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인터뷰] 장편영화 ‘수성못’ 유지영 감독

  • 최미애 손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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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4-07   |  발행일 2018-04-07 제22면   |  수정 2018-04-07
“수성못 부유하는 오리배처럼…방황하는 대구의 청춘들을 담고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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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수성못’의 배경인 수성못에서 유지영 감독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에서 수성못은 대구를 상징하면서 동시에 대구에서 사는 주인공 희정이 처한 현실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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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영 감독의 영화 ‘수성못’의 한 장면. <인디스토리 제공>

청년이 대구를 떠나는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취업 등의 이유로 청년들은 대구를 벗어날 수밖에 없고, 벗어나고 싶어 한다. 이는 실제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지난 2월 동북지방통계청이 발표한 연간 경제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대구의 20대 연령층의 순유출은 전체 대구 인구 순유출(1만1천936명)의 40%를 차지했다. 오는 19일 개봉을 앞둔 영화 ‘수성못’은 이 같은 대구의 청년이 마주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주인공 희정은 수성못 오리배 매표원 아르바이트를 하고, 서울의 대학에 가기 위해 편입 시험 준비도 하며 치열하게 살아간다. 대구에 사는 청년의 현실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희정의 이야기는 영화를 만든 유지영 감독(33)이 겪었던 것과도 비슷하다.

대구에서 태어나고 자란 유 감독 또한 계명대 미대를 다니다가, 영상을 공부하고 싶어 홍익대로 편입했다. 홍익대 졸업 작품으로 영화 ‘고백’(2011)을 만들었고, 이 영화가 제12회 전주국제영화제 감독상, 제1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최우수상을 수상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영화를 배워 대구를 기반으로 영화를 만들어오고 있다. 유 감독의 영화 ‘수성못’은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등에서 호평을 받았다. 지난 3일 영화의 배경인 수성못에서 유 감독을 만나 영화 ‘수성못’과 대구에서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계명대 미대 시절 교양강의 영상수업
영상 연출 자청하면서 영화 열망 키워
마음 혼란스러울때 수성못 자주 산책

오리배 보며 떠오른 생각 영화로 구상
걱정한 촬영 수성구청서 많은 도움 줘

대구서 영화 못 찍을 이유 없다고 생각
평범한 사람들 일탈·변화 보여주고파



▶영화 ‘수성못’을 간단하게 소개해달라.

“대구를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하는 한 인물, 대구에서 죽으려고 애쓰는 인물, 자기가 원하는 게 뭔지 방향을 모르고 헤매는 인물이 영화에 등장한다. 이들의 방황하는 젊은 날을 담은 블랙 코미디다. 수성못을 상징하는 오리배가 자주 등장하는데, 열심히 살지만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고, 대구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표현하려고 했다.”

▶영화의 시나리오는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글이 잘 쓰이지 않거나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 수성못을 자주 산책했다. 한적할 때 수성못을 돌다가 내가 저 오리배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들을 메모로 적어놨고, 평소 쓴 메모를 모아놓은 아이디어 노트를 보다가 첫 장편 영화는 내 얘기를 담은 영화였으면 좋겠다고 해서 본격적으로 구상했다.”

▶영화에 자살사건이 등장하는데 이유가 있나.

“수성못에서 자살사건이 종종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영화에서 수성못이 ‘자살명소’로 부각되진 않는다. 대구 하면 떠올릴 수 있는 것이 나에게는 벗어나고 싶었던 곳이라는 건데, 죽음과 연관이 된다. 영화에서 이야기하려고 했던 건 살려고 하는 사람, 죽으려고 하는 사람의 대비를 통해 젊은 사람들의 현실을 보여주려고 했다.”

▶수성못이 배경이 된 이유가 있나. 예고편을 보니 촬영 장소도 대부분 대구인 것 같던데.

“영화를 찍게 됐을 때 첫 장면을 대구에서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나를 수성못에 데리고 가서 산책도 하고 ‘돼지 껍데기’도 사주셨던 기억이 있다. 나에게는 영화를 찍을 때 장소가 중요한데, 서울에 있을 때는 그게 힘들었다. 한적한 요양병원이 필요할 경우 대구에서는 팔공산 쪽으로 가다 보면 있는 병원 식으로 딱 머릿속에 떠오르는데, 서울에서는 없었다. 삼덕동에 있는 주인공 희정의 집에서 가장 많이 촬영했다. 대구예술발전소도 영화에 나온다. 3호선 모노레일도 등장하는데, 대구에만 있는 것이어서 넣었다.”

