 문학을 넘어 여러 가지 다른 장르의 예술인들과 결합을 시도하고 있다. 예술문화협동조합 ‘청연’에서 했던 예술가 협업 경험이 큰 바탕이 되고 있다. 지난해 8월 서울서 활동하는 ‘트루베르’라는 시노래 힙합 팀과 대구의 젊은 시인들이 함께 무대에 오르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기도 했다. 이젠 문학다방에서 이런 일들을 이어갈까 한다.”

‘청연’은 2014년 4월 출범한 전국 최초 범예술인 협동조합이다. 미술, 연극, 국악, 문학, 사진, 그림, 공연, 음악, 디자인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인 20여명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예술제를 선보이고 예술인 인큐베이팅과 시민참여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변방의 작가를 자처하다

시인 스스로를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오래 전부터다.

회사에서 경영관리쪽 일을 했다. 신경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채용에서 급여 책정, 인사노무 등. 머리와 마음이 쉴 틈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시와 멀어지고 시 쓰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만 10년을 채우고 퇴사를 했다. 지난해 5월부터 ‘전업 작가’로 지내고 있다. 시인으로 산다는 건 낭만적이진 않다. 자본이 최고의 가치인 시대, 더구나 스마트폰 등장 이후로 가볍고 빠른 ‘읽기’가 대세가 되었다. 시는 찬찬히 음미하면서 곱씹어 먹는 건데, 씹기도 전에 삼켜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문학은 위기고, 생계는 여전히 힘든 부분이다. 독자 또는 시민과 소통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사업으로 치자면 지난해까진 준비 단계였다. 이제부터 일을 꾸며보려고 한다. 그는 말한다. “비록 변방에 있지만 나의 작가로서의 자존심은 떳떳하다”고.

“우리나라 문화예술의 중심은 서울이다. 서울 아니면 모두 지방이라고 이야기한다. 문화 권력이 서울에 있다고 해서 서울로 갈 것이 아니라 지역, 즉 변방에서 꾸준히 노력하고 활동하면 그게 바로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고군분투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우스갯소리로 ‘독립군’이라고도 한다. 기존 질서에 편입되지 않고, 독립적 개체로서 보수적 문화에 도전하고 싶었다. 시집 출간도 그랬다. 페이스북에 시를 올렸는데, 그걸 보고 서울에 있는 한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시인들이 자비로 시집을 내는 경우가 많은데, 첫 시집이 출판사의 기획 작품으로 출간됐다. 책이 팔린 후에 인세를 결산하는 방식이 아니라 책 출간과 동시에 출간한 전권에 대한 인세를 미리 받는 선인세를 받았다.”

달라진 세태에 그는 지금 적응 중이다. 페이스북, 블로그, 캘리그래피 등으로 시를 옮기고 발표할 지면을 직접 만들고 있다.

“침침한 골방에서 백촉등(白燭燈) 밝히며 시를 쓰는 시인의 모습은 오래 전에 사라졌다. 예술은 ‘창작’을 넘어 ‘제작’을 겸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게 되었다. 독자(관객)는 이미 고차원적이고 혁명적이다. 더이상 개인적이고 배타적이며 아날로그화된 옛 풍경에 머물러 있을 순 없다. 종이 텍스트는 이미 옛것이 되고 말았다. 그렇기에 텍스트와 더불어 새로운 변화를 꾀하여야 한다.”

이제 그는 보호구역에서 나와 세상과 소통하고자 한다. 그렇게, 거창하진 않지만 한 걸음씩 나가고자 한다.

글=이은경기자 lek@yeongnam.com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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