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최저임금의 불편한 진실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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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16   |  발행일 2017-06-16 제23면   |  수정 2017-06-16
[조정래 칼럼] 최저임금의 불편한 진실

“최저 임금이 시급 기준 1만원이 되면 이제 더 이상 해볼 도리가 없다. 공장 문을 닫는 방안 외에는.” 기자의 지인으로 지역에서 대기업 협력사를 경영하는 한 중소기업 사장은 이렇게 하소연했다. 며칠 전 저녁 술자리에서 그는 지금도 적자를 감당하기 어려운데 임금인상 부담이 가중된다면 많은 중소기업이 해외로 나가거나 전을 접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날 그의 호소는 들이켜는 술잔 수에 비례해 격정적으로 높아지다가 “이제 다시는 이런 비루한 얘기 그만하겠다”고 목소리를 낮췄다. 평소 지나가는 말로 한,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푸념과는 달리 이날 그의 토로는 비감 일색이었다.

선대 때부터 50년 가까이 이어 온 가업을 접는다고 하다니…. 손아랫사람들에게도 존대를 하고 조용한 말투로 농담마저 허투루 앞세우지 않는 진중한 그가 얼마나 힘이 들었기에, 짐작을 하고도 남는다. 그는 수천명의 생계가 달린 가업이라며 버거워했지만 남다른 책임감을 앞세웠던 기업인이다. 그런 기업가 정신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에 어떤 위로의 말이 필요할 것인가. 20년 넘게 대면해 오면서 봐 온 그는 양주를 멀리하는 애주가다. 두주불사이지만 평생 실비집을 선호하고 어쩌다 후배의 강권에 못 이겨 양주 한 병 살라치면 ‘직원 40명에게 짜장면 한그릇씩 사 줄 수 있는 술값’이라며 놀라는 천생 서민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인 최저임금 1만원으로 인상하는 안을 둘러싸고 노사(勞使) 모두가 아우성이다. 노조는 당장 올해부터 6천470원인 시급을 1만원으로 올려야 한다고 요구하며 시위를 하고 있고, 재계는 새 정부의 눈치만 살피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문재인정부는 대통령 임기 동안 연차적으로 최저임금을 인상해나가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관련해 비판적인 발언을 했던 김영배 경총 부회장에게 경고를 날리며 재계를 굴복시키기도 했다. 새 정부의 기세가 이처럼 서슬 퍼러니 대기업은 찍소리도 못하고,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중소기업들은 저임금 업체라는 소리 들을까봐 죄인처럼 비겁하게 납작 엎드려 있다고 한다.

임금 문제는 기자에게도 뜨거운 감자다. 같은 처지의 노동자로서 팔이 안으로 굽는 게 정한 이치일 터이지만, 자칫 사용자 편을 든다는 오해를 사는 건 더더욱 피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런 취급을 받을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해야 할 소리를 하지 않는 건 직무유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최저임금 인상안은 공약 준수라는 명분에 얽매여 무리하게 밀어붙여서는 더 큰 부작용과 감당하기 어려운 후폭풍을 초래하게 된다. 이를테면 최저임금의 부적정한 인상이 일자리를 없애거나 줄게 하고, 특히 청년일자리 감소로 이어진다는 경고를 과연 무시해도 괜찮은가 심각·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

문재인정부의 인수위 격인 국정자문위는 물론 신설된 일자리위원회도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이 불러올 후유증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당장 직격탄을 맞을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대책이 임금의 재정적 지원과 카드 수수료 인하 등 단편적 지원에 머물러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는 비판에 봉착해 있다.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노동시간 단축 문제도 일자리 감소 등의 풍선효과를 내지 않도록 세심한 접근을 필요로 한다. 노동시장에 대한 정부의 지나친 간섭은 노동시장을 얼어붙게 할 게 틀림없다. 민간기업의 일자리마저 공무원과 마찬가지로 철밥통이 된 현실에서 기업들이 제대로 된 일자리를 늘리려 하겠는가. 정부의 옥죄기에 의해 기업들이 일자리를 만드는 시늉은 하겠지만 그런 일자리 정책은 없느니만 못하다.

청와대에 일자리 상황판을 걸고 중소기업청을 중소벤처기업부로 승격시키면서 전격 추진되는 문재인정부의 공약 1호 사업이 되레 중소기업의 숨통을 조이거나 일자리를 뺏는 모순에 빠져서는 안 된다. 일자리든 최저임금이든 노사정(勞使政) 대타협을 통한 조정이 우선돼야 한다. 민간 부문 일자리는 경제활동의 결과물이지, 정부의 목표에 의해 창출되는 피조물이 아니다. 작금 우리의 일자리와 최저임금 문제를 풀 실마리는 노동복지 선진국이 엄청난 대립과 진통 끝에 이뤄낸 사회적 대합의와 노사 간 신뢰에서 찾아야 한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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