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달서책사랑 전국주부수필공모전] 대상作 ‘다시 책시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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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22   |  발행일 2019-08-22 제23면   |  수정 2019-08-22

문간방에 먼지가 세 들어 사는 집이 있었다. 집 앞 큰 길에는 정류장이 없어도 버스가 멈춰 섰다. 해질녘에 버스가 지나가면 그 길 위에는 흙먼지와 아버지가 남겨졌다. 좀 있으면 대문 여는 소리가 들리고 부엌에서 숟가락 놓는 소리도 따라 들어갔다.

“아빠 다녀오셨어요?” 마루 위로 쏟아지는 네 남매의 목소리는 온 동네를 채웠다.

석류나무가 새순을 올리던 어느 봄날, 저물도록 버스가 서지 않았다. 아버지는 오지 않았다. 이튿날 우리 가족은 짐을 꾸려 고향집을 떠나야 했다. 아버지가 손수 짜 주신 소나무 책시렁을 그대로 남겨 둔 채 몸만 빠져 나왔다.

이사 간 집에는 우편함이 없었다. 아랫목에 묻어 두던 아버지의 밥그릇도 사라졌다. 달아나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었던 나는 잠에 취해 살았다.

1991년 11월. 그날도 온 종일 고등학교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야간 자율학습시간에 실장이 조용히 어깨를 흔들어 깨우더니 봉투 한 장을 놓고 갔다. 내 이름 앞으로 온 편지였다.

-양식업 하는 고향선배에게 보증을 서 줬는데 연락이 안 된다. 미안하다. 정도로 요약되는 글이었다. 눈물을 참으며 읽어 내려가다가 ‘-못난 애비가’라고 쓴 마지막 줄에서 기어이 울음이 터졌다. 가방을 싸들고 나와 집까지 걸었다.

울며 걷던 먼 길을 기억한다. 덕충동 비탈진 은행나무길에서부터 미평동 양지마을까지 캄캄한 인도를 따라 흔들리며 걸었다. 못난 애비처럼.

술에 취해 지갑을 잃어버린 날에도 겨드랑이에 책 한 권 끼고 오셨던 아버지의 환영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늦은 나이에 공무원이 된 아버지는 자주 휘청거렸다. 옆집 개가 죽어도 술을 마셔야 잠을 이루셨다. 아버지에게 사회는 또 하나의 독주(毒酒)였다. 너무 작은 것에 흔들리고 아파하던 당신도 나처럼 어지러웠을 것이다. 나약한 아버지가 중심을 잡기 위해 붙든 것은 책이었다. 책은 당신을 닮아 말 수 없는 자식들에게 전하고픈 목소리였다.

덕분에 나는 글을 모를 때부터 책을 보며 자랐다. 애초에 책은 읽는 것이 아니라 꿈꾸는 것이었다. 큰 언니가 보고 작은 언니가 다 본 다음에야 종잇장이 부푼 책을 받아 들 수 있었는데 간혹 몇 장이 비어 있었다. 아름다운 시구와 컬러 삽화는 내 손에 오기 전에 찢겨져 나갔다. 빈 페이지는 나를 꿈꾸게 했다. 이어질 뒷이야기를 상상하거나 여백의 그림을 혼자 그려 보곤 했었다. 꿈의 조각을 한쪽씩 떠올릴 때마다 어두운 골목길에 등이 하나씩 켜지는 것 같았다.

자정이 다 되어서야 집에 돌아온 나는 방문앞에 오도카니 앉아 있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같은 방을 쓰는 언니가 깰까봐 불을 끈 채 더듬더듬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데롱거리는 백열등을 켜자 먼지가 먼저 일어 났다. 어둑시근한 다락방에 쌓인 모든 것들이 눅눅하고 퀴퀴했다. 책들은 더욱 그러했다. 아버지를 기다리며 보던 명화집을 찾으려고 책 꾸러미들을 뒤적였다. 안 보였다. ‘김찬삼의 세계여행’ ‘그리스 로마신화’ ‘세계문학전집’도 보이지 않았다. 책시렁이 휘도록 쌓여 있던 문간방의 책들을 죄다 놓고 온 것이다.

