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세상] <상>내수시장 직격탄

  • 박주희,김미지,황인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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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9-28 07:11  |  수정 2016-09-28 09:15  |  발행일 2016-09-28 제3면
고급·한우음식점 ‘예약 절벽’…노래방·술집 매물도 쏟아져
20160928
김영란법 시행을 하루 앞둔 27일 오후 대구시 동구 신천동의 한 일식집 앞에 김영란법에 맞춘 식사세트 출시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황인무기자 him7942@yeongnam.com

우리 사회를 보다 투명하게 만들기 위해 제정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28일부터 시행됐다. 적용 대상 인원이 400여만명에 이를 정도로 광범위하고, 서비스 등 관련 산업에 미치는 파급력도 크다. 김영란법 시행에 따라 달라지는 우리 사회의 모습, 특히 경제 분야를 중심으로 세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1. 대구 수성구의 한 일식집은 최근 2만5천원짜리 알뜰메뉴를 내놨다. 기존에 이 식당은 점심엔 3만·4만원, 저녁에는 5만~15만원짜리 코스 메뉴를 내놨다. 하지만 김영란법 시행으로 타격이 예상됨에 따라 음식 양을 줄이고, 간단하게 마실 술값을 감안해 5천원의 여유를 둔 ‘영란 메뉴’를 새로 출시한 것이다.

이 식당 사장은 “가뜩이나 콜레라 영향으로 직격탄을 맞았는데 김영란법으로 또 다시 휘청거린다. 손님이 예전보다 10분의 1로 확 줄었다”면서 “김영란법이 경제를 마비시킬지도 모른다”고 한숨을 쉬었다.


2만5천원짜리 메뉴 개발 불구
식당 “소비심리 위축 심화될 것”
기업은 법인카드 회수 몸사리기
술자리 감소로 대리운전도 타격
골프장 “가을시즌 호황은 옛말”



#2. 관공서를 대상으로 한 업무가 많은 대구의 한 기업체는 최근 책임자급 직원의 법인카드를 모두 회수했다. 김영란법의 ‘첫 희생양’이 될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기 위함이다.

이 업체 관계자는 “법인카드를 개별적으로 지니지 않고 필요할 때마다 회사에서 받아가도록 했다. 자연스레 식사 등의 만남이 줄어들 것”이라면서 “김영란법 적용 기준이 애매모호한 상황에서 실수로라도 법 저촉 상황을 초래해 상대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으려고 몸을 사리는 대응책”이라고 말했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소비 위축 심리가 확산돼 가뜩이나 침체에 빠진 지역의 내수경제에 찬바람이 몰아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란파라치’의 주된 목표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고급 음식점은 28일부터 ‘예약절벽’ 사태를 맞았다며 울상이다. 김영란법을 피해 가는 신메뉴를 속속 출시하며 돌파구를 찾고 있지만 타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수성구의 한정식집인 안압정은 10월1일부터 점심·저녁 메뉴를 변경하기로 했다. 기존에는 점심 2만·3만·4만원, 저녁 4만원의 코스 메뉴를 내놓았지만, 다음달부터는 점심·저녁 통일해 2만5천·3만5천·4만5천원짜리 메뉴를 출시한다. 김영란법에 적용받는 고객을 위한 조치라면서 “대세를 따라야지 어쩌겠느냐”며 이 식당 관계자는 푸념했다.

고급 일식집들도 김영란법을 고려해 2만5천원짜리 메뉴를 속속 내놓고 있다. 최근 술값 5천원의 여유를 둔 2만5천원짜리 메뉴를 선보인 동구의 한 일식점 종업원은 “대구에 콜레라 직격탄을 맞아 폐업한 횟집이 여러곳”이라면서 “경제는 심리인데 콜레라에 지진까지 겹치면서 소비 심리가 얼어붙었다. 공직사회를 비롯한 김영란법 대상자는 아예 고급 식당을 기피한다”고 하소연했다.

대부분의 메뉴가 5만원을 넘는 바닷가재 음식점인 수성구 들안길에 위치한 ‘센도리 바닷가재’도 김영란법 대응책으로 다음달 중으로 2만9천900원짜리 ‘김영란 메뉴’를 선보일 예정이다.

하지만 한우음식점은 새 메뉴를 내놓기도 마땅치 않고, 꺼낼 대응책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지난해부터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한우 가격 영향으로 판매가를 더 낮출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대구의 한 갈비식당은 “27일까지는 김영란법 이전 마지막 식사 고객이 있어 그나마 장사가 됐는데, 내일부터가 걱정이다. 평상시엔 월말이나 월초 모임이 잡히는데, 28일 이후는 예약이 없는 상황”이라면서 “김영란법 적용 대상자뿐 아니라 전 국민이 음식은 3만원 이하를 먹어야 한다는 인식을 하는 것 같다. 한우를 수입육으로 바꾸는 식당도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한정식집 용지봉을 운영하는 김수진 한국외식산업협회 대구지회장도 “고급 음식점은 자기 돈을 주고 먹어도 색안경을 끼고 볼 수 있어 기피하고 있는 만큼 영업 위축이 클 것”이라면서 “국내 음식문화가 소비자의 입맛이 까다로워지면서 고급화·다양화되고 있는 상황인데 김영란법 영향으로 저가브랜드가 활황인 구조로 바뀌게 될 것이 걱정”이라고 우울해 했다.

유흥업소도 휘청거리고 있다. 김영란법의 음식 접대비용 한도가 3만원인 탓에 사실상 저녁 술자리가 사라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식당뿐 아니라 노래방, 노래주점 등이 줄고 있다. ‘이러다가는 경제가 스톱된다’고 탄식하는 업주들이 적지 않았다.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김정화씨(57)는 “김영란법 영향으로 식당뿐 아니라 노래방, 노래주점이 줄어들고 있다”면서 “노래방이나 술집의 장사가 안 되면서 매물이 늘고 있고, 시세도 낮아지는 추세다. 보증금이 5천만원 하던 곳이 2천만원으로 떨어진 노래방 매물도 있다”고 전했다.

대리운전업계도 불똥이 튈까 걱정이다. 대구 대리운전업계 관계자는 “김영란법 시행으로 고급 술집이나 식당에서의 대리운전 요청이 많이 줄 것”이라고 말했다.

회원제 골프장 역시 부킹 전쟁이 치열했던 예년의 가을시즌 호황은 이제 옛 풍경이 됐다. 대구의 한 골프장 관계자는 “피크철인데 예전보다 예약이 줄어들었다”면서 “경기불황에 골프장수 증가, 김영란법 영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법 시행 이후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한국골프장경영협회 관계자도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심리적으로 위축된 손님들이 골프장으로 오는 것을 꺼리고 있다. 법 시행 후 한 달 정도는 지켜보고 변화를 확인한 다음 대비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전했다.

박주희기자 jh@yeongnam.com
김미지기자 miji4695@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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