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의 패션디자이너 스토리] 리카르도 티시(Ricardo Tisci)

  • 박진관
  • |
  • 입력 2018-08-17   |  발행일 2018-08-17 제40면   |  수정 2018-09-21
‘지방시’ 고딕미학 이끈 저력, ‘버버리’에도 통할까
리카르도 티시가 지방시에서 활동할 때 선보였던 다양한 의상들.
[류현의 패션디자이너 스토리] 리카르도 티시(Ricardo Tisci)

다소 음침하고 어두운 분위기의 모델들이 사랑스럽게 보인다. 리카르도 티시의 마법이 작용한 때문일까. 뱀파이어를 연상시키는 창백한 스타일마저도 로맨틱하게 만들어 버리는 이 디자이너는 부진했던 지방시를 톱 브랜드의 반열에 성큼 올려놓더니 올해는 버버리의 수장이라는 깜짝 발표를 통해 리카르도 티시가 구축할 앞으로의 버버리에 대해 화려하게 예고하고 있다.

[류현의 패션디자이너 스토리] 리카르도 티시(Ricardo Tisci)
리카르도 티시

지방시가 구축한 블랙 기본팔레트
음울함 속 관능·로맨틱·낭만 녹여
톱 브랜드로 올리고 12년만에 작별

작년 버버리와 손잡고 새로운 도약
새 로고와 오렌지색 모노그램 발표
英대표 이미지 우려속 거대시장 주목


[류현의 패션디자이너 스토리] 리카르도 티시(Ricardo Tisci)
버버리의 새로운 로고와 모노그램.

리카르도 티시는 1974년 이탈리아 남부지방 타란토에서 9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어려운 형편으로 인해 12세 때부터 미장 보조로 일을 하게 되나 화목한 가정에서 여덟 누나들로부터 많은 사랑과 영향을 받으며 자랐다. 유난히 수줍음이 많았던 티시는 그림 그리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밀라노에 있는 미술학교에 진학하여 학위를 취득하게 되고 예술계의 명문으로 손꼽히는 영국 런던의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의 패션디자인과에 국가장학생으로 입학하여 우여곡절 끝에 학업을 마치고 1999년 졸업하게 된다. 졸업 후 그는 이탈리아로 돌아와 안토니오 베라르디, 퓨마, 코카파니 등 유명 회사에서 디자인 디렉터로 일하며 경력을 쌓게 된다.

당시 이탈리아에서 가죽제품으로 유명한 루뽀 리서치사는 신진 디자이너 지원의 일환으로 밀라노 컬렉션에 고품질의 가죽을 공급하고 그 제품을 고급 백화점에서 판매하였는데, 2004년 3월 티시는 루뽀와 3년의 계약을 맺으며 컬렉션을 준비하지만 계약 이후 경영난에 허덕이던 루뽀사로 인해 이 계약은 무효가 된다. 이후 티시는 자신의 레이블을 선보이기로 결심하고 2004년 9월 밀라노 컬렉션에서 본인의 이름을 건 ‘리카르도 티시’의 첫 패션쇼를 개최한다.

티시의 첫 컬렉션은 황량하고 버려진 공장을 무대로 밤늦은 시간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진행되어 장례식을 연상시켰으나 섬세하고 정교한 작업의 구슬들, 주름을 잡아 입체적인 음영이 어우러진 여성적인 실루엣의 옷들은 바이어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으며 인기를 끌었다. 이후 다음 시즌 컬렉션도 성공적으로 치른 티시는 계속해서 본인의 레이블을 구축하길 원했으나 2005년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지방시에서 여성복 디렉터라는 뜻밖의 제안을 받고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지방시는 창립자이자 디자이너인 위베르 드 지방시가 당대의 패션 아이콘인 오드리 헵번이 출연한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영화 의상을 디자인하면서 유명해졌다. 그러나 지방시의 은퇴 후 유명 디자이너인 존 갈리아노, 알렉산더 맥퀸, 줄리앙 맥도날드가 차례로 이끌었는데도 심각한 침체기에 빠진 브랜드에 뚜렷한 성과를 안겨주지 못하고 떠나갔다. 그러던 중 리카르도 티시의 컬렉션을 눈여겨본 지방시의 CEO 마르코 고베티는 지방시의 여성복과 오트 쿠튀르 라인의 디렉터로 티시를 지목했고 당시 30세였던 티시가 지방시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합류하게 되었다. 이로써 지방시는 확고한 브랜드 정체성을 확립하게 되고 기록적인 매출을 달성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만들게 된다.

[류현의 패션디자이너 스토리] 리카르도 티시(Ricardo Tisci)

이후 리카르도 티시는 창업자 지방시가 구축한 블랙을 기본 팔레트로 티시 자신의 첫 컬렉션에서 보여준 다소 어두운 모습을 지방시의 브랜드 철학에 그대로 녹여낸다. 음울한 느낌의 고딕을 관능적이고 로맨틱하며 다소 낭만적이기까지 한 고딕 미학으로 발전시키며 매 시즌 컬렉션이 발표될 때마다 잇 아이템을 만들어내면서 자신만의 색깔을 구축해갔다. 가죽을 정교하게 잘라낸 섬세한 레이스 디테일의 바이커 재킷, 귀여운 밤비가 그려진 그래픽 스웨터, 반투명 오간자에 구슬공예와 함께 플로랄 패턴의 자수로 수놓아진 스커트 등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모순되는 매치의 완벽한 룩을 완성하는 티시의 능력은 매 시즌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티시는 그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2017년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자 그에게 많은 부와 명예를 가져다 준 지방시와 12년 만에 작별을 고하게 된다. 이후 이탈리아 브랜드인 베르사체로 갈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했지만 티시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영국을 대표하는 브랜드인 버버리와 손을 잡았다. 이제 그가 진행하는 새로운 버버리는 올해 9월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티시의 버버리행은 패션계 초미의 관심사였기 때문에 기대도 크지만 그에 반한 우려도 적지 않았다. 일례로 얼마 전 발표한 버버리의 새로운 로고와 오렌지색의 모노그램은 호평보다는 실망이 크다는 반응이다. 17년 동안 버버리를 이끌었던 크리스토퍼 베일리는 버버리를 상징하는 트렌치 코트와 체크 패턴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영국을 대표하는 브랜드에서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시켰다는 평이었기에 이번에 발표한 로고에 대한 반응으로 티시의 어깨는 조금 더 무거워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 버버리가 부진한 중국시장의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성복과 오트 쿠튀르에 모두 능한 리카르도 티시가 적임자임에는 틀림없다. 그는 과거 정체되어 있는 지방시의 매출을 5억유로(6천250억원)에서 6배나 올리고 7개였던 매장을 70개 이상으로 늘린 저력이 있다.

버버리를 상징했던 말을 탄 기사문양의 로고는 브랜드의 새로운 수장인 티시의 등장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리카르도 티시의 버버리는 이제 시작이다. 오는 9월 리카르도 티시가 진행하는 새로운 모노그램의 버버리를 설레는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 (rh0405@krif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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