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애의 문화 담론] 리빙(Living)문화의 변화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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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29   |  발행일 2018-06-29 제39면   |  수정 2018-06-29
흙·꽃·숲이 있는 라이프…일상이 힐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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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라돈 등 도시환경의 심각한 문제로 인해 호젓한 숲을 찾아 나서는 도시인들이 많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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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애씨가 거주하고 있는 경산시 남산면 산양리 인근 전원마을.

상주인구 250만명의 대구. 아침 출근길엔 숨막히는 교통지옥을 겪어야 하고 낮시간 회사에선 일에 쫓기고 시간에 쫓긴다. 퇴근길엔 지친 몸으로 귀가하면 사방이 시멘트 벽에 가로막혀 후텁지근하고 가슴이 답답하다. 아파트단지엔 키즈 파크 위주의 소공원이 조성돼 있긴 하지만 노인들로 붐빈다. 그 시각 아이들은 모두 학원에 가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단지에서 몇 발짝 떨어진 거리로 나와 조금만 걷다 보면 한낮 땡볕에 이글거리던 열기가 아직 식지 않은 데다 자동차 경적과 소음으로 스트레스만 쌓이기 마련이다. 야밤엔 열대야로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한 건물 안에서 주거, 헬스, 외식, 쇼핑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주상복합도 편리한 리빙(Living)문화의 척도로 꼽히고 있으나 사방 벽으로 가로막힌 라이프스타일은 여느 아파트와 마찬가지다. 리빙문화에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하나 빠져 있기 때문이다. 맑은 공기와 흙냄새를 듬뿍 마실 수 있는 자연이다.

“답답한 회색도시를 벗어나다”
도시와 1시간 거리 전원생활 시작
숲 우거진 호젓한 시골길 출·퇴근
집앞 초등교정은 조깅코스로 만점
‘억대 부농’청장년 귀농·귀촌 증가
농촌가꾸기 젊은층도 발벗고 나서

그래서 모두들 어디 갈 곳이 없다고 푸념한다. 판에 박힌 도시생활의 일상이다. 게다가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라돈, 미세먼지 등 발암물질을 피부로 마주치며 긴장과 분노와 우울증으로 살아가는 도시환경도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선지 아파트 건물이 에워싼 도시공간에서 자연이 그리운 주민들은 주말마다 산길 따라 물길 따라 호젓한 숲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고속도로와 국도는 도시 탈출행렬이 체증을 이루기 마련이다. 도시살이 리빙문화가 직면한 풍속도다.

차라리 가까운 시골로 이주하면 어떨까? 그러나 대구 인근 시골도 예외가 아니다. 웬만한 곳은 주택난에 밀려난 도시인들의 주거문화를 위한 아파트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밀집해 있다. 고민 끝에 떠오른 아이디어가 좀더 멀리 떨어진 한적한 시골의 전원주택이다.

40대 중반 커리어우먼 A씨. 그녀는 3년 전 답답한 도시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큰맘 먹고 전원살이를 선택했다. 찌든 도시생활에 지쳐 조용한 전원살이를 꿈꾸며 틈나는 대로 인터넷을 검색한 결과 매물로 나와 있는 참한 전원주택을 발견했다. 단지도 아닌 200여 평 규모의 비교적 넓은 대지에 독립가옥처럼 신축된 보기 드문 사각형 이층집.

대구에 있는 회사에서 찻길로 한 시간 거리다. 대구에서도 웬만한 곳은 집에서 직장까지 출퇴근 길이 족히 한 시간은 잡아야 하는 만큼 그리 먼거리도 아니다. 게다가 숲이 우거진 호젓한 시골길을 달리노라면 마치 드라이브를 즐기듯 싱그러운 기분에 젖어들게 된다.

그녀는 현장을 둘러보고 꼼꼼하게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바로 계약했다. 그렇게 서둔 데는 주택 앞 이면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초등학교 교정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테라스에 앉아 바라보면 드넓은 정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자연석이 즐비한 울타리엔 봄이면 개나리와 진달래, 영산홍이 흐드러지고 여름엔 장미, 원추리, 접시꽃 등이 뒤덮는다. 그리고 가을엔 코스모스와 국화가 아름다운 꽃길을 이루며 겨울 채비를 알린다.

자연 그대로의 정원. 꽃길 사이 교정에는 아름드리 느티나무와 은행나무, 모과가 숲을 이뤄 한여름에도 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꽃과 풀과 나무가 어우러진 반려의 숲은 보기만 해도 금방 숨통이 트인다. 게다가 누런 황토와 사질토로 다져진 운동장의 그리 넓지도 않은 트랙은 아침·저녁의 조깅코스로도 안성맞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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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조깅 후 숲속을 거닐다가 잠시 벤치에 앉아 사색에 잠길 땐 그야말로 축복이 따로 없다고 했다. 그래선지 그녀는 “대구경북에서 가장 큰 정원이 있는 전원주택에서 흙냄새를 맡으며 산다”고 지인들에게 자랑한다.

최근 고령화시대가 급속화되면서 은퇴자들의 라이프 스타일도 변해 귀농·귀촌 붐이 일고 있다고 한다.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우거진 숲에서 정화되는 맑은 공기와 흙냄새가 노후 건강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비단 은퇴자들뿐만 아니라 당장 호구지책에 매달려야 하는 도시 청장년들의 귀농도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최악의 취업난에 청년 일자리는 하늘의 별따기다. 이 때문에 하루 놀고 하루 쉬는 노동약자가 200만명에 육박한다고 언론에서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하여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떠오른 것이 귀농. 지난 한해 동안만도 전국의 귀농인구가 50만명을 돌파 했고 이 중 2030청년층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통계수치도 나와 있다. 고령농(高齡農)의 은퇴로 빈자리가 늘어나면서 젊은 도시인들의 농업·농촌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높다는 이야기다.

손에 흙 한 번 안 묻힌 영농문외한도 걱정할 필요없이 몸만 가면 된다고 한다. 각 농협에 귀농·귀촌센터가 설립돼 있고 최장 3년간 월 100만원씩 정착금을 지원하고 영농기술 지원과 창농(創農) 마이스터 등 농업 발전을 위한 모든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귀농·귀촌시대. 1970년대 개발경제에 편승한 이농사태로 농촌에 젊은 일손이 모자라 노인들이 구시대적 영농으로 뼈 빠지게 농사를 지어 봐도 소득은 고만고만해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이농 반세기 만에 귀농으로 리턴하고 젊은 농업인들에 의한 친환경 과학영농과 기술발전으로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 억대의 부농이 속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숲과 흙이 어우러진 힐링 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자연을 아름답게 가꾸는 데도 청년농업인들이 발벗고 나선다고 했다. 때문에 농촌의 리빙문화도 몰라보게 변화하고 있다. 그런 영향인지 최근엔 농약 살포로 사라졌던 개구리 소리가 들려온다고 한다. 자연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날로 변화하는 농촌의 리빙문화가 상쾌·유쾌하다. 장수만세!

대구미술협회 사무처장·미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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