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지방소멸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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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09   |  발행일 2019-05-09 제31면   |  수정 2019-05-09
[영남타워] 지방소멸

도시민에게 시골 외갓집은 늘 향수(鄕愁)의 대상이다. 세월의 나이테 속에 노스탤지어의 아련함이 켜켜이 쌓여 있다. 하지만 필자는 어린시절에 자주 가보지 못했다. 고작해야 두세번 정도. 무엇보다 교통이 불편했던 탓이다. 당시만해도 마산에서 합천 외갓집까지는 말 그대로 고생길이었다. 시간만 해도 족히 한나절은 걸렸다. 자주 다니지도 않는 버스를 기다리고, 여러번 갈아타고, 꾸불꾸불한 비포장 도로에서 한참을 시달린 후에야 겨우 버스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그게 끝도 아니었다. 외갓집 동네가 산골이어서 어머니가 바리바리 싼 짐들을 함께 들고서 10분 넘게 걸어야 했다.

외갓집에 마지막으로 가 본 것은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였다. 40년 전이지만, 당시도 그 마을의 앞날이 무척 걱정스러웠다. 주민 수가 수십명에 불과한 데다 대부분 노인이었기 때문이다. 마을이 곧 없어져도 이상할 게 없었다. 요즘들어 ‘지방소멸’이란 말을 자주 접하면서 외가 마을에 대한 걱정이 되살아났다. 얼마전 인터넷으로 찾아봤다. 다행히 마을은 ‘소멸’되지 않았고, 주민이 살고 있었다. 궁금증이 생겼다. 노인밖에 없던 마을이 어떻게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지. 비결은 귀농·귀촌이었다. 축산과 시설하우스 재배지로 거듭났던 것. 아무리 외딴 마을이라고 해도 소득창출이 가능하다면 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주민수가 40명에 불과한 마을이 언제까지 존속할지는 미지수다.

‘지방소멸’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기우(杞憂)가 아니다. 통계가 설득력이 있다. 지방소멸이란 말은 일본의 ‘마스다 보고서’에서 나왔다. 2014년에 발표된 이 보고서의 파장은 컸다. 2040년쯤 되면 우리나라의 읍·면·동·이(里)에 해당하는 일본의 시·구·정·촌 절반이 사라질 것이란 경고를 날렸기 때문이다. 그 근거로 내세운 게 지역소멸지수다. 한 지역의 가임여성(20~39세) 수를 65세 이상 고령인구수로 나눈 값이다. 1.0 미만은 쇠퇴 시작, 0.5 미만은 소멸 위험, 0.2 미만은 소멸 고위험 지역으로 분류한 결과다.

마스다 보고서는 일본보다 우리나라에 더 충격적이다. 우리의 저출산, 고령화가 훨씬 심각한 까닭이다. 합계출산율(한 여성이 가임기간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만 봐도 일본은 1.4명대를 유지하지만 한국은 0.98명대로 주저앉아 세계 꼴찌 아닌가. 여기에다 농촌과 중소도시 청년들의 엑소더스는 또 어떤가. 사정이 이렇기에 우리에게 지방소멸은 미래가 아닌 현재진행형이다.

한국고용정보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전국 228개 시·군·구 중 89곳(39%)이 소멸위험 지역이다. 이 중 경북이 최악이다. 23개 시·군 중 의성을 필두로 무려 19개 시·군(82.6%)이 포함됐다. 대구 역시 소멸주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읍 단위 이하로 내려가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전체의 반쯤이 소멸위험 단계다. 사실상 지방은 붕괴상태다.

소멸위기에 처한 지자체들은 인구 늘리기에 필사적이다. 온갖 대책을 쏟아낸다. 하지만 백약이 무효다. 언발에 오줌누기일 뿐이어서 인구는 더 빠른 속도로 줄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저출산보다 수도권 집중이 가장 근원적인 문제다. 국토 면적의 10분의 1에 불과한 수도권 지역에 국민 절반이 모여 살고 있으니 지방의 공동화(空洞化)는 필연적이다. 그럼에도 정치권과 중앙정부는 어떤가. 국토균형발전은 안중에도 없다. 지방분권을 외치는 현 정부도 다를 게 없다. 수도권 규제완화와 서울 위성도시 건설에 열을 올린다. 더구나 지역 정치권과 지자체의 반발도 거의 없다. 관심이 없거나 자포자기한 상태다. ‘서울공화국’이 번창할수록 지방은 말라비틀어져 왔고 앞으로 더할 것이다. 이대로라면 지방소멸은 단지 시간문제다. 얼마 남지도 않았다. 한가닥 희망의 끈을 찾자면 지방의 내재적 역량 강화뿐이다. 세상이치가 그렇듯, 지방의 운명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 달려 있다. 그나마 수도권 패권주의에 대항할 힘을 지닌 지역 정치권, 특히 자치단체장들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허석윤 기획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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