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박두봉 한국희망재단 대구지부장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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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4-05 08:28  |  수정 2016-04-05 08:28  |  발행일 2016-04-05 제29면
“죄는 밉지만…못 배우고 소외된 이들 보듬어야죠”
20160405
칠곡 아동학대 부부를 돕는 박두봉 제오테크 대표가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하고 있다.

“영남일보 애독자인데, 지난 2월22일자 1면에 보도된 칠곡 ‘아동학대 부부’ 기사를 읽고 참으로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들 부부도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을 텐데 어쩌다 저 지경까지 됐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어요. 저에게도 20대 초반의 아들이 있습니다. 아직 덜 성숙한 나이가 아닙니까.”


칠곡 아동학대 부부 ‘멘토’ 자처
영치금 넣어주고 재판비용도 부담
“부부 눈물로 반성”…석방 탄원서



한국희망재단 대구지부장 박두봉 <주>제오테크 대표(61)는 스무 살을 갓 넘긴 젊은 재혼부부가 무직 상태에서 자녀 다섯을 키우다 아동학대와 유기죄로 구속기소돼 친권을 정지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지난달 초 이들 부부를 면회하러 무작정 칠곡경찰서로 갔다.

“10평(33㎡)남짓한 원룸에서 이들 부부와 3~7세된 아이 넷, 3개월된 영아, 그리고 무직인 누나 부부가 함께 오밀조밀 살았다고 하더군요. 딱하지 않습니까. 기초생활수급자로 긴급구호자금을 받아 사는데 남편은 당시 도배기능사자격을 따 취직을 하려는 상태에서 구속됐습니다. 아이가 보고 싶다며 부부가 눈물을 흘리며 죄를 뉘우치고 반성하더군요. 저에게 아이만 키울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 간청해요. 둘 다 철없는 청소년기에 각각 동거를 해 아이를 낳아 살다 상대와 헤어진 상태에서 서로 만나 인연을 맺고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칠곡으로 왔는데, 사랑하는 자식들의 얼굴조차 못 보게 되니 회한이 밀려올 수밖에요.”

박 대표는 이들 부부와 아무 연고도 없었지만 면회를 가 영치금과 사식을 넣어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그날밤 이들 부부의 모습이 눈에 밟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튿날 그는 담당 검사에게 ‘부부가 석방이 돼 사회로 나오면 오손도손 살 수 있도록 멘토가 돼주고 일자리도 알아보겠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썼다. 그리고 변호사를 찾아가 착수금을 내고 재판 비용을 댔다. 이들 부부의 살림살이도 자신의 공장 안으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

“저 또한 지독하게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중학교를 겨우 마치고 공고를 졸업한 뒤 현장에서 기계·금속부품 제작을 했습니다. 고생을 많이 했지요. 그러다 서른여섯 살에 대구 3산단에 밸브, 배관자재류 공장을 설립하고 미국, 캐나다 등지에 생산품을 전량 수출하고 있습니다.”

박 대표는 지금은 자수성가한 중소기업인이지만 어렵게 살아와 가난하고 못 배운 이들의 마음을 안다. 그는 서른 살에 자립했을 때 대구가톨릭근로자회관 야학에서 청소년에게 글을 가르쳤다. 10여년 전부턴 가톨릭노동청년회 출신을 중심으로 한국희망재단을 설립해 5년 전부터 대구지부장을 맡고 있다. 한국희망재단은 초대 재단이사장이 함세웅 신부로 우리나라와 지구촌 곳곳에서 가난하고 못 배운 이들을 돕는 구호단체다.

박 대표는 2년전 아프리카 탄자니아 킬리만자로주(州) 산간지역에 공공보건소를 설립하는 데 수천만원을 기부한 적이 있다. 또 인도 달리트공동체 공부방을 비롯해 방글라데시, 필리핀, 짐바브웨, 부룬디 등 저소득 국가 등지에 다양한 방법으로 기부를 하고 있다. 최근엔 몽골의 중증장애인 어머니들이 자립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 밖에도 남모르게 여러 선행을 실천하고 있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는데, 쑥스럽습니다. 다만 이들 부부의 가정이 이번 사건으로 정상적인 가정이 돼 아이들과 행복하게 산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박 대표는 도산우리예절원 부원장이기도 하다. 그는 고전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한 그릇의 밥과 국을 얻으면 살고, 얻지 못하면 죽더라도, 욕을 하며 듣기 싫은 소리로 준다면 길가던 나그네도 그것을 받지 않을 것이요, 발로 차서 준다면 거지도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란 맹자의 말을 늘 마음에 새기려고 합니다. 나라가 구호자금을 줘도 받는 이의 자존심을 뭉개선 안 될 것입니다. 이들 부부가 충남 논산에 있을 땐 조금 벌어도 행복했는데 칠곡으로 와서 정부자금에 기댄 것에 대해 후회를 하더군요. 국가가 주는 돈으로 치킨을 시켜먹는 등 돈을 펑펑 썼다고 알려진 데 대해 모멸감을 갖고 있어요. 우리나라가 청년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정책을 내놓는데 우리사회에서 정작 나락으로 떨어진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자리 박람회는 없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박 대표는 이들 부부를 이렇게 내버려 둔 데 대해 국가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했다.

“결혼해도 아이 키우기 힘들다고 하나만 낳고 심지어 자기 자식도 팽개쳐버리는 세태에 그래도 없는 처지에 아이를 키워보겠다고 발버둥치는 젊은이가 있다는 게 고맙지 않습니까. 부부 둘 다 편모·편부가정에서 자라 마음의 상처가 큽니다.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만나 새출발하려는 부부가 자립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자녀를 때리고 묶은 죄는 밉지만 사람을 미워해선 안 됩니다. 못 배우고 가난하며 소외된 이들을 국가가 더 보듬어야 합니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an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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