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쏙쏙 인성쑥쑥]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 속의 붕어(轍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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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19 07:59  |  수정 2018-03-19 07:59  |  발행일 2018-03-19 제18면
[고전쏙쏙 인성쑥쑥]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 속의 붕어(轍之)

‘너는 바다 바깥에서 새롭게 불어와/ 새벽이면 창가에서 시 읊조리는 나를 어루만지려 하지./ 고맙구나! 시절이 되면 다시 돌아와 서재 휘장 간질이며/ 꽃피는 내 고향 소식을 전해 주려 하니.’ (봄바람, 최치원)

고운 최치원의 ‘봄바람(東風)’을 읊조리며 섬진강을 갔습니다. 구불구불 국도를 따라 가는 길은 봄기운이 완연하였습니다. 차창의 유리를 내리고 흠씬 풍기는 봄 향기를 맡으며 느릿느릿 갔습니다. 그런데 지리산 중턱을 지나면서 마을이 있는 곳인데도 폐교가 된 곳이 여러 군데 보였습니다. 며칠 전까지도 사용하였던 듯 깨끗한 학교건물도 있었습니다. 보릿고개의 가난한 시절에 개교했던 학교들이 서서히 문을 닫는가봅니다. 동네엔 아이들이 없고 노인들만 있었습니다. 정부의 출산대책, 농어촌 살리기, 청년 일자리 창출에 대한 대책들이 옹색스럽습니다.

이미 흉측한 모습으로 변한 폐교엔 이삿짐을 나른 듯 차량 자국이 크게 남았습니다. 차가 다닌 바퀴자국엔 엊그제 내린 비로 물이 고였습니다. 아마 연못자리였던 듯합니다. 조그마한 새끼 붕어가 꼼짝 않고 있었습니다. 코끝이 찡하고 마음이 짠하였습니다. 장자의 ‘학철지부(轍之)’가 생각났습니다.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속의 붕어’라는 뜻입니다.

장자는 너무 가난하여 짚신을 삼아 팔아 생계를 유지하였습니다. 목덜미가 버쩍 마르고 얼굴이 누렇게 떴습니다. 춥고 배고픔에 견디기 어려워 고을관리로 있는 친구 감하후를 찾아갔습니다. 감하후는 몇 개월 후면 고을의 세금을 거둘 것이니 그 때 300금을 빌려주겠다고 말을 합니다.

장자는 “내가 어제 이곳으로 오는 길에 나를 부르는 자가 있어 돌아보았소. 그 곳에는 수레바퀴 자국 안에 붕어가 있었소. 붕어가 나에게 말하길 ‘나는 동해의 파도신입니다. 혹시 당신에게 한 말이나 한 되쯤의 물이 있다면 나에게 좀 주십시오‘ 하더군요. 붕어에게 ‘조금 있으면 내가 장차 남쪽으로 가서 그 곳의 왕들에게 서강의 물을 끌어다가 붕어 너에게 주도록 하면 되겠느냐?’ 하였소. 그랬더니 붕어가 벌컥 화를 내면서 ‘나는 늘 있어야 될 물이 없어 죽을 지경입니다. 당장 한 말이나 한 되쯤의 물만 있으면 금방 살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나를 건어물 전에서 찾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라고 합디다”하고는 감하후 곁을 떠났습니다.

이 이야기는 장자 자신의 우언(寓言)입니다. 자식, 학생, 청소년들에게도 곤란하고 위급한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더욱 꼼꼼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장자는 “나에게 착한 일을 한 사람에게 나 역시 착하게 하고, 나에게 악한 일을 한 사람에게도 나 역시 착하게 하라. 내가 이미 남에게 악하게 하지 않았으면, 남도 나에게 악하게 할 수 없을 것이다”하였습니다.

‘봄바람’은 최치원이 당나라 유학 시절에 지었습니다. 동쪽에 있는 신라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꽃 피는 고향소식을 전해주리라는 기대를 품고 있습니다. 요즘 현실이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속의 붕어( 轍之 )’처럼 답답합니다. 하지만 ‘고맙구나! 시절이 되면 다시 돌아오는 봄바람’이 되겠지요.

박동규<전 대구 중리초등 교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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