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미륵의 천불천탑’ 전남 화순군 도암면 운주사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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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5-20   |  발행일 2016-05-20 제39면   |  수정 2016-06-17
말없이 천 년을 누운 부부佛…일어날 날만 기다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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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국사가 천 번째 만들었다는 동양 최대의 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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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 경내 초입에서 보는 가장 높은 탑이며 돛대탑인 9층석탑과 나란히 서있는 7층석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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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하고 단순하며, 마치 하층계급의 가족들이 모여있는 것 같은 석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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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국사와 동자승의 전설에서, 동자승은 여기 머슴미륵이 되어 천년을 지킨다.

천불천탑 전설 보여주는 석불·석탑들
다양한 표정·크기의 불상 정겹고 소박
실패탑·항아리탑·4층탑 등 개성만점

북두칠성 배열의 7개 원반형 칠성바위
동자승 벌 받아 변했단 머슴미륵 눈길
8부 능선 공사바위선 경내 풍광 한눈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20대 총선을 보며 가진 의문이다. 국민을 잘살게 한다면서 후보자들이 내건 공약은 타당성이 적고, 신뢰도가 낮았다. 정치인은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 남을 다스린다는 것은 자신이 바로 서고 난 후의 일이다. 총선에서 선출된 국회의원 중 국민이 믿고 존경하는 정치인은 몇이나 되겠는가. 어느 시대라도 왕과 지배자는 거의 다 탐욕스럽고 착취에 능하며 오만하고 인문학적 자질 부족으로 판단과 결정이 흐린 과오를 범했다. 전제군주제가 종료되고 민주주의가 꽃을 피워도 선출된 지도자들의 자질은 여전히 그대로여서, 그것은 백성의 삶에 여과없이 그대로 투영되었다. 그러므로 역사는 항상 민중의 고통과 헐벗음을 중심으로 기록되었다.

이번 20대 총선을 보라. 그것이 어디 민주주의인가. 이런 아귀다툼의 정치가 국민을 약비나게 한다. 오죽하면 선거 전에 교만하게 걷다가, 선거 중엔 엎드리고 절하다가, 선거 마치면 다시 교만하게 걸어가는 모습의 영상을 반복해서 보여주겠는가. 역사와 정치는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끝없이 반복하였다. 그러니 민중의 고단한 삶이 어디서 끝이 나겠는가. 그래서 항상 농투성이나 무지렁이 같은 민중이 바라는 것은 지금이 아닌 다음 세계다. 민중에게 다가오는 새 세상. 우리나라 시골, 특히 평야가 많아 그에 비례해 가렴주구가 자심했던 호남지방에 다가오는 미래불인 미륵신앙이 번성했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이상세계를 가져오는 미륵의 성지

인간은 누구나 꿈과 미래를 가슴에 품고 산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꿈을 먹고 살며, 미래를 키우고 산다. 먼 훗날 중생을 구제하고, 사시사철 꽃이 피며, 아름다운 새들이 날아다니고 우짖는, 젖과 꿀이 넘쳐흐르는 유토피아를 갈망하며 산다. 이러한 이상 세계를 가져오는 것이 미륵이다. 전남 화순군 도암면에 있는 운주사는 바로 미륵의 성지다.

안갯속에 늦은 봄비가 우련하게 내리는 운주사 경내는 적막하다 못해 신비하다.

초입에 서 있는 9층 석탑은 10.7m로 운주사에서 가장 높은 탑이며, 운주사의 돛대 탑이라 부르기도 한다. 천불천탑의 마중물 탑이다. 고졸한 품격도 없이 수수하며 늘씬한 모습으로 서있는 탑이 뒤쪽 3기의 운주사 7층 석탑과 곡선으로 정렬하여 만드는 기하학적 구도가 아름답다. 미륵세계는 이러한 곳이 아닐까 하는 영감이 고리눈을 뜬다. 우로 암석의 언덕 아래 ‘석불군 가’로 분류된 돌장승 같은 석불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소박하고 단순하다. 가식이라고는 없다. 석불 위 암벽에는 5층 석탑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우측 동산 아래에는 ‘석불군 나·다’로 이어져 있고, 대웅전 따라가는 길에는 7층 석탑 3기와 궁굴한 불상, 그리고 보물인 팔각지붕 형태의 돌집 안에 돌부처가 등을 맞대고 정확하게 남북으로 앉아 있다. 석조불감 바로 뒤에 원형 다층 석탑이 있다. 이 탑을 어린이들은 햄버거 탑이라 부른다.

이쯤이면 운주사 절에 바싹 다가간 셈이다. 경내의 불상과 석탑은 근엄한 모습이 없다. 이 석불을 만든 장인은 자신과 가족 그리고 이웃의 모습을 불상으로 조각했다. 한결같이 순박하고 못생긴 장승 같은 불상들의 닮은 점은 돌부처의 머리가 길쭉하고, 볼은 광대뼈가 드러나고, 몸은 야위고 홀쭉하다는 것. 천민, 노예, 백정, 하층계급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비록 생김새는 못나고 질박하지만 숭굴숭굴한 자태가 그지없이 너그러워 보인다.

