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반 고흐 : 위대한 유산’ (핌 반 호브 감독·2014·네덜란드)

  • 임성수
  • |
  • 입력 2019-10-18   |  발행일 2019-10-18 제42면   |  수정 2020-09-08
빈센트 반 고흐가 남긴 것
[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반 고흐 : 위대한 유산’ (핌 반 호브 감독·2014·네덜란드)
[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반 고흐 : 위대한 유산’ (핌 반 호브 감독·2014·네덜란드)

화가 고흐에 대한 조금 색다른 영화를 봤다. ‘태양의 화가’ ‘영혼의 화가’라 불리는 빈센트 반 고흐. 커크 더글라스가 고흐로, 안소니 퀸이 고갱으로 나왔던 ‘열정의 랩소디’부터 최근작 ‘러빙 빈센트’까지, 그에 대한 영화는 무척 많다. 그만큼 그의 삶이 극적이기 때문이다. ‘반 고흐 : 위대한 유산’은 조카의 시선으로 본 고흐의 삶이다.

고흐의 조카인 빈센트 빌렘 반 고흐는 삼촌이 남겨준 그림 때문에 심한 압박감을 느낀다.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물려받은 그 그림들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한 것이다. 그는 그림들을 속히 처분하고 자유로워지려 하지만, 그 그림을 좋아하는 아내는 반대한다. 그들은 그림을 팔려고 간 파리에서 고흐의 흔적들을 찾아 여행하게 된다. 생 레미, 오베르 쉬르 우아즈 등을 여행하면서 삼촌은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했던 것에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자신의 탄생을 그토록 기뻐했으며, 내면의 따스함을 잃지 않았던 마음을 느끼게 된 것이다. 마침내 그는 그림을 팔려던 생각을 접고, 암스테르담에 반 고흐 미술관을 설립하게 된다.

영화는 조카 빈센트와 삼촌 빈센트의 삶을 번갈아 보여준다. 19세기와 20세기가 교차되어 나오는 셈이다. 고흐의 나라 네덜란드에서 제작되었다는 점이 각별하다. 그만큼 다른 어떤 영화보다 고흐에 대한 애정이 깊어 보인다. 그리고 고흐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었음을 암시한다. ‘러빙 빈센트’에서 보았듯, 하숙집 딸의 증언을 통해 동네 불량배들의 소행일 것이라고 한다. 고흐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한 이 영화를 보고나면 새삼 깨닫게 된다. 고흐가 얼마나 외로운 사람이었는지, 또한 얼마나 따뜻한 마음과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였는지를. 조카 빈센트가 새롭게 느낀 점도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몇 년 전, 런던과 파리의 미술관들을 순례했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바로 고흐의 그림이었다.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서 보았던 ‘론 강의 별이 빛나는 밤’이었다. 그림을 실제로 보는 것이 그토록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그림 속의 별이 진짜처럼, 아니 진짜보다 더 찬란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해바라기 그림 때문인지, 열정적인 삶 때문인지 ‘태양의 화가’로 불리지만 나는 그를 기꺼이 ‘별의 화가’라 부르고 싶다. 잊을 수 없는 그림 속 별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순수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그 무엇을 추구한 사람 같다. 그러니 오직 그림을 그릴 때만 행복했을 것이다.

고흐는 죽기 얼마 전에 쓴 편지에서 “종종 조카를 생각한다. 그림을 그리느라 온 신경과 에너지를 쏟아붓기보다는 아이를 기르는 게 분명 더 낫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고흐는 조카의 탄생을 몹시 기뻐했다. 그리고 갓 태어난 조카의 방에 걸어두라며 한 장의 그림을 보낸다. 바로 ‘꽃 핀 아몬드나무’였다. 아몬드 나무는 이른 봄에 꽃이 핀다고 한다. 새 생명 탄생을 축하하기에 알맞은 그림이다.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동생 테오는 아들이 태어나자, 형의 이름인 빈센트로 지으며 형에게 대부가 되어달라고 했다. 고흐의 삶에서 가장 기뻤던 일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이 세상을 ‘신의 실패작’이라 진단했다. 하지만 그는 또 이렇게 썼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알게 되고, 자신이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존재가 아니라 무언가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사랑을 느낄 때인 것 같다”라고. 결국 그가 남긴 ‘위대한 유산’은 ‘사랑’이었고, 그것을 깨달은 조카 빈센트는 그림을 팔아치우는 대신, 그를 기리는 미술관을 설립하기로 했던 것이다.

이 영화를 함께 본 사람의 눈가가 촉촉했던 것을 기억한다. 고흐의 지독한 외로움에 자신의 것이 투사되었기 때문일까. 알고 보면 누구나 외롭다. 그리고 그 외로움의 해독제는 여전히 사랑이다.

시인·심리상담사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