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여행으로 아이들 꿈을 키우는 ‘헐쌤’

  • 글·사진= 조경희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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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26   |  발행일 2017-07-26 제14면   |  수정 2017-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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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청소년도서관 더불어 숲’ 구경래 대표가 해양박물관을 체험하러 온 아이들에게 돛과 닻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대구 ‘지역문화공간 더불어 숲’ 구경래 대표(55)는 아이의 삶을 가꾸는 일에 관심을 쏟은 지 어언 20년이 다 됐다. 그는 아이 못지않게 세상과 인생살이에 궁금증이 많다. 그래서 아이들 사이에선 ‘헐쌤’으로 통한다. 그는 지금 ‘지역문화공간 더불어 숲’ 산하에 ‘어린이청소년도서관 더불어 숲’(북구 국우동)을 운영하고 있다. 또 배낭여행 프로그램인 ‘여행으로 크는 아이들, 굴렁쇠’와 여행문화연구소 일도 맡고 있다.

구 대표는 원래 어린이보다 노동자에 관심이 많았다.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도 전문가들이 조금만 도와주면 일방적으로 당하지 않을 텐데…. 저 사람들이 어디 가서 전태일처럼 죽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1992년 대구 북구 3공단 인근에 ‘일하는 사람과 지역주민을 위한 도서관’을 열었다. 사비를 털어 책을 사고 기증을 받아 운영에 들어갔다. 구 대표는 어린 여공들에게 근로기준법을 알게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구경래 ‘문화공간 더불어 숲’ 대표
15년째 어린이청소년도서관 운영
북카페 형식…보유장서 3만권
쾌적한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
배낭여행 프로그램·연구소 개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구 대표는 자책한다. 야간작업을 하는 노동자가 책을 읽을 겨를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특히 비치된 2천권 정도의 책 대부분이 노동자의 현실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종류의 책이었던 것이다.

노동자의 가정을 방문하면서 구 대표는 그들 중 상당수가 아픈 부모를 모시고 있거나 가장 역할을 하기 위해 시골에서 올라온 젊은이임을 알게 된다. ‘어린 근로자가 빵이라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쉴 수 있는 문화적인 공간이 없을까’ 고민하던 끝에 그는 몇몇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야학을 시작했다. 야학교사들은 낮에 다른 곳에서 일을 해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야학생들에게 라면을 끓여 먹였다. 그리고 초등학교와 중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노동자에게 검정고시 준비를 하게 했다.

이후 구 대표는 노동자들이 적지 않은 남산동과 비산동으로 도서관을 옮겼다. 그러던 중 구 대표의 ‘사회운동’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준 사건(?)이 발생한다. 비산동에 도서관 문을 열고 일주일 째 되던 어느 날. 초등 4학년 여학생 3명이 도서관을 방문했다. ‘여기 뭐예요?’라며 들어온 아이들이 5분도 지나지 않아 구 대표를 찾더니 ‘왜 어린이 책은 없냐’고 물었다.

구 대표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노동자들을 위한 책도 있어야 하지만, 어린이를 위한 책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린이책을 들여놓고 공장직원을 위해 밤 10시까지 문을 열었다. 한때는 연중무휴로 도서관을 운영한 적도 있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2002년 강북지역에 새로 문을 연 것이 바로 ‘어린이청소년도서관 더불어 숲’이다.

당시 강북지역에는 젊은 부부와 아이들이 많았지만 이렇다 할 문화공간이 없었다. 도서관을 이용하려면 시내로 나가거나 북부도서관(북구 침산동)까지 나가야만 했다.

강북지역 최초의 도서관인 ‘어린이청소년도서관 더불어 숲’은 당시 열악했던 강북지역 문화환경에 단비와 같은 존재로,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현재 더불어 숲 도서관장을 맡고 있는 원수연씨는 원래 이 도서관을 이용하던 평범한 학부모였다. 아이에게 책을 읽히고 싶어서 자주 찾아오다 보니 도서관에 애정이 생겼고, 자원봉사하다 관장까지 됐다.

‘어린이청소년도서관 더불어 숲’은 이젠 보유 장서가 3만권이 될 정도로 제법 큰 사립도서관이 됐다. 북카페 형태로 음료를 마시며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쾌적한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요즘 구 대표는 걱정이 많다. 도서관을 찾는 이들이 줄고 있어서다. 방과 후 활동이 활성화하고, 학교 도서관과 구수산도서관 등 좋은 도서관이 잇따라 생기면서 책 읽는 환경이 좋아졌지만, 책 읽는 아이는 오히려 줄고 있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원 관장은 “강북지역에도 걸어서 방문할 수 있는 도서관이 가까이 있다”며 “아이와 함께 와서 책 읽고 차도 마시며 더위를 식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조경희 시민기자 ilikelake@hanmail.net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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