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수원 대심情미소 대표 “문화에 굶주린 예천군민 배불리겠다”

  • 장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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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19 07:26  |  수정 2017-07-19 07:27  |  발행일 2017-07-19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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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고 허름한 정미소를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서수원 대표가 ‘대심정미소’를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식탁에 밥이 오르기 위해서는 논에서 수확한 벼를 정미소(精米所)에서 도정해 쌀로 만들어야 한다. 옛날 정미소는 굶주린 배를 채워주는 흰 쌀밥을 끊임없이 만들어낼 수 있는 화수분 같은 존재였다. 그런 정미소를 문화의 결핍이라는 또 다른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문화공간으로 변모시킨 이가 있어 눈길을 끈다. 바로 예천 ‘대심情(정)미소’의 서수원 대표다. 그는 어떻게 이런 기막힌(?)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일까.

“버려진 정미소 안타까움 들어
사진 맘껏 볼 공간 만들자 결심
반년간 홀로 고치는 일에 매진
미니도서관·전시·교육장 갖춰

다들 제정신이 아니다 했지만
탈바꿈한 정미소 본 후 좋아해”

◆사라져가는 것을 되살리다

지난 17일 찾아간 ‘대심情(정)미소’의 겉모습은 낡고 초라했다. 1973년부터 예천군민의 밥상을 책임져 왔으니 지금까지 햇수로 44년이나 된 건물이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니 겉모습만으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그가 왜 ‘대심情(정)미소’라고 이름 지었는지 알 수 있었다. 세련된 문화와는 거리가 먼 예천에 왜 이런 멋진 공간을 만들었는지 물었더니 돌아온 답은 다소 썰렁했다. “도시생활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란다.

서 대표는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한 뒤 안동에서 결혼사진업체를 운영하며 꽤 많은 돈을 벌었다. 당시 결혼사진을 찍는 것은 유행이었고, 사진을 체계적으로 배운 그의 솜씨는 추억을 남기고자 했던 신혼부부의 발길을 끊이지 않게 만들었다. 그는 밀려드는 주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는 말처럼 잘 나가던 결혼업체는 2004년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부닥쳤다. 전 재산을 잃고 눈앞이 캄캄했지만 그대로 넋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고 한다. 서 대표는 “당시는 절망 그 자체였죠. 그러나 젊기 때문에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초심으로 돌아가 일자리가 있던 예천읍내 한 예식장에 자리를 잡았다. 수입으로 뭔가 다시 해보려던 차에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정미소였다.

“정미소를 택한 것은 어느 한 시대에 가장 중요했던 공간이 이제는 하나둘씩 사라져 버려 안타까운 마음이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그는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 사진이고, 사진이라도 마음껏 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보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서 대표는 예천사람의 사랑방을 만들기 위해 지역 내를 거의 다 둘러봤다. 그리고 대심정미소를 선택했다. 선택 이유는 읍내와 접근성이 좋은 데다 임차를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10여년을 열심히 일했지만 아직은 자금이 부족했던 것.

◆언제나 열려있는 문화공간

지난해 정미소를 임차해 올 초부터 고치는 일에 매달렸다. 인력을 구할 돈이 없어 오로지 자신의 손으로 꾸며나갔다. 그렇게 반년을 쏟은 열정이 최근 결실을 거뒀다. 허름하고 낡은 정미소가 전시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도정기가 있던 자리는 전시회를 열 수 있게 확 텄다. 정미소 안에 버려져 있던 옛 물건은 한곳에 모아 정리해 두었다. 건물의 나무기둥은 예전 그대로 살려뒀다. 정미소 일꾼이 사용했던 건물 옆 작은 집은 도서관으로 만들었다.

198㎡(60여평)규모의 내부는 누구나 와서 읽을 수 있는 책들이 가득한 미니도서관과 언제나 사진이나 그림을 전시할 수 있는 전시장이 세련되게 자리 잡고 있다. 또 정보화교육, 문화강좌 등 6차산업 교육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도 만들어졌다. 옛 정미소의 정취를 최대한 지키면서도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기능을 하게끔 준비했다.

서 대표는 “다들 나를 보면서 제정신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래도 문을 여니까 흉물처럼 여겨졌던 정미소가 멋지게 변했다며 좋아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7일 열린 대심情(정)미소의 첫 전시회는 사진작가 우성한씨가 각계각층의 손을 찍은 사진을 모은 ‘마음이 기우는 풍경, 세월이 묻어나다’였다. 서 대표는 첫 전시회이니만큼 많은 생각을 했다. 벼가 쌀밥으로 식탁에 오르기까지 많은 사람의 손이 있었을 것이고, 문화가 우리의 삶에 온전히 자리 잡는 데에도 보이는 손, 보이지 않는 손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현재는 화가 임현오씨의 자작나무 그림을 모은 ‘자작나무그늘-내 마음의 풍경’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 관람료는 무료다. 오전 10시에 문을 열고, 오후 8시에 닫는다. 서 대표는 “이곳은 언제나 열려있는 문화 공간인 만큼 남녀노소 누구나 마음껏 이용해 주면 좋겠다. 앞으로 많은 사람이 찾을 수 있도록 대심情(정)미소를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예천=장석원기자 history@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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