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소 잃은 외양간 방치

  • 김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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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21   |  발행일 2019-03-21 제30면   |  수정 2019-03-21
[취재수첩] 소 잃은 외양간 방치
김기태기자<경북부>

2005년 이전엔 조합장 선거가 조합마다 개별적으로 치러졌다. 경운기에 돈을 싣고 다니면서 뿌린다는 ‘경운기 선거’로 불리며 수많은 불법이 횡행했다. 이 때문에 2005년부터 선거관리위원회가 의무적으로 위탁받아 선거를 관리했다. 그러다가 2015년 3월11일 사상 최초로 중앙선거관리위 관리 하에 전국에서 동시에 치러져 1천326개 조합의 조합장을 선출했다. 불법이 횡행하던 예전 선거의 폐해를 없애고 공정한 선거문화 정착을 기대했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곳곳에서 혼탁·과열선거가 잇따랐다. 제1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 이후 경북에선 고발·수사 의뢰 등으로 10명이 당선 무효가 돼 재선거가 치러졌다. 대구는 2곳에서 재선거가 열렸다. 공직선거와 달리 후보자만 선거 운동을 할 수 있는 ‘깜깜이 선거’라는 제도적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선거 직후, 현행 선거제도 문제점을 보완하지 않는 한 부정선거를 뿌리뽑기 어렵다는 조합원들의 자조가 흘러나왔다.

4년의 시간이 흘러, 지난 13일 제2회 조합장 선거가 치러졌다. 이번 선거에서도 불법 행위가 끊이질 않았다. 대구경북에서 당선자 19명을 포함해 200여명이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대부분이 금품·향응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불법행위를 해서라도 일단 조합장에 붙고 보자는 식이다. 억대 연봉과 수천만원의 업무추진비, 막강한 인사권·사업집행권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다 현행 조합장 선거운동의 제약으로 선거 부정을 부추기고 있다.

대부분의 조합장 선거는 현직 조합장이 매우 유리하게 돌아가는 구조다. 비상임 조합장 체제로 운영되는 농·축협조합은 ‘3선 연임 제한’ 규정도 먹히지 않는다. 현행 농협법에선 조합 자산총액이 2천500억원 이상이면 조합장을 비상임으로 하도록 하고 있다. 비상임 조합장은 연임 제한이 없어 계속 재임이 가능하다. 전문 지식을 갖춘 상임 이사가 경영을 맡지만 실상은 비상임 조합장이 실권을 행사하기도 한다. 특정인이 조합장을 오래 맡을 경우 조합 사유화 등 부작용이 생길 소지가 커 관련법 개정이 시급하다.

제1회 조합장 선거 직후, 정부는 “금품제공·허위사실·토론회 금지 등 문제점에 대해 종합대책 마련과 조합원 자격이 없는 조합원에 대한 기준 구체화와 조합장의 과도한 권한을 제한하기 위한 견제기능 강화 방안을 검토한다”고 했다. 지난 13일 치러진 제2회 조합장 선거 직후에도 정부는 “선거운동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현 규정을 완화하고 조합원 알 권리를 확대하기 위해 관련 법을 개정하며, 조합 비리·무자격 조합원 근절을 위해 제도 개선을 추진한다”고 했다.

어째 4년 전과 비슷한 대책이다. 관련 법 개정에 대해 뒷짐을 지고 있는 국회도 자유롭지 못하다. 돈 선거가 뿌리 내리지 못하도록 유권자인 조합원의 인식 개선이 우선이다. 또 조합장의 과도한 보수·업무추진비, 인사권 전횡을 막는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 우리는 알면서도 외양간의 소를 두 번이나 잃었다. 4년 뒤 선거에서 “4년 전 선거 때와 별반 달라진 게 없다”는 말을 반복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선거제도 개혁을 요구한다.김기태기자<경북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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