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시론] 슬픈 취업현실과 패거리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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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9-21   |  발행일 2016-09-21 제31면   |  수정 2016-09-21
[영남시론] 슬픈 취업현실과 패거리문화
최철영 대구대 법학과 교수

대학의 형법교수가 막가파식 범죄를 저지른다. 자신이 근무하는 대학의 교수연구실에서 동료교수 세 명을 칼로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을 한다. 형법을 담당하는 교수는 행위의 도덕적 의미와 사회적 가치에 예민하고, 이를 기초로 법적인 판단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행 후 자살하겠다는 생각으로 동료교수들을 잔인하게 참수하여 살해한 것이다.

다행히 이 사건은 ‘센타크논’이라는 소설 속에서 일어난 허구적 사건이다. 공상과학적인 낯선 소설 제목이지만, 소설은 답답하고 불합리한 취업과 패거리 문화의 부조리한 현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어떤 이유에선지 우리 사회에서 취업은 전적으로 대학의 책임이다. 백년대계(百年大計)로 국가인력정책을 총괄해야 하는 정부는 결과로 취업률만 따지고 대학에 회초리를 휘두른다. 정작 당장 자신에게 적합한 인재를 필요로 하는 기업 또한 대학에 지원은 하지 않으면서 “감 내놔라, 배 내놔라” 요구만 한다.

어쨌든 대학교수로서 취업 준비로 어수선한 4학년 학생을 가을학기에 마주하는 일은 매우 곤혹스럽다. 졸업을 목전에 두고 좁은 취업문을 두드리는 학생들의 애타는 모습을 보는 마음이 결코 편치 않다. 여기저기에 면접을 보지만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뭐라고 위로를 할지도 고민이다. “취업이 참 힘들다”는 제자의 말을 듣는 교수의 마음에도 아픔과 상처가 깊이 남는다.

‘센타크논’은 혹여 취업으로 직행할 수 있는 로스쿨을 졸업한다고 해도 “좋은 집안의 졸업생은 좋은 자리에 취업하고, 보잘것없는 집안의 졸업생은 보잘것없는 자리에 취업한다”고 고백한다. 실력과 소양, 그리고 인성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교수가 제자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마음을 매섭게 다잡아야 한다”는 공허한 위로뿐이다. 금수저와 흙수저의 계급이 고착화되는 불합리한 취업현실에 교수들의 마음은 더욱 무너져 내린다.

명절 때 가족들이 모이면 빈번히 나오는 또 다른 화젯거리는 결혼이야기다. 요즘 혼술족, 혼밥족 그리고 나만을 위한 소비를 아끼지 않는 사람들을 뜻하는 포미(for me)족이 늘면서 이를 걱정하는 기성세대의 고민은 더 심각해졌다. 하지만 혼밥족이란 용어의 등장이 보여주듯이 현실에서 1인 가구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의 ‘2015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1인 가구가 520만3천가구로 전체의 27.2%를 나타내며 최고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10년 전에는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 이제는 어느새 시대의 흐름이 되어 버렸다. 인간은 떼를 지어 생활하는 군집 동물이라지만 혼자 밥 먹으러 다니고 혼자 재택근무하며 독신생활을 하는 모습이 이제 더 이상 어색하지 않다. 시대는 변하고 세상은 바뀌었다.

‘센타크논’의 형법교수는 변화된 시대의 ‘나 홀로 문화’를 상징한다. 살인은 사람의 살해가 아니라 불합리한 취업현실의 반성이며 지나간 과거의 ‘패거리 문화’ 집착에 대한 읍참마속이다. 군집생활이라는 동물적 본능에 충실하고 연줄로 세상을 이어나가려는 관성을 단절하고자 했던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은 연줄이 없어 취업에 실패한 청년으로 인해 눈물을 흘리고 패거리문화의 부조리한 인습에 분노한다. 출신학교가 아닌 개인적 역량이 취업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패거리문화가 아닌, 창발성을 담보할 수 있는 나 홀로 문화가 존중되어야 한다.

취업걱정이 가득인 학생들과 금수저 패거리문화에 휘둘리는 세상 속에서 적자생존(適者生存),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고 학생들을 독려하는 내 자신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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