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공론화위의 蛇足(사족)

  • 김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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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24   |  발행일 2017-10-24 제30면   |  수정 2017-10-24
공론화위 ‘원전축소’ 월권
대통령 신규원전 중단 선언
경북 동해안 경제에 직격탄
국가 에너지정책 근간 결정
국민투표로 하는 게 바람직
[화요진단] 공론화위의 蛇足(사족)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이하 공론화위)가 시민참여단 471명을 대상으로 한 최종 조사에서 건설재개 59.5%, 건설중단 40.5%라는 공론화 결과를 내놓았다. 공론화위는 지난 21일 이를 근거로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재개하라는 권고안을 정부에 제출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22일 공론화위의 권고를 받아들여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조속히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여기까지만이라면 순리대로 잘 풀려가는 모양새다.

늘 그렇듯 이번에도 별첨 조항이 문제를 만들고 있다. 공론화위는 건설재개와 함께 원자력발전 비중을 축소하는 방향의 에너지 정책 추진을 권고했다. 일부 언론과 여권은 이를 신의 한 수라고 치켜세우고 있지만 공론화위가 국가의 에너지 정책 방향까지 권고한 것은 명확한 월권이다. 공론화위는 대통령 공약 사항인 신고리 5·6호기 공사의 재개와 중단을 결정하는데 국한돼 출범됐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은 공론화위의 원전 건설재개 의견보다 원전 비중 축소 권고에 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즉 건설재개 결정이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정책과는 별개임을 강조하면서 원전 비중 축소 권고를 명분삼아 에너지 전환(탈원전) 정책을 계속 밀어붙이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도 22일 탈원전 기조 유지 입장을 재천명했다. 공론화위의 사족(蛇足)이 탈원전을 둘러싼 갈등의 불씨를 더 키우고 있는 셈이다.

신고리 5·6호기 공사가 재개되기까지 3개월간 약 1천억원(한국수력원자력 추산)의 손실이 발생했다. 공론화위를 운영하는데도 46억원이 들었다. 멀쩡한 공사를 재개하는데 소요된 비용치고는 너무 많다. 문제 해결을 위해 1천억원이 넘는 비싼 수업료를 지불했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공론화위는 당초 출범 목적대로 건설재개와 중단에 대한 의견만 내놓아야 했다. 국가 에너지 정책 방향을, 그것도 3개월 만에 비전문가인 시민대표단 471명이 제시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이를 국민 전체의 뜻인 양 받아들이고 탈원전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대통령의 결정도 너무 가볍다. 대통령 공약이라고 해서 무조건 지켜야 하는 것도 아니다. 공론화위가 건설재개 입장만 내놓았어도 정부가, 대통령이 그렇게 쉽게 탈원전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힐 수 있었을까. 물론 비싼 수업료가 제 몫을 한 부분도 있다. 탈원전 측이 줄기차게 제기해오던 우리나라 원전의 위험성 부분은 이번 공론화위 조사 과정에서 어느 정도 해소됐다는 점이다.

특히 공론화위의 월권적 권고는 경북 동해안지역 원전 산업과 이 지역 경제에는 치명타를 입힐 것으로 예상된다. 문 대통령은 공론화위의 권고 수용 입장과 함께 신규 원전 건설 계획 전면 중단을 재천명했다. 이 계획이 현실화되면 당장 울진 신한울 3·4호기(설계 용역 중단), 영덕 천지 1·2호기(부지 매입 중단)의 건설이 백지화된다. 한수원은 이미 신한울 3·4호기 설계 용역비 등 2천700억원, 천지 1·2호기 일부 부지매입비 700억원 등 3천400억원의 비용을 투입했다. 건설이 중단되면 3천400억원을 고스란히 날리게 된다. 울진은 원전 지원금 축소로 지역 경제에 타격이 불가피하고, 원전 유치로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겠다는 영덕의 꿈은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연장 운영 중인 경주 월성 1호기의 가동 중단도 현실화되고 있다. 이들 원전 건설의 백지화나 가동 중단 문제 역시 신고리 5·6기 건설 재개 여부 못지 않게 사회적 갈등 요소가 많다. 일방적으로 백지화나 가동 중단을 선언해서는 안된다. 이를 놓고 다시 한 번 공론화 조사가 요구되는 이유다.

한 국가의 에너지 정책은 교육 정책 못지 않게 중요하다. 야당들은 탈원전 문제를 포함한 에너지 정책을 국회에서 논의하자고 한다. 하지만 에너지 정책을 정쟁의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탈원전 문제를 포함한 에너지 정책은 국가 중대 사안이다. 정쟁의 도구도, 이념의 희생양이 돼서도 안된다. 거듭 주장하지만 국가 에너지 근간을 무엇으로 할 것인지를 국민투표에 부치자. 이를 통해 적어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에너지 정책이 오락가락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김기억 (동부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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