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응상의 ‘천 개의 도시 천 개의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높은 도시, 볼리비아 라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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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5-11   |  발행일 2018-05-11 제37면   |  수정 2018-06-15
가난하지만 천국과 가장 가까이 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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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스의 엘알토 언덕에서 바라본 라파스 전경. 언덕 위로 라파스의 대중교통인 케이블카가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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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항구도시 코파카바나. 라파스로 가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호수를 건너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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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의 국경마을 융구요에서 한 인디오가 리어카로 여행자의 캐리어를 옮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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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시장. 가게 앞에 걸린 것이 말린 야마 새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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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스의 랜드 마크 산 프란시스코 성당.

볼리비아는 원래 잉카제국의 영토였으나 1535년부터 스페인의 식민 지배를 받았고, 1825년에서야 독립하였다. 볼리비아라는 이름은 ‘볼리바르의 나라’라는 뜻으로 독립 영웅 볼리바르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리고 볼리비아의 행정수도인 라파스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도다.

라파스로 가는 길은 출국 전부터 간단치 않았다. 남미에서 유일하게 비자를 받아야 했으며, 또 비자를 받기 위해 황열병 예방접종도 해야 했던 것이다. 페루에서 볼리비아로 넘어가는 길도 그랬다. 나는 페루 푸노에서 라파스 행 버스를 탔다. 티티카카 호수를 지나 페루의 국경 마을인 융구요에 도착해 출국심사와 입국심사를 받았다. 그리고 작은 돌담 아치를 넘으니 볼리비아였다. 국경을 넘는 일은 이 한 걸음으로 충분했지만 라파스까지의 남은 여정은 또 많은 번거로움을 견뎌야 했다.

페루 국경마을 넘어서자 인디오 무리
국민 절반이 인디오, 대통령도 원주민
남미 중 천연자원 가장풍부, 가장 가난
해발 6460m 설산 골짜기 아래 라파스
세계 최장 높이 대중교통인 케이블카

춥고 바람강한 고지대, 빈민 84만 거주
어둠 내리면 오밀조밀한 집 별처럼 빛나
무허가 판자촌 도심, 사람 냄새는 향긋
한적한 하엔거리·산 프란시스코 성당
약초·부적·주술용품 등 파는 마녀시장



국경을 넘어서자 전통복장을 한 인디오 무리들이 한꺼번에 나타났다. 무슨 행사 때문인 듯 했지만 국민의 절반 이상이 인디오이며, 원주민 대통령을 가진 나라라는 사실이 실감났다.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티티카카 호수의 항구 도시 코파카바나(Copacabana)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다시 호수를 건너야 했다. 우리가 탔던 버스는 뗏목 위에 실렸고, 우리는 작은 보트로 호수를 건넜다. 이제 버스는 쉬지 않고 알티플라노 고원 위를 내달렸다.

코파카바나에서 라파스로 향하는 고원은 쓸쓸하기 그지없었다. 그 쓸쓸함이 불현듯 체 게바라를 떠올리게 했다. 사르트르가 ‘20세기 가장 완전한 인간’이라고 극찬한 체 게바라는 볼리비아 혁명을 위해 이곳에 왔다가 1967년 이곳 어디에서 최후를 맞았다. 그리고 지난해는 그의 사망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체 게바라가 꿈꾸었던 볼리비아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2005년에 집권한 원주민 대통령 모랄레스는 헌법까지 바꿔가며 4선을 노리고 있다. 두 사람이 꿈꾸는 세상은 과연 같은 모습일까? 볼리비아는 남미에서 천연자원이 가장 풍부한 나라이면서 가장 가난한 나라다. 독립 이후 반복된 군사 쿠데타로 정부가 200번 가까이 바뀌었고, 어느 해인가는 1만%의 물가인상률을 기록하기도 했으며, 어느 대통령은 6일 만에 하야하기도 했단다. ‘평화’를 뜻하는 라파스는 볼리비아 국민들의 염원이 담긴 이름이리라. 그러나 ‘라파스’는 멀어만 보인다.

