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 절망한 청년들 “투기·도박꾼? 가상화폐 내 삶 바꿔줄 선택”

  • 김미지,황인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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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20 07:33  |  수정 2018-01-20 09:07  |  발행일 2018-01-20 제5면
일확천금에 목매는 '대박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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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상화폐 시세현황판(위)과 가상화폐 채굴 장면. 정부의 규제 논의로 가상화폐 시세는 급등락을 반복하고 있다.황인무기자 him7942@yeongnam.com

취업난·학자금 대출 상환·결혼·내 집 마련…
캄캄한 현실 속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빠져들어
규제 자체가 가상화폐를 금융상품으로 인식
정부, 투기 광풍에 오히려 기름 부을 수도 있어 고민
최고매출 기록한 로또는 하반기 인터넷 판매 개시



“서민들에겐 희망이다”

지난해부터 가상화폐에 투자하기 시작한 임기준씨(31)는 가상화폐를 이렇게 평가했다.

임씨는 지난해 10만원으로 가상화폐 시장에 들어갔다. 이후 100만원까지 수익이 오르기도 했다. 그는 이후 자본금을 더 투입하고 현재 하루 종일 가상화폐 앱을 보며 시장의 흐름을 지켜보고 있다. 그는 “좀 더 큰 금액을 투자할걸 하는 후회도 들었지만 주변에서 대출까지 받아 투자해 실패하는 경우도 있어 조심스럽게 투자를 이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8만원을 투자해 280억원을 번 청년의 사례나 5천만원으로 60억원을 만들었다는 직장인의 사례가 매스컴이나 주변에서 회자될 때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대를 갖고 가상화폐 앱을 더 들여다보게 된다고 했다.

임씨는 가상화폐 투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매주 로또도 구입하고 있다. 로또는 일주일에 1만~2만원가량을 꾸준히 구입하고 있다. 임씨는 “중소기업에 다니는데 지금 월급으로 언제 돈을 모아 결혼하고 내 집 장만을 할지 솔직히 눈앞에 캄캄하다”며 “노력으로 삶이 나아지는 건 한계가 있으니 가상화폐나 로또를 사게 된다. 그게 삶을 바꿔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투기니 도박꾼이니 이야기하는데 더 나은 삶을 살려는 그나마 가능한 합리적 선택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가상화폐 투자 대부분이 2030세대

지난해 11월 국내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이 이용자 4천100여명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대와 30대 이용자가 각각 29%를 차지했다. 전체 투자자 중 2030세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을 넘은 것이다.

청년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가상화폐 투자에 빠져드는 것은 계층 상승 사다리가 사라지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학자금 대출 상환, 역대 최악의 청년취업난, 취직을 한다 해도 내 집 마련은 하늘의 별 따기인 현실을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가상화폐와 로또는 순식간에 일확천금을 가져다줄 수 있는 달콤한 유혹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안정적으로 일자리를 유지하고 소득을 기대할 수 있는 여건이 취약하므로 일확천금을 얻어 현실에서 탈피하고자 한다"며 “과거 로또나 주식, 부동산 투기가 그랬고 이제는 가상화폐로 쏠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상화폐 투자는 비단 직장인뿐 아니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앱 분석업체 와이즈앱에 따르면 비트코인 앱 이용자의 연령층은 30대가 32.7%로 가장 많았으나 20대(24.0%)와 50대(15.8%)도 많았고 10대도 6.5%나 됐다. 상대적으로 시간 여유가 많은 대학생이나 취업준비생들은 24시간 앱 시세를 확인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정부가 미성년자의 가상화폐 투자를 금지했으나 ‘우회로’를 찾아 투자하는 10대들도 여전히 많다. 대전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최근 교내에서 학생들이 학교가 지급한 노트북과 개인 노트북을 사용해 가상화폐 거래를 시도하는 경우가 있었다"며 가상화폐 거래 규제를 안내하는 가정통신문을 학부모에게 보내기도 했다.

◆오락가락 규제…거품 언제 빠지나

하지만 임씨의 경우처럼 수익을 얻는 경우는 많지 않다. A씨(34)는 지난해 가상화폐 붐이 시작될 때 3천만원을 대출했다. A씨는 이를 전부 가상화폐에 투자했다.

A씨는 “가상화폐에 투자한 주변인들이 용돈벌이를 하는 것을 보고 금액을 높여서 투자하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순식간에 투자한 가상화폐가 떨어져서 하루아침에 3천만원을 날렸다. 지금 이걸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며 망연자실했다.

정부는 규제로 투기 광풍을 막겠다고 나섰지만, 실제 투기 광풍을 꺾을지는 미지수다. 규제 자체가 가상화폐를 금융상품으로 인식하게 만들어 오히려 광풍에 기름을 부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확천금을 노릴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사회 현실과 가상화폐 광풍을 막아야 하는 정부 당국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가상화폐 시세 폭락으로 대규모 투자금을 잃게 된 2030세대는 가상화폐에 쏟아부은 투자금을 빼야 할지, 유지해야 할지 고민이 깊어진다. 그러나 오히려 저점매수 타이밍을 노리거나 우회로 가상화폐에 계속 진입하는 등 투자 열기는 뜨겁기만 하다. 문제는 언제 빠질지 모르는 가상화폐의 거품이다. 투자자들 사이에선 ‘존버정신’(오래 참고 끝까지 버팀)이란 말이 화제다.

박한우 교수(영남대)는 “한탕주의가 가상화폐 시장에 만연해 있다. 부동산에선 감정가, 시세, 공시지가 등으로 가치 판단이 되는데 가상화폐는 초기단계이며 정부에서도 가상화폐의 가치 평가를 하지 않고 있어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판단하기 힘들다”며 “요행이 아니라 분석으로 투자가 이어져야 하는데 큰돈을 번다는 이야기에 젊은이들이 많이 관심을 가지고 뛰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로또 지난해 최대 판매액 기록

‘인생 역전’을 희망하는 투기 열풍의 대표주자는 로또다. 로또는 대표적인 불황형 상품으로 인생역전의 꿈을 이뤄줄 수단으로 여겨져왔다.

지난해 로또복권 판매액은 3조7천948억원으로 추산된다. 하루 평균 104억원어치가 팔린 것이며 1인당 로또를 74번 산 셈이다.

로또는 첫 출시 당시 2002∼2003년 한동안 ‘광풍’이 불었으나 게임당 가격을 2천원에서 1천원으로 내리면서 인기가 시들었다. 로또 판매액은 2005년 2조7천105억원으로 떨어진 뒤 내리막을 걷다 2007년에는 사상 최저 판매액인 2조2천677억원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경기 회복세가 지연되면서 로또의 연간 판매량은 2014년 3조원대를 회복한 후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 최고 매출 기록을 수립했다.

지난해에는 대한민국 성인 2천400만명이 복권을 구매한 것으로 추정됐다.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중 최근 1년 이내 복권을 구입해본 경험자는 57.9%로, 2016년(55.9%) 대비 2.0%포인트 증가했다. 로또 복권 판매점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 역시 ‘로또 호황’을 유도하고 있다. 6천여개에 머물러 있던 로또 복권 판매점은 2015년부터 8천여개로 증가하고 있는 중이다. 뿐만 아니라 올 하반기 즈음엔 로또 복권 인터넷 판매도 개시된다.

김미지기자 miji4695@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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