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자락 ‘문암구곡’을 아시나요

  • 글·사진=채건기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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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13   |  발행일 2017-12-13 제13면   |  수정 2017-12-13
선비정신을 엿볼수 있는 곳
채준도의 석문 문집에 기록
동화천 지묘동∼미대동 일대
제4곡 이상은 공산댐에 수몰
팔공산 자락 ‘문암구곡’을 아시나요
문암구곡의 제1곡인 화암. 도로가 개설되기 전에는 동화천 물이 바위 밑을 휘감아 무태동 방향으로 흘렀다.

조선시대 후기 대구지역 선비들의 유교문화를 엿볼 수 있는 구곡은 크게 7개 정도로 볼 수 있다. 그 가운데 팔공산 자락에는 2곡이 있다. 농연구곡(용수·신무동 천변 일대)은 대암 최동집 선생(1586~1661)의 농연 가에 집을 지은 것에서 유래되었으나 백불암 최흥원(1705~86)의 농연정을 거쳐, 증손인 최효술(1786~1870)이 농연구곡 시를 완성했다.

문암구곡(동화천의 지묘동~미대동)은 채준도(1834~1904)가 쓴 석문 문집에 실려 있다. 이번에 처음 발표된 논문으로 상당한 의미를 둘 수 있고 대구의 중견 한학자인 구본욱 박사(58)가 칠언율시를 번역하고 글을 썼다. 제1곡은 화암(눈썹바위), 제2곡은 휴암(부엉이바위), 제3곡은 동산(동화천변 인천채씨 문중산), 제4곡은 의눌, 제5곡은 수영곡(옛 동화천유원지), 제6곡 도산, 제7곡 잠두, 제8곡 문암(옛 신고사 옆), 제9곡은 용등(방아산)이다.

제4곡 이상은 공산댐 건설(1979~82)로 수몰돼 위치를 잡기가 힘들다. 하지만 어릴 때 추억과 한시에 나타난 글로 어림잡을 수는 있다. 공산댐 둑 밑은 천내골로 공산면사무소가 있었고, 좌측 구길 옛 1차로 도로로 쭉 올라가면 우측 물댐이에 누운 바위를 비롯해 묘목농장·동화천유원지·도성사·영신학교농장·달성서씨재실과 신고사 거쳐 미대동 들판으로 동화천 물길 따라 이어지는 옛 76번 버스길은 다리가 3개나 있었고 경치가 수려했다.

제1곡인 화암은 대구 최초의 서원이었던 연경서원(1565년)이 있던 자리에서 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툭 튀어나온 바위가 그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동화천물이 바위 밑까지 쳐서 급속하게 흘러 무태 방향으로 나갔다. 화암의 번역한시를 보면, “봄물이 불어 배를 띄울 만하니, 백 척의 기암 그림자 맑은 물에 비치네, 도옹이 떠난 후에 시를 읊는 사람 없으니, 오랜 세월 빼어난 경치 푸른 안개에 둘려있네”라고 표현했다.

제3곡인 동산은 옛 한들 보살 앞인데 초등학교 다닐 때 여름철에 수영하고 멱 감고 바위에서 다이빙하는 장소였다. “바위 쓰니 물결 이는데 배위에 앉은 것 같으니, 동산은 고요하고 하루가 한 해와 같네….” 칠언율시를 읊조리면서 옛 선현들의 멋과 풍류를 유추해 볼 수 있어 감회가 새롭다. 글·사진=채건기 시민기자 ken497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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