한참을 달려 마침내 라파스의 엘알토에 도착했다. 엘알토는 이 도시의 가장 높은 지역으로 해발 3천600m에 자리 잡은 중심가로부터 약 700m 이상 높은 곳이다. 해발 6천460m의 설산 일리마니 골짜기 아래로 형성된 라파스는 움푹 파인 웅덩이 모양을 하고 있으며, 해발고도가 1천m 이상 차이나는 곳도 있다. 그래서 생겨난 대중교통이 2014년에 개통한 텔레페리코라는 이름의 케이블카다. 지하철처럼 환승도 가능한데, 올 4월에 개통한 퍼플라인은 2.3㎞ 길이에 타워와 스테이션이 해발 3천640~4천m에 위치해 ‘세계에서 가장 길고, 가장 높은 케이블카’이기도 하다. 엘알토 언덕에서 내려다본 도시는 큰 사발에 집들을 다닥다닥 붙여 놓은 듯한 모습이다.

도시의 이러한 지형적 특징 때문에 위쪽은 춥고 바람이 강하며, 아래쪽은 따뜻하고 바람도 적으며 상대적으로 숨쉬기도 편하다. 그래서 아래쪽에는 부유층이 주로 거주하고 위쪽에는 빈민들이 산다. 가난할수록 천국과 가깝다는 말은 이 도시를 두고 하는 말 같다. 라파스의 인구 190여 만명 가운데 84만여 명이 고지대에 거주하는 빈민들이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의 모습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고단함이 느껴졌다. 이 모습을 보고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가난이 불행이라고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가난해도 더 행복할 수 있다고 쉽게 말해서도 안 될 것 같았다”고.(김남희의 ‘라틴아메리카 춤추듯 걷다’(문학동네) 중에서)

어두워지면서 이런 감상은 탄성으로 바뀌었다. 오밀조밀한 집 속에서 하나둘 켜지는 불빛은 마치 저녁 하늘에 점찍듯 나타나는 별 같았다. 어둠이 짙어가면서 덕지덕지 붙어 있던 모든 고단함도 사라져갔다. 힘겹게 얻은 평온함에 안도하면서 다시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오피스와 호텔이 밀집되어 있는 중심가에 여장을 풀고 나도 낮게 뜬 라파스의 별이 되었다. 먼저 높게 뜬 별이 희미해질까봐 보조등만 켠 채 좀 전에 내려다보았던 별들을 한참 동안 올려다보다 잠이 들었다.

다음날 마주한 라파스 도심의 첫인상은 서글펐다. 몇몇 삐죽한 빌딩을 제외하면 꼭 무허가 판자촌 같았다. 거리에는 쓰레기들이 널려있고, 낡은 차와 사람들이 뒤엉켜 다닌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형형한 눈빛의 키 작은 인디오 상인들은 나의 의중을 재빠르게 읽어가며 팔을 끈다. 그런 제지가 싫지 않았다. 사람 냄새가 향긋했다. 오히려 이런 주춤거림 때문에 이곳이 숨을 가쁘게 하는 고산지대라는 사실을 잊고 다녔다.

그렇게 처음 방문한 곳은 무리요 광장(Plaza de Murillo)이었다. 이 광장은 라파스의 가장 중심으로, 애초에는 스페인 식민지하의 여느 도시처럼 ‘아르마스 광장’으로 불렸다. 스페인에 대항하여 독립투쟁을 하다가 이 광장에서 교수형을 당한 페드로 도밍고 무리요를 추모하기 위하여 이렇게 이름을 바꾼 것이다. 광장의 중심에는 무리요의 동상이 서 있고, 북쪽에는 대통령궁, 동쪽에는 국회의사당이 있다. 1946년 이곳에서 처형당한 후 가로등에 매달린 갈베르토 비야로엘 대통령의 흉상도 있다. 광장에 지천으로 널린 비둘기들은 관광객의 어깨 위로도 서슴없이 올라 모이를 받아먹는다. 이 생각 없는 짐승만이 ‘평화’라는 이 도시의 이름을 증거하고 있었다.