◆천민 모두가 미륵이 되는 곳

운주사 돌부처는 바로 천민 스스로를 나타낸 것이다. 미륵세계는 천민이 만드는 새나라 새세상이다. 현재불 같은 초능력 부처님의 팔만 사천 법문을 뗏목 삼아 피안으로 건너가는 것이 아니고, 천민 자신 모두가 바로 미륵이 되는 것이다. 서구식으로 성육신이 되는 것이다. 현대는 영적인 허기와 갈증에 시달린다. 더 이상 외적인 것에 구원을 바랄 수 없게 되었다. 이제 평범하고 보통 사람인 우리 모두는 멈추어 서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내면의 소리를 진지하게 듣는 미륵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능력과 근기의 인연 따라 깨닫기도 하고, 못 깨닫기도 하는 불평등의 중생계가 아닌, 그 누구라도 깨달아서 마음의 자유와 해방을 만끽하는 미륵이 되고, 미륵세계를 만들어야 한다. 차등의 속계는 얼마나 괴로운 곳인가.

운주사는 현재불이 우리를 이끌어 줄 신화가 되지 못하고, 수도승이 중생을 위한 목적을 제시하지 못하는 이 시대의 파탄과 방향 상실을 바로잡아 항해하는 미륵의 선단 같다.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문 오른쪽에 ‘천불래회운중주’(千佛來會雲中住·천기의 부처가 와서 모여 구름에 머물고), 왼쪽에는 ‘천탑용출편만산’(千塔湧出偏滿山·천개의 탑이 불쑥 솟아나 온산에 펼쳐져)이라는 글귀가 운주사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간간이 흩날리는 봄비를 맞으니 잊고 살아 왔던 은하수가 그립다. 본래는 부처와 마구니가 둘이 아니고, 왕과 백성이 둘이 아니다. 봄비와 봄비가 불러오는 그리운 은하수도 둘이 아니다. 경계가 없으면 모두 부처고 미륵이다.

◆와불이 일어나는 날 새 세상이 오리니

실패꾸리를 닮은 실패탑과 항아리탑, 짝수층인 4층 석탑과 거대한 암벽에 새겨진 마애불을 보고, 공사바위에 오른다. 영귀산 8부 능선에 자리한 공사바위는 과거 도선국사가 운주사를 창건할 때 이 바위 위에서 천불천탑 공사를 관리 감독했다고 하여 공사바위라 부른다. 이 바위에서 바라보는 운주사 경내와 주변의 풍광은 황홀하고 감탄스럽다. 정녕 미륵세계가 이런 곳일 거라고 고개를 주억거린다. 천불천탑은 천수천안이고, 천수천안은 민중의 눈과 손이다. 여기는 분명 새 세상을 꿈꾸는 민중의 화신, 미륵이 천개의 손과 눈으로 중생을 치유하는 큰 약방이다.

이제 돌아 나오면서 우측 언덕으로 오른다. 탑신에 X자 음각이 있는 5층석탑과 7층석탑을 만나고, 역시 석불군을 탐방한다. 조금 더 올라가 운주사의 랜드마크인 머슴미륵과 와불을 본다. 이 와불이 일어서는 날,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전설이 있는 데, ‘장길산’이라는 소설에도 그 내용이 들어 있다.

할아버지 와불은 12.7m이고, 할머니 와불은 10.3m다. 국내에서 가장 큰 한 쌍의 와불은 중성인 부처와는 달리 할아버지 할머니, 즉 가정의 어른을 나타낸다. 이렇듯 미륵은 우리 자신이고, 우리 가정이다. 전설에 의하면 도선국사가 운주사의 천불천탑을 하룻밤 새에 만드는 데 이 와불은 천 번째 부처였다. 도선국사가 와불을 완성하고 일으켜 세우려 할 때 어디서 닭 울음소리가 들려 중단했다고 한다. 도선국사 옆에서 밤새 일을 도운 동자승이 지친 나머지 꾀를 내어 닭울음소리를 낸 것이다. 이에 도선국사는 미운 동자승을 머슴미륵으로 만들어 버렸다. 전설은 미궁이며, 그러나 끝없는 에너지를 간직한 휴화산이다. 석가모니가 80세에 북인도 쿠시나가르에서 입멸할 당시 열반의 모습이 와불이다. 여기 와불은 석가 열반을 뜻하는 것과 달리 앉아 있는 비로자나불과 서있는 석가모니불이 하나의 자연석에 조각되어 누워있는 것으로, 세계적으로 하나뿐인 와불이다.

봄바람 불면 들리는 풍경소리 따라가면 마음의 미륵을 만날 것같다. 와불을 지나 칠성바위를 본다. 원반형의 일곱 개 바위가 있는 것이 칠성바위다. 북두칠성과 같은 배열이고 별의 밝기에 비례해 돌의 크기를 만들었다. 칠성바위는 칠성신앙이다. 북두칠성은 풍요와 생명을 관장하고, 죽은 영혼이 돌아가는 별이다. 우리나라에서 상여가 나갈 때 체백 밑에 칠성판을 놓는 것은 이것을 상징한다. 봄 안개 하염없이 자욱한 날, 남도의 별유천지 운주사에서 미륵을 체험하는 트레킹을 마친다.

글=김찬일(시인·대구문협 이사)
사진=김석(대우모두투어 이사)
kc12taegu@hanmail.net

☞ 여행정보

▶내비게이션 주소: 전남 화순군 도암면 천태로 91-44(운주사)
▶트레킹 코스: 운주사 일주문∼9층석탑∼석조불감∼원형다층석탑∼대웅전∼4층석탑∼명당탑∼공사바위∼5층·7층석탑∼머슴미륵∼와불∼칠성바위∼경내주차장
▶문의: 천불천탑 운주사 종무소 (061)374-0660
▶주위 볼거리: 화순 고인돌 공원, 불회사, 쌍봉사, 보림사, 서재필 생가, 순천고인돌 공원, 보성 대한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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