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달과 ‘달창’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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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16   |  발행일 2019-05-16 제31면   |  수정 2019-05-16

달은 스스로 빛을 발하진 못한다. 태양의 빛을 받아 반사한다. 그래서 달빛은 외려 유려하고 은은하다. 드뷔시의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제3곡 ‘달빛’의 선율도 호수를 비추는 달빛처럼 감미롭고 평화롭다. 달만큼 우리생활에 밀접하게 스며든 행성이 또 있을까. 인류 최초의 달력인 태음력이 달이 지구 주위를 도는 공전 주기를 기반으로 하고, 지구상의 많은 동식물 생체 시계도 달의 변화에 맞춰져 있다. 월경으로 표현되는 여성의 생리 주기도 달의 공전 주기와 거의 일치한다. 조석간만의 차, 즉 밀물과 썰물 역시 달이 연출하는 우주 현상이다.

달에 대한 시각은 서양과 동양이 판이하다. 서양에선 달을 불길하고 두려운 존재로 인식하는 경향이 짙다. 그리스 신화 속의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는 사냥꾼 오리온을 전갈의 독으로 죽이는 등 악행을 반복한다. 보름달이 뜨면 늑대인간이 나타난다는 저들의 설화에서도 달은 쉽게 폄훼되곤 했다. 우리나라에선 달은 한가위 풍요의 상징이며 경원의 대상이다. 중국 시인은 주붕(酒朋)으로 달을 자주 소환했다. 이태백은 ‘월하독작(月下獨酌)’에서 시인과 달과 술의 3합을 절묘하게 녹여냈고, 소동파의 ‘적벽회고’는 ‘한 잔의 술을 강물 속의 달에 붓노니’란 말미가 압권이다.

달은 뽀얀 속살을 꽁꽁 숨기는 규방 여인마냥 자발적으로 이면(裏面)을 드러내진 않는다. 우리가 늘 보는 달은 앞면이다. 달의 자전 주기와 지구를 공전하는 주기가 일치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인류는 과학의 힘을 빌려 기어이 달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말았다. 1959년 소련의 달 탐사선 루나 3호가 달의 뒷면을 최초로 관측했다. 달의 뒷면이 평평한 앞면과는 판이하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알게 됐다. 멀리서 보는 것만으론 성에 차지 않았을까. 지난해 12월8일 중국이 쏘아올린 창어 4호는 금년 1월3일 세계 최초로 달 뒷면에 착륙했다. 창어 4호에서 분리된 로봇 위투 2호는 지금도 달 표면을 탐사 중이다.

국내에선 해괴망측한 ‘달창’ 논쟁이 뜬금없다. 나경원 의원의 ‘달창’ 발언의 휘발성은 예상외로 강했다. ‘달빛 창녀단’의 준말 ‘달창’은 얼핏 달에 대한 모독 같기도 하다. 이유야 어떻든 정치인이 입에 올릴 언어는 아니다.

박규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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