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따라 의성 여행 .9] 가을엔 붉은 열매, 봄에는 노란꽃의 향연 ‘산수유 마을’

  • 류혜숙객원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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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1-24   |  발행일 2016-11-24 제13면   |  수정 2016-11-24
잎은 떨어지고…백만개의 붉은 열매가 익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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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 마을’로 불리는 의성군 사곡면 화전리의 산수유 길은 매년 가을이면 산수유 열매가 붉게 물들어 장관을 이룬다. 마을 한가운데를 흐르는 개울가의 산수유나무는 수령이 300년 이상이다.

차가운 날씨 속에 매끄럽고 기분 좋은 햇살이 퍼져 있다. 무한한 햇살들은, 태양으로부터 할당 받은 온기를 품고 하나하나의 열매들에 도달하고, 차가운 날씨에 빼앗기기 전에 열매의 심장에 그 온기를 저장하느라 바쁘다. 그리하여 내면이 따스한 산수유. 그들은 수억 개의 붉은 별처럼 빛난다. 소슬바람은 나뭇잎들을 땅으로 떨구고, 잎 떨어질 적마다 산수유는 소스라치며 더욱 붉어진다. 가을의 산수유 마을은 동적인 생명력으로 가득하다.

#1. 붉은 향연, 가을의 산수유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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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열매를 맺은 산수유나무가 화곡지 수면 위로 가지를 드리우고 있다. 화곡지 앞에는 마을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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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지나 봄이 오면 산수유는 다시 기지개를 펴고 꽃망울을 터트린다. 매년 3월말 4월초 사이 노란 꽃이 만개한 화전리에선 축제가 열린다.

의성읍을 지나자 마늘 파종이 한창이다. 바지런히 끝내고 이른 휴식에 든 들도 너르다. 길가에 수줍게 서 있던 어리고 여린 산수유나무들은 이제 어엿이 든든한 모습이다. 수선스레 두리번거리며 완상하는 산들 한가운데로 아스팔트의 냉랭한 광택이 뻗어나가 화전리에 닿는다. ‘산수유 마을’이라 새겨진 커다란 표지석 너머로 산수유 붉은빛이 은성하다.

의성 사곡면 화전리. 의성읍의 동남쪽에 자리한 골짜기 마을이다. 북서쪽에 오토산, 서남쪽에 금성산과 비봉산, 동북쪽에 늑두산이 솟아 앉은 전형적인 산골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긴 골에 화전2·3리가 숨은 듯 자리한다. 이곳에 마을이 들어선 것은 300여 년 전. 그때 산 이곳저곳에는 산수유가 자생하고 있었다 한다. 지금 화전리는 산비탈에도 냇가에도 담장 언저리에도 논두렁밭두렁에도 천지가 산수유나무다. 자생하던 나무에 더해 사람이 심고 가꾸어 온 것이 어느덧 3만여 그루, 어린 묘목까지 합하면 10만 그루에 이른다.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백만 개의 붉은 얼굴들이 육박해 온다. 걸음마다 쏟아진다. 엄청난 환영이다. 탱글탱글하고 매끈한 열매들이 소리도 없이 차랑차랑댄다. 풍선처럼 위험하고 보석처럼 무분별하다. 거듭 그루잠 들며 매번 매혹적이고 몽환적인 꿈속을 헤매는 듯하다.


