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박, 가스 경보기 설치 제외…소방안전 규제 ‘사각’

  • 송종욱 김기태 조규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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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20   |  발행일 2018-12-20 제3면   |  수정 2018-12-20
경북 농어촌 숙박·체험시설 안전실태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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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지역 농어촌 민박 시설 주인 A씨가 외부에 설치된 보일러를 가리키고 있다. 구미=조규덕기자 kdcho@yeongnam.com

강릉 펜션 참사 원인이 보일러 문제 등으로 압축되고 있는 가운데, 전국 각지 농어촌 펜션·야영장 등 안전 관리가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이번 펜션 사고는 인재(人災)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중론이다. 경북지역에 산재해 있는 펜션·야영장 등 숙박·체험시설의 안전 실태를 긴급 점검했다.

◆소방 안전 사각지대 ‘농어촌 펜션’

19일 오후 2시쯤 구미지역 한 펜션. 상호는 펜션이지만 지자체에 신고만 하면 영업이 가능한 ‘농어촌 민박’ 시설이다. 이 곳은 주인이 창고로 쓰던 건물을 지난 10월 개조한 뒤 농어촌 민박으로 신고해 영업을 하고 있다. 기자가 찾은 이날은 평일이어서 펜션엔 손님이 없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방 2개와 큰 거실·화장실 등이 보였다. 그러나 소방시설은 주방 옆에 있는 소화기 한 대와 거실·방에 설치된 화재경보기가 전부였다. LP가스를 이용해 난방을 하고 있는 데도 일산화탄소 등 유해가스를 감지하는 경보기는 보이지 않았다. 특정 소방시설물이 아닌 농어촌 민박은 호텔·모텔·여관 등 일반숙박시설과 달리 가스감지기같은 소방 시설을 설치해야 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농어촌 민박은 건축법상 주택으로 분류돼 사실상 소방 안전 규제에서 벗어나 있다.


펜션으로 영업 민박, 건축법상 주택 분류
보일러 연소가스 감지기 설치의무 없어

‘펜션 1번지’ 경주엔 미등록 영업 300곳
이용객 안전사고 나면 피해보상 못 받아

불법 적발돼도 지자체 사후관리 무대책



다행히 이 펜션은 가스 보일러가 건물 외부에 설치돼 있어 유해가스가 내부로 유입될 가능성이 낮았다. 하지만 가스 점검을 주인이 직접 해야 하는 등 관리가 체계적이지 않았다. 주인 A씨는 “사고가 난 것은 매우 안타깝다. 하지만 소규모 펜션은 일주일에 한 번씩 손님이 오거나 특정 시기에만 찾는다. 모텔 등 일반숙박시설처럼 소방시설을 설치할 경우 비용 부담 때문에 운영이 어렵다”고 덧붙였다.

한편 구미지역은 경주·포항 등 관광 도시와 달리 현재 신고된 농어촌 민박 시설은 모두 14곳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가스 보일러를 이용하는 시설은 2곳이며, 나머지는 기름(6곳)·전기(5곳)·화목보일러(1곳)를 이용하고 있다. 구미시 관계자는 “조만간 농어촌 민박 시설에 대한 안전점검을 실시할 예정이다.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한 만큼 철저히 점검해 시민들이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불법 펜션 급증…사고 나도 보상 막막

19일 찾은 경주 보덕동 펜션마을. 이 곳은 보문관광단지와 가까워 주말마다 많은 관광객이 찾아와 이용하는 곳이다. 130곳의 펜션이 오밀조밀 들어서 있다. 경주시에 따르면 경주지역 펜션은 모두 950곳(등록 650·미등록 300곳)으로 경북에서 가장 많다. 전국에서도 13번째다.

그러나 ‘관광 1번지’ 경주에 최근 이용객 편의를 이유로 간이수영장·식당·편의점을 갖춘 대규모 펜션이 늘어나면서 각종 안전사고가 끊임없이 나고 있다. 이들 펜션은 대부분 불법이다. 보험가입이 안돼 사고가 나도 보상을 못 받는다. 2015년 8월 경주 A펜션 수영장에서 한 대학생이 물놀이 중 중상을 입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숨지는 사고가 났다. 이 펜션은 업주가 오피스텔 건물을 임차해 펜션으로 둔갑시켜 등록도 하지 않고 불법 영업을 해 왔다. 결국 유족과의 피해보상 문제가 법정으로 이어졌다.

