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김복동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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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09   |  발행일 2019-08-09 제42면   |  수정 2019-08-09
전세계에 세우려던 소녀상…故 김복동 할머니 27년간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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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지지도 지울 수도 없는 만 14세 여자아이의 참혹했던 기억을 꺼내기까지 50년의 세월이 걸렸다.”

배우 한지민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되는 다큐멘터리 영화 ‘김복동’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고(故) 김복동 할머니의 27년간의 기나긴 여정을 따라간다. 90세가 넘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를 돌며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고, 불굴의 의지로 누구보다 끝까지 평화의 메시지를 세계에 전파한 위대한 투사이자 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의 모습이다.

김복동은 “일본에 가면 군복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며 돈을 벌 수 있다”는 꾐에 빠져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지 8년째 되던 22세에 기적처럼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 기간 동안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일본군의 침략경로를 따라 끌려 다니며 지옥 같은 성노예의 삶을 살았다.


14세에 일본군 침략경로 끌려다니며 지옥같은 삶
세상에 알리기 위한 고귀한 발자취 큰 울림·감동



영화는 1992년 3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 공개 후 여성인권운동가이자 평화운동가로 활동을 시작하게 된 그의 발자취를 좇는다. 일본 정부가 어떻게 역사를 부정하고 있는지, 김복동은 그런 일본 정부를 상대로 어떻게 싸워왔는지를 담담하게 소개한다.

사실 자신의 피해사실을 증언한다는 건 일본 군인들에게 유린 당했던 끔찍한 기억을 온 몸과 마음으로 다시 떠올려야 하는 고통이다. 하지만 위안부 피해자들은 여전히 사죄하지 않는 아베 정부와 “‘위안부’는 역사 날조”라고 주장하는 일본을 향해 그들의 진정한 사죄와 위안부 문제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선 공동의 행동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같이 했다.

1992년 8월 제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의 증언을 시작으로 김복동은 유엔인권이사회와 미국, 영국, 독일, 노르웨이, 일본 등 매년 수차례 해외 캠페인을 다니며 전쟁 없는 세상,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이 생기지 않는 세상을 위해 분주한 활동을 이어갔다. 그 과정에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함께 전시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나비기금을 설립(2012년 3월8일)하고,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정기집회를 1992년 1월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특히 김복동 할머니가 일본이 사죄할 때까지 전 세계에 세우겠다고 선포한 ‘평화의 소녀상’은 피해자들의 아픔, 명예와 인권회복, 그리고 평화 지향의 마음을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품는다.

평화의 소녀상은 수요집회 1천회를 맞은 2011년 12월14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 처음 세워졌다. 해외에는 미국 글렌데일시에 처음으로 세워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의미를 전 세계인에게 알리고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반성 없는 태도는 현재까지 도돌이표처럼 반복되고 있다. 그럴수록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희망을 가지고 싸워온 김복동 할머니가 되찾고 싶었던 삶, 전 세계에 세우겠다던 소녀상의 의미, 그리고 “희망을 잡고 살자”며 후세에 희망의 씨앗을 뿌린 그의 고귀한 발자취는 더 큰 울림과 감동으로 다가온다. ‘자백’ ‘공범자들’에 이은 뉴스타파의 3번째 작품으로 ‘세월호 사건’ ‘MB정부의 비리’ 등을 탐사보도했던 송원근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장르: 다큐멘터리 등급: 12세 관람가)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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