꽃이 아닌 풍년 의미 담긴 ‘禾全里’
조선 선조 때부터 산수유나무 심어
냇가·논두렁·담장…모두 10만그루
화곡지 전망대 오르면 온통 붉은 빛

차와 술, 한약재 등으로 유용한 열매
톡, 톡… 나뭇가지를 두드려서 수확
다시 봄이오면 노란 꽃망울이 톡, 톡



나무 꼭대기로부터 떨어진 나뭇잎들은 아직 완전한 갈색으로 변하지 않은 채 낡은 초록이 얼룩져 있지만 바삭바삭 가을 소리를 낸다. 11월의 마지막으로 다가갈수록 마을을 뒤덮은 붉은빛은 절정을 이루고, 하나, 둘, 우르르 잎이 다 떨어지면, 이윽고 붉은 열매만이 남는다. 그러면 수확의 시간이다. 나무 밑동에는 촘촘한 그물이 넓게 깔리고, 장대를 든 사람들이 나뭇가지를 두드린다. 톡톡 잠든 어린아이를 깨우듯, 톡톡 두드리는 소리가 골짜기 이곳저곳에서 들려온다. 생이 도처에 깨어있어서 한가한 기분에 젖어 있을 수가 없다.

산수유 열매는 신선이 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옛날에 효심 깊은 소녀가 병든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자 탄복한 신령님이 산수유 열매를 내려 주어 병을 낫게 했다는 전설도 있다. 현재의 인간세계에서 산수유 열매는 차와 술, 한약재로 쓰인다. 씨앗에는 독성이 있어 과육만 쓴다. 요즘은 기계로 열매의 씨앗을 분리하지만 옛날에는 이로 하나하나 씨를 깨내었다. 그래서 산수유와 오래 동고동락한 어르신들의 치아는 다 닳아 있다.

#2. 전풍에서 숲실까지 산수유길

골짜기의 남쪽 가장자리를 따라 약 4㎞의 산책로가 이어진다. 길에는 제법 큰 판석이 깔려있어 해끔하다. 마을의 전반은 화전3리로 조선 선조 때 호조참의를 지낸 노덕래(盧德來) 선생이 1580년경 마을을 개척해 ‘풍년만이 계속되는 마을’이라는 의미로 ‘전풍(全豊)’이라 했다 전한다. 선생은 마을에 산수유나무를 심기 시작했는데 첫째는 전답의 흙이 빗물에 쓸려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고, 둘째는 약재가 되는 열매를 얻기 위해서였다 한다. 그때가 자생이 아닌 식목의 시초가 아닐까 싶다. 마을 한가운데를 흐르는 개울가의 산수유나무는 수령이 300년 이상이라 한다. 그 투박하고 헌걸찬 둥치가 나무의 시간을 가늠하게 한다.

계곡은 갈수록 깊어지고, 산수유 붉은빛은 점점 짙어지고, 들은 점점 옹색해지고, 하늘은 넉넉해진다. 그렇게 2㎞쯤 오르면 화전2리다. 마을 어귀에 다정히 쌍을 이루고 선 할매할배바위가 골짜기의 후반, 또 다른 마을의 시작을 알린다. 금줄을 두른 할매할배바위는 마을의 액운을 막아준다. 오래전 자식이 없던 부부가 바위에 치성을 드려 아들을 얻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이후 부부는 할매할배 곁에 아들 바위를 세우고 아들이 올바르고 건강하게 자라기를 기원했다고 한다. 마을에서는 지금도 대소사 때마다 할매할배바위에 제를 올리고 동제를 지내며 득남을 기원한다.

산수유 마을 전체에 유난한 산수유지만 숲실의 산수유는 더욱 유난하다. 마을은 임진왜란 이후 개척되었는데 머루와 다래 넝쿨이 숲을 이루어 ‘숲실’이라 불렀다. 그러나 한자로는 벼가 숲을 이룬다는 화곡(禾谷)이라 했으니 그 명명에 풍요를 향한 바람과 기원과 의지를 심어 넣었던 것일 게다. 지금 화곡은 산수유의 숲실, 기원은 이루어진 셈이다. 화전리는 전풍과 화곡이 합해진 이름이다. 당연히 꽃밭(花田)이려니 했는데 화전(禾全)이다. 마을의 이름은 봄이 아니라 가을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3. 겨울을 나고 봄이 오면… 노란 물결의 향연

전망대의 뒤쪽 골짜기 가장 깊은 곳에는 화곡지가 펼쳐져 있다. 마을의 젖줄이다. 산수유길 4㎞가 여기서 끝난다. 또한 여기서부터 골짜기의 북쪽 가장자리를 따라 완만한 등산로 4㎞가 마을의 시작으로 다시 이어진다. 이렇게 8㎞, 20리 길이 산수유 마을을 에우고 있다.