경주시 등 지자체는 관련 규정 미비로 펜션에 대한 시설 점검을 사실상 하지 않고 있다. 펜션 업주를 대상으로 해마다 여는 서비스·안전교육이 전부다. 경주보문관광단지 인근엔 호텔·콘도 객실이 4천500개에 이르지만 주말 예약이 어려운 실정이다. 회원권 이용객도 예약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따라서 청소년·대학생들은 호텔·콘도보다 예약이 쉽고 경제적 부담이 덜한 펜션을 이용하기 마련이다. 이들 펜션은 홈페이지를 통해 펜션 시설 및 안전·서비스를 파악하기 어렵다. 경주시 관계자는 “경주지역에 미등록 불법 펜션 등을 포함할 경우 펜션 수가 1천개에 이른다. 관리·감독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서 “엄격한 법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관리감독 소홀한 포항시 무대책 일관

포항지역에서도 민박시설에 대한 관리·감독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국무조정실 운영 실태 점검에서 수십 곳의 무허가 민박시설이 적발됐다. 사정이 이런데도 포항시는 대책 마련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19일 포항시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국무조정실은 포항지역 농어촌 민박·관광펜션 운영실태에 대한 전수 조사를 실시해 이용객 안전 위협 및 무허가 운영 사례를 적발했다. 이를 토대로 경북도가 지난해 11월~연말 포항지역 농어촌 민박·관광펜션 지정·운영 실태를 조사해 민박 미신고 업소 18곳을 적발, 검찰에 고발했다. 또 불법 증축·무단용도 변경 등 사후관리가 부적절한 민박 26곳에 대해서도 행정조치를 내렸다.

농어촌 민박의 경우 건축면적 230㎡ 미만 주택에 소화기·단독 화재경보기 등 간단한 소방시설만 갖추고 읍·면·동에 신고하면 누구나 영업을 할 수 있다. 각종 안전 규제에서 벗어나 있는 셈이다. 이번에 적발된 업소 대부분은 시설 규모가 컸고, ‘펜션’ 상호를 쓴 것으로 드러났다. 농어촌 민박의 경우 규제에서 자유로운 점을 악용해 불법 증축·무단 용도변경을 하는가 하면, 허가를 받지 않은 채 불법 숙박영업을 하는 사례가 많았다.

사정이 이런데도 포항시는 뒷짐만 지고 있다. 포항시에 따르면 지역에서 신고된 민박시설은 남구 89곳·북구 196곳 등 모두 285곳이다. 시 관계자는 “시설 규모가 큰 펜션의 경우, 숙박업으로 등록되지 않아 파악이 어렵다”고 해명했다. 게다가 포항시 각 부서는 민박·펜션에 대한 직접적인 관리·감독 권한이 없다며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고 있다. 민박시설 현황을 갖고 있는 한 부서 관계자는 “직접적인 관리는 남·북구청에서 관리·감독하고 있다. 우리 부서에선 관여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남·북구청 관계자는 “농업진흥법에 따라 민박시설이 운영되다 보니 직접 관여가 어렵다”면서 “민박·펜션에서 위생·건축물에 문제가 있으면 해당부서가 관리·감독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정부 조직, 즉 남의 손에 의해 포항지역 민박시설의 엉터리 관리가 여실히 드러났지만 포항시는 여전히 무대책이라는 데 있다.

포항시 감사담당실 관계자는 “국무조정실 실사를 토대로 한 경북도 감사에서 문제가 확인됐다”며 “아직까지 포항지역 민박시설 관리·감독을 위한 대책 회의는 계획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경주=송종욱기자 sjw@yeongnam.com
포항=김기태기자 ktk@yeongnam.com
구미=조규덕기자 kdch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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