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에서 마주하다 건축과 영성의 진리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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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15   |  발행일 2019-06-15 제16면   |  수정 2019-06-15
1천년만에 내부공개 샤르트뢰즈 수도원 등
30여개 도시와 50여곳 종교 건축물 순례
건축가 승효상의 건축의 의미·가치 기록
묵상(默想)
수도원에서 마주하다 건축과 영성의 진리
이탈리아의 산 조반니 바티스타 교회. 거친 재료와 형태이지만, 공간의 경건성은 모두를 압도한다. <돌베개 제공>

저자 승효상이 종교 건축물을 순례하며 사색한 기록을 담은 건축 여행 에세이다. 여정은 이탈리아 로마에서 프랑스 파리까지 걸쳐 있다. 이전 여행 때 방문한 그리스, 아일랜드, 티베트 등을 포함하여 30여 개의 도시와 50여 곳의 건축적 장소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가 르 코르뷔지에 최고의 건축이라 말하는 라 투레트 수도원, 르 코르뷔지에가 ‘진실의 건축’이라 칭한 르 토로네 수도원, 현대 건축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긴 롱샹 성당, 영화 ‘위대한 침묵’으로 1천여 년 만에 최초로 내부를 공개한 그랑드 샤르트뢰즈 수도원, 스스로 유폐시키고 오로지 묵상과 찬송으로 일생을 보내는 수도사들의 봉쇄 수도원 체르토사 델 갈루초, 중세 최대의 수도원이었으나 지금은 폐허로 남은 클뤼니 수도원 등 종교 건축과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수도원을 통해 건축과 영성에 관한 근본적 물음을 해결하고자 떠난 여정을 담은 ‘묵상’은 크게 네 가지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첫째는 수도원이다. 세상의 경계 밖으로 스스로 추방당한 자들의 공간에서 수도사의 내밀한 심사와 절박함을 바탕으로 영성의 의미를 찾는다. 둘째는 건축이다. 각 시대의 건축은 당대를 꿰뚫는 정신을 담고 있으며, 그 시기에 통용된 양식과 기술을 이해하는 기초 자료다. ‘수도원’ 건축은 거기에 더해 신앙의 표현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수도사들은 허용된 조건 속에서 최선을 다해 수도원을 지었고, 이는 그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건축이 되었다.

수도원에서 마주하다 건축과 영성의 진리
승효상 지음/ 돌베개/ 520쪽/ 2만8천원

셋째는 여행이다. 저자는 이 여정에 건축가, 디자이너, 목수, 의사, 화가 등 다양한 직업과 다채로운 삶의 이야기를 지닌 이들과 동행했다. 함께한 이들의 면면을 기반으로 여행에 대한 풍부한 시각을 보여준다. 넷째는 저자 자신이다. 수도원, 건축, 여행이 궁극적으로는 승효상이라는 건축가의 내면으로 향한다. 승효상은 건축으로 종교를 이해하고 영성을 말하고자 했기에, 자기 고백과 성찰을 담을 수밖에 없었다. 내면을 들여다보고 고민하는 기행에서 자신의 삶과 건축에 관해 끊임없이 반추하고 묵상했다.

저자는 우리가 수도원의 삶에서 배우는 것은 진리에 대한 사모와 그를 지키려는 열망, 그리고 이를 남과 같이 나누려는 선의라고 주장한다. 그러면 궁극적으로는 ‘진리가 무엇이냐’라는 마지막 질문이 남는다고 말한다. 답을 찾든 찾지 못하든 이 질문을 품는 것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믿기에, 그는 수도원 순례를 떠났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다른 진리가 있을 수 있고, 그 모두가 모두에게 존중받아야 한다고 여긴다.

왜 수도원인가. 이 질문에 대답을 얻으려면 그의 유년기를 들여다봐야 한다. 부산 피란민촌에서 태어나 부모님이 만들다시피 한 구덕 교회의 마당을 놀이터 삼고, 교회 골방을 공부방 삼아 성장했다. 찬송과 기도 소리를 몸 안팎에 새기며 신과 신앙에 관해 끝없이 질문하고 방황하다 신학자가 되고자 결심했으나, 피란민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갑작스레 건축의 길로 들어서야 했다. 그는 ‘빈자의 미학’과 ‘지문(地文)’이라는 건축 철학을 스스로 세우고, 땅이 간직한 뭇 삶과 사람의 기억을 건축물에 담아내고자 하는 건축가이다.

‘묵상’은 수도원 순례 여정을 배경으로 건축가 승효상이 젊은 시절부터 천착한 ‘영성’이라는 주제와 건축의 관계를 말하는 책이다. 그가 처음으로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한 호흡으로 써낸 책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집중한 주제이기에 하나의 주제로 한 권의 책을 쓰겠다고 결심할 수 있었다. 영성과 건축에 관한 그의 깊은 고민과 고투, 기나긴 묵상의 시간이 반영되어 있다.

승효상은 라 투레트 수도원을 처음 방문한 1991년 여름, 태고의 빛과 암흑을 담은 듯한 경건한 건축에 충격을 받는다. 르 코르뷔지에가 갈루초 수도원과 르 토로네 수도원을 보고 그러했듯이, 지난 지식과 관습을 버리고 비웠다. 오로지 절박함으로 영성을 담은 건축을 짓고자 했다.

이 책은 결국 수도원 건축에 관한 사유로, 승효상 건축의 철학을 담아낸다. 자본주의적이고 비윤리적이며, 진부하고 습관적인 사유와 행위로 가득한 사회에 영성을 지닌 건축의 의미와 가치를 전하고자 한다. 종교적 의미로서의 영성뿐 아니라 천박하고 상업적인 건축과 사회에 지친 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고요와 묵상, 영성의 아름다움을 말하고자 한다.

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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