▶장소 협조에 어려움은 없었나.

“제일 걱정했던 수성못은 수성구청에서 많은 도움을 줬다. 평소 차가 올라갈 수 없는 산책로에 조명탑차가 올라갈 수 있게 지원해줬다. 가장 어려웠던 건 수성못 오리배를 섭외하는 거였다. 개인 사업자여서 쉽지 않았다. 원래는 수성랜드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을 구상했는데, 섭외가 어려워서 바꿨다. 수성못이 대구를 상징하는 것이고,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을 그려야 했기 때문에 주변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인물이 되어야 했다.”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던 계기는.

“어릴 때부터 글 쓰는 걸 좋아했다. 일기를 쓰고 상상하면서 쓰는 글도 있었는데, 글을 쓰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계명대 다닐 때 교양 강의로 영상 관련 수업을 들었는데, 5~10분짜리 영상 만들기를 하면 서로 안 하려고 하는데, ‘내가 연출하겠다’고 하면서 영화 만드는 것에 대한 열망을 키웠다. 기본적으로는 영화보다는 영상에 관심이 많다. 영상과 소리로 뭔가를 만들고 창작하는 게 재밌다.”

▶시나리오를 쓰는 데 영감을 주는 것이 있나.

“책이나 영화를 많이 본다. TV는 잘 안 보는데 뉴스는 매일 본다. 사회·정치적인 것에 관심이 많은데, 그걸 영화에 녹여내려고 애쓰진 않는다. 현상에 관심이 많은데, 한때는 묻지마 폭행을 보면서 ‘왜 일어날까’ 생각을 하면서 고민을 했다. 그런 게 자연스럽게 시나리오로 나온다. ‘수성못’에서는 자살을 시도하려 했던 인물을 인터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대구에는 자살예방센터가 없어서 생명의 전화를 찾아가 기록을 보고, 이를 바탕으로 대사를 각색해서 썼다.”

▶2011년 전주국제영화제를 비롯해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하면서 자신감도 얻게 되는 계기가 됐을 것 같은데.

“오히려 그해가 더 힘들었다. 영화제에 낼 생각은 없었는데 교수님이 무조건 내보라고 하셨다. 얼떨결에 상도 받았는데, 자신감이 붙는 것보다는 서울로 영화제에 다녀야 하고, 영화제에 가면 다들 나를 감독님이라고 부르고, 실제 만나게 되는 분들이 영화계 종사자인 그런 상황들이 혼란스러웠다. 이 시간에 작업을 해야 하는데, 글을 써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었다.”

▶대구를 기반으로 영화를 계속 만들 계획인가. 대구의 제작환경이 좋은 편은 아닌데.

“최근에 ‘극장 쪽으로’를 찍을 때 촬영감독 한 명 빼고 대구 스태프로만 꾸린 적이 있다. ‘수성못’을 촬영할 때만 해도 서울, 대구 스태프가 반반이었다. 해보니 편안했고, 대구에서도 영화를 못 찍을 이유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인맥을 구축하고 다양한 문화를 접하는 면에선 서울이 좋은데, 그것보다 중요한 건 내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라고 생각하니 서울에 있을 이유가 없어졌다.”

▶앞으로 어떤 영화를 보여주고 싶나.

“아주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 사람들이 어떤 변화, 일탈, 삶의 균열을 맞이하면서 삶이 변화되는 것에 대해 쓰고 싶다. 지금까지 내가 만든 단편들도 그렇다. 나 역시 고양이를 안고 있고, 책 읽는 게 하루의 대부분인 평범한 사람이다. 변화가 생겼을 때 그 순간에는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인식을 잘 못하는데, 어느 순간 내 인식을 바꿔버린 것을 알았을 때 그것에 대한 공포가 있다. 그런 걸 영화를 통해 직면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흉터의 딱지를 떼면 흉이 남고 아픈데도 떼어내고 싶은 거랑 같다. 결국 진실이 뭔지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 같다. 삶의 본질을 직면하면 무서울 것 같은데 보고 싶은 거다.”

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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