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벵거와 김관용

  •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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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07   |  발행일 2018-06-07 제31면   |  수정 2018-06-07
[영남타워] 벵거와 김관용
이창호 경북부장

‘아름다운 갈무리’를 생각한다. 지난달 초 영국 런던 에미리츠스타디움에선 뜻깊은 세리머니가 있었다. 세계적 축구 명장 아르센 벵거(69)를 위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아스날의 지휘봉을 22년 만에 내려놓은 그를 위한 ‘가드 오브 아너(guard of honour·공로를 치하하는 의장 행사)’였다. “메르시 아르센(고마워요 아르센 벵거)”이라는 홈 팬들의 연호에 그는 “이제 평범한 한 명의 아스날 팬으로 돌아간다. 이제 나는 여러분과 똑같다”고 작별 인사를 건넸다. 그는 지난 세월 아스날을 이끌며 EPL 우승 3회·FA컵 우승 7회의 금자탑을 세웠다. 2003~2004시즌엔 신계(神界) 영역인 ‘무패 우승’까지 이뤄냈다. 그는 그런 빛나는 업적을 선수와 팬, 구단에 오롯이 돌릴 만큼 겸손한 감독이었다. 올 들어선 일찌감치 사임의 뜻을 밝혔다. 스스로 몸을 낮추며 아스날과의 이별을 준비했다. 구단과 새로 선임될 후임 감독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였다. 그렇게 그는 아스날과 조용하고 아름답게 작별했다.

벵거를 생각하면 김관용 경북도지사가 오버랩된다. 닮은 데가 많아서다. 두 사람 모두 흙수저에서 출발해 각고의 노력으로 걸물이 됐다. 벵거는 선수 시절 대부분을 아마추어로 보냈지만 훗날 EPL에서 꽃을 피웠다. 김 도지사도 자신의 얘기처럼 ‘꼴머슴으로 팔려갈 뻔했던 전형적 흙수저’였다. 사범학교를 나와 초등교사~행정고시 패스~세무서장~3선 시장~3선 도지사(대한민국 유일 민선 6선)까지 이룬 입지전적 인물이다. 특히 경북도지사로 재임하며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업적을 이뤘다. 그 어렵다던 ‘경북도청 이전’을 성사시킨 것은 가장 빛나는 공로다. 시도지사협의회장을 맡아 지방분권과 국토균형발전에도 각별한 열정을 바쳐 온 그였다.

그저 순수한 ‘워커홀릭(Workaholic)’ 으로 봐야 할까. 김 도지사는 퇴임을 코앞에 두고도 일을 벌였다. 해외출장도 올 들어서만 3차례였다. 가장 최근(지난달 28일~6월4일)엔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을 다녀왔다. 북방경제시대 선점을 위해서라고 했다. 이는 그가 재임 중 각별히 공을 들인 ‘코리아 실크로드 프로젝트’의 하나다. 모처럼 맞은 남북 화해 모드 속 ‘물 들어올 때 노 젓겠다’는 요량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임기 말 이 같은 행보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지방선거를 코앞에 둔 이즈음, 이 사업이 그리도 시급한 일인가. 해외출장의 내용을 갖고 뭐라 하는 게 아니다. 출장 시점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뒷말’이 나오는 까닭이다. 북방경제시장 개척은 북미정상회담 등 향후 한반도 정세를 진득하게 지켜보고 난 뒤에 나서도 늦지 않다.

옛 선조들의 ‘까치밥’ 지혜를 생각해 보자. 다 먹지 않고 조금은 남겨두는 것, 다 채우지 않고 조금은 비워두는 것이다. 주역(周易)에도 ‘석과불식(碩果不食)’이란 말이 있다. 큰 과실은 다 먹지 않고 남겨 둔다는 뜻이다. 까치밥도, 석과불식도 모두 ‘훗날의 긴요함’을 알고 있기에 행하는 것이다. 그런 속깊은 배려심을 김 도지사에게 바란다. 새롭게 선출될 민선 7기 경북도지사를 위해 조금은 남겨둬도 좋지 않을까. 그래야 사업(프로젝트)의 연속성을 후임자에게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김 도지사는 마지막 20여 일의 노정(路程)에 서 있다. 지금 그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그 첫째가 선거철 해이해질 대로 해이해진 공직 기강을 다시 다잡는 일이다. 일찌감치 복지부동한 채 특정 후보에게 줄 설 생각만 하는 공무원에겐 가차 없이 불호령을 내려달라. 하늘이 두 쪽 나도 오는 30일까진 경북을 지켜야 할 도백(道伯)이기 때문이다. 한자처럼 ‘경북도 맏이’의 임무에 끝까지 최선을 다해달라. 그러고 난 뒤 이임식 날, 고향인 구미시민으로 돌아가는 김 도지사를 위한 ‘가드 오브 아너’가 펼쳐지길 기대한다.
이창호 경북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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