화곡지 앞쪽에는 마을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전망대가 절정처럼 자리한다. 전망대에 오르면 못 견디게 열띠던 심장이 오히려 차분하고 고요해진다. 눈 아래 펼쳐져 있는 백만 개의 붉은빛이 해일처럼 먹먹하다. 저 해일 속에 열매를 거두어들이는 바쁜 손들이 있을 것이다. 톡톡, 톡톡 나무를 두드리는 다복한 지금이 가을 잔치의 나날이다.

수확의 시간이 지나고, 겨울의 차가운 북풍과 흰 눈 속에서 산수유는 잠시 숨을 고른다. 채 거두지 못한 산수유 열매는 주름지고 검붉은 모습으로 겨울을 나고, 봄이 오면, 다시 백만 개의 노란 꽃으로 피어난다.

그렇게 꽃이 피면, 산수유 마을에서는 축제가 열린다. 2008년부터 매년 봄마다 열리는 축제다. 맨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축제가 없었다. 그러나 꽃 시절이면 알음알음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이 찾아들었고, 동네 할머니들은 그들을 위해 국수를 삶으셨다. 마을에서 수확한 산수유 열매들을 봉지봉지 포장해 두기도 했다. 그렇게 축제가 시작됐다.

지금 마을에는 산수유 전시관과 가공장, 테라피 체험장도 들어서 있고, 넉넉한 주차장과 공중화장실도 마련되어 있다. 전망 좋은 자리마다 쉼터와 정자와 포토존이 조성되어 있고 축제 때면 먹거리, 볼거리, 할거리도 풍성하다.

산수유 꽃은 어느 봄꽃보다도 먼저 피어난다. 꽃 속에서 다시 꽃망울 터져, 그렇게 꽃은 한꺼번에 쏟아진다. 봄날의 산수유는 세상 모든 노랑의 일격이다. 그 즈음엔 마을의 마늘밭에서도 싹이 오른다. 땅은 푸르고 하늘은 황금빛으로 빛나는, 그때가 봄 축제의 시간이다.


글=류혜숙<여행칼럼니스트·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공동 기획 : 의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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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

대구방면에서는 중앙고속도로 의성IC를 빠져나와 안동·의성방면으로 우회전한다. 5번 국도를 따라 이동, 원당삼거리에서 우회전해 912번 지방도를 타고 신감삼거리에서 춘산·가음방면으로 또 우회전한다. 이후 오상삼거리에서 금성·춘산방면으로 좌회전 후 79번 지방도로 갈아타고 약 4.5㎞ 정도 직진하면 오른쪽에 산수유마을 표지석이 보인다.

중앙고속도로 남안동IC와 북의성IC에서 내릴 경우 5번 국도를 따라 대구방면으로 이동해야 한다. 이후 의성읍 철파네거리에서 청송·의성방면으로 좌회전해 912번 지방도를 타고 신감삼거리에서 춘산·가음방면으로 우회전해야 한다. 오상삼거리에 도착하면 금성·춘산방면으로 좌회전 후 79번 지방도로 갈아타고 약 4.5㎞ 직진하면 오른쪽에 산수유마을 표지석이 있다. (내비게이션 ‘사곡면 산수유2길 2’ 검색)

산수유 축제는 매년 3월 말에서 4월 초 사이에 열린다. 마늘의 고장답게 마늘 삼겹살, 마늘 밥, 마늘 먹인 한우 등 다양한 마늘 음식을 맛볼 수 있다. 가을엔 사과도 많이 난다. 인근에 조문국박물관, 금성산고분군, 공룡발자국 화석, 탑리 오층석탑, 산운생태공원, 빙계계곡 등 눈이 번쩍 뜨일 만한 볼거리들이 널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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