19세기 군복 차림의 근위병들이 보초를 서고 있는 분홍색 건물이 대통령궁이었다. 대통령궁답지 않게 보초의 경계가 느슨하다. 사진을 찍으려고 슬그머니 옆으로 다가가니 씩 웃어준다. 대통령궁의 별명은 ‘불탄 궁전(Burnt Palace)’이다. 1825년 완공된 이 건물은 1875년 민중 봉기 때 불에 탄 적이 있으며, 이후로도 여러 번의 파괴와 보수가 반복되었다. 독립 이후에도 만만치 않았던 볼리비아의 아픈 역사가 곳곳에 묻어 있다. 국회의사당은 과거 수도원이었다. 그 뒤 대학교로 바뀌었다가 20세기 초에서야 국회의사당이 되었다. 코린트식 기둥과 제법 큰 돔 지붕이 얹혀있지만 정작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거꾸로 가는 시계다. 숫자도 반대 방향으로 새겨져 있고 바늘도 반대방향으로 돈다. 우리가 의심 없이 사용하는 ‘시계바늘 방향’은 과연 어느 방향인가, 또 하나의 고정 관념이 무너졌다. 여러 나라를 보면서 이렇게 소박한 대통령궁과 국회의사당도 처음이었지만 엘알토 지역의 벽돌집을 생각해보면 화려하기 그지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무리요 광장 인근의 하엔 거리는 식민지 풍의 아름답고 한적한 거리다. 자갈을 덮은 거리를 따라 걷다보니 작고 아담한 박물관이 많이 보였다. 금은으로 만든 공예품을 전시한 황금 박물관, 라틴 아메리카의 음악을 접할 수 있는 악기 박물관, 도시의 모형을 전시해 놓은 바르가스 박물관, 그리고 코카 식물에 관한 모든 것을 알려주는 코카 박물관도 있었다.

다시 무리요 광장 건너편의 산 프란시스코 광장으로 갔다. 이 광장에는 이 도시와 역사를 함께한 산 프란시스코 성당이 있다. 이 성당은 라파스가 건립되던 1548년에 처음 건축되었지만 엄청난 눈보라에 붕괴되고 말았다. 이후 18세기에 바로크와 메스티소 건축 양식이 조화를 이룬 지금의 모습으로 재건축되었다. 이 성당이야말로 라파스의 랜드 마크 같았다. 성당만은 여느 도시와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이 성당을 끼고 노점상이 즐비한 왼쪽의 언덕길을 올라가니 관광객들에게 가장 이름난 ‘마녀시장’이 나왔다. 원주민들이 약초나 부적, 주술용품 등을 팔기 시작하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단다. 가게마다 주렁주렁 매달린 말린 야마 새끼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새집을 지을 때 마당에 묻으면 행운을 부른단다. 그 외 정체불명의 각종 약재나 주술 인형 등이 빼곡한 가게 안은 꼭 마녀가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섬뜩하고도 낯설었다.

오후에는 택시를 타고 마라사 마을의 ‘달의 계곡’을 갔다. 시내에서 30~40분 거리인 이곳은 원래 인디오들이 ‘영혼의 계곡’이라 불렀다. 달에 첫 발자국을 남겼다는 닐 암스트롱이 이곳을 방문한 뒤 이곳 지형이 마치 달의 계곡같이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 이곳은 수만 개의 흙기둥이 기암괴석처럼 서 있는 장관을 연출한다. 갖가지 모양의 흙기둥은 규모만 작을 뿐 미국 브라이스 캐넌을 연상케 했다. 흙기둥은 바짝 마른 상태로 손을 대면 흙이 우수수 떨어지곤 했다. 비라도 한바탕 내리면 모두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거꾸로 가는 시계처럼 오히려 비에 의해 사그라지는 슬픈 ‘흙 꽃’ 같았다. 대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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