날이 밝자 다시 책시렁을 서성거렸다. 외딴집에 두고 온 책들은 이미 나의 것이 아니었으므로 학교 도서관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서가 되었다.

책시렁 가득한 도서관에 들어서면 마음이 순해진다.

종이책은 생물이다. 시간과 온도를 품고 있다. 글자체와 띄어쓰기, 종이의 결에서 저자의 온도를 느낄 수 있다. 두툼한 표지 다음에 얇은 속지를 넘길 때 ‘시작’의 느낌은 온통 내 차지가 된다. 책장이 넘어갈 때 종잇장에서 나는 소리와 손 맛은 읽는 시간에 따라 다르게 새겨진다. 이를 테면 책도 나이를 먹는다. 열여덟살에 본 ‘장자’는 따분했는데 마흔 넘어 만나니 친근하다. 붙임성이 좋아졌다. 아직 낯을 가리는 책들이 많다. 친해지려고 날마다 종이책을 만지는 것이 나의 일이다. 삐뚤게 꽂힌 책을 바로 놓고 너절해진 책을 수선하다 보면 유정한 시간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나른한 일요일 오후, 아버지가 책을 보다 잠들면 바람이 와서 책장을 넘겼다. 부엌에서 건너오는 어머니의 도마질 소리와 수말스럽던 남동생의 ‘피우웅~’ 종이 비행기 날리는 소리도 들린다. 어떤 책에는 비 오는 날 큰 언니가 부쳐준 김치부침개 내음이 배어 있다. 고구마 먹던 손으로 넘긴 종잇장이 붙어서 떼어내다 찢긴 책 모퉁이도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가끔 책갈피에 꽂힌 그림은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였다. 연필로 그린 코스모스나 의자 세밀화는 끝내 포기하지 못한 아버지의 꿈이었으니 우리는 진즉 서로의 꿈을 읽고 있었다. 책시렁의 책을 공유하는 것은 서로의 꿈을 응원하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

어딘가에서 꿈을 쓰고 있을 이용자들에게 책을 빌려주는 일은 행복이다. 반출되었다가 돌아 온 책들은 각기 다른 형태로 제 몸에 대출이력을 새긴다.

며칠전에는 도서관 서가에서 장서인이 누락된 시집을 발견했다. 먼지를 털어 내느라 주르륵 책을 넘겨 보는데 책갈피에 낀 무언가에 걸렸다. 아주 오래된 파스(소염진통제) 포장지였다. 아픈날, 약 대신 무명 시인의 시를 복용한 대출자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헤아릴 수 없다. 나는 그를 모른다. 그러나 확신한다. 어느 구간의 시 한 줄은 파스보다 더 깊이 스며들었을 것이다. 파스가 닿지 않는 환부까지 스며서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을 것이다. 손때 묻은 시집은 독자가 읽는 것이 아니라 시집이 애면글면하는 독자 마음을 읽어준다.

지금 우리집에 잘 넘겨지지 않는 또 하나의 책이 있다. 바로 나를 닮은 딸이다. 봄에 지은 시처럼 자라던 우리 연이가 고등학생이 되면서 방문을 닫고 산다. 말없는 딸을 보면 불안하다.


- 엄마도 그랬단다.

지금 충분히 어두워지렴. 어둠속에서 헤매다 보면 눈이 뜨이겠지.

군자같은 잔소리는 속으로 썼다 지운다. 나의 아버지가 책을 건네실 때도 이러한 마음이셨으리라. 하고픈 많은 말을 눌러 담아 잠든 연이의 머리맡에 놓는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마음도 한 장씩 넘어갈 것이다. 한 권의 책이 한 생을 뒤집을 수 있을까마는 하나의 생각을 바꾸기에는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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