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긴 숨으로 예술 바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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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11 08:01  |  수정 2017-09-11 08:01  |  발행일 2017-09-11 제24면
[문화산책] 긴 숨으로 예술 바라보기
이도현<화가>

유럽은 지금 예술잔치로 들썩이고 있다. 올해는 유럽 3대 미술행사의 아귀가 맞아 떨어져 그 거대한 축제의 문이 동시다발로 열리다 보니 더욱 떠들썩하다. 격년제로 열리는 베니스 비엔날레를 비롯하여 5년에 한번 관람할 수 있는 현대미술의 최전방 카셀도큐멘타, 그리고 10년을 주기로 열리는 뮌스터 조각프로젝트까지 죄다 볼 수 있는 기회여서 세계 각지에서 이 거대한 현대미술제를 목격하고자 ‘예술 순례길’에 오르고 있다.

한국에서도 웬만한 문화예술 분야 종사자들은 이미 다녀갔을 터인데, 빠듯한 일정에 숙제하듯 훑고 지나가기엔 아쉬운 대장정(大長程)이었을 것이다. 특히 10년이라는 느린 호흡을 가진 뮌스터조각프로젝트는 관람자도 긴 숨으로 둘러보도록 도시 곳곳에다 예술을 숨겨놓았으니 하루이틀정도로는 주마간산으로 볼 수밖에 없다.

마침 내가 체류하고 있는 뮌스터에 아는 지인과 함께 한 무리의 한국인들이 다녀갔는데 그들이 잡은 일정이 고작 하루 반나절이어서 결국 35개의 프로젝트 중 겨우 열개 남짓만 수박 겉핥기식으로 보고 갈 수밖에 없었다.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얹듯이 문화를 관람하던 그들에게 뮌스터시가 보여주는 조각프로젝트는 몹시 불편하고 불친절했을 것이다. 특히나 디지털화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진행된 ‘속도의 한국’에서 살다가, 아날로그식 지도 한 장에 의존해서 도시 곳곳을 누비며 예술을 보물찾기 하듯 찾아다니라 하니 그게 어디 쉽겠는가. 그러나 우리와 달리 이곳을 찾은 유럽인들은 나이 불문하고 오로지 아날로그식 방식으로 현대미술을 기꺼이 즐기고 있다. 그런 모습에서 예술과 문화에 대한 이들의 애정이 얼마나 찰지고 기름진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문화토양의 자양분으로 자란 아이들이 세계에서 경쟁력 있는 사람이 되는 거야 당연지사 아니겠는가.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듯이 현대미술 또한 거대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엄청난 속도로 탈바꿈하고 있지만 결국 예술에 대한 감동은 우리 마음을 통한 아날로그식 소통 아니던가. 그런 의미에서 뮌스터조각프로젝트는 ‘육탄전’을 통한 예술탐험으로 예술과 도시를 함께 바라보도록 안내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보니 뮌스터 시민들에게 예술이란 아주 특별해서 근접 못할 철옹성(鐵甕城)이 아니라 자연스레 삶에 스며든 일상처럼 편안해 보인다.

어쩌면 이런 ‘느림의 미학’이야말로 변방의 한 도시를 세계적인 미술축제의 장으로 만든 철학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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