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한국문학] “오케이, 부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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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2-12   |  발행일 2019-12-12 제30면   |  수정 2019-12-12
기성세대의 부정적 행동에
젊은 세대의 반어적인 응답
세대간 갈등 고스란히 투영
젊은이의 행동 이해 안될땐
그들 입장서 한번 더 생각을
[우리말과 한국문학] “오케이, 부머”
이수진 경북대 국제교류처 강사

“알겠어, 부머 (Okay, boomer)”

올해도 새로 생겨난 신어나 유행어가 상당히 많았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을 한 가지 꼽으라면 개인적으로 위 표현을 들 수 있다. 저 말이 본격적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1월5일 뉴질랜드 국회에서 일어난 일이 각종 매체와 소셜 미디어를 통해 퍼지면서부터일 것이다.

문제의 사건은 밀레니얼 세대라고 할 수 있는 20대의 뉴질랜드 녹색당 소속 의원이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 연설하던 중 자신에게 야유하는 베이비붐 세대의 의원에게 “오케이, 부머”라고 응수한 사건이다. 이 표현에서 ‘오케이’는 상대방의 말을 단순히 긍정하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알겠으니 그쯤 하라’는 의미인 반어적 사용이다. 최근에는 사용자 참여형 영어 사전인 ‘어반 딕셔너리 (Urban Dictionary)’에 ‘Ok boomer’가 표제어로 등록되었으며, 사용자들의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뜻풀이는 “베이비부머가 뭔가 멍청한 소리를 할 때, 수십 년 동안 지속된 무지와 오해를 들추어야 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왜 틀렸는지를 설명조차 시도할 수 없어서 그저 상대방의 말을 무시한 채로 응답하는 말”이다. 결국 “오케이, 부머”는 소위 ‘꼰대질’이라고 불리는 기성세대의 부정적 행동에 대한 젊은 세대의 응답인 것이다. 한국 신세대식 표현으로는 “네, 다음 꼰대” 정도로 옮길 수 있겠다.

올해 한국에서 유행한 표현 가운데 “라테 이즈 호스(Latte is horse)”가 있다. 기성세대가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하여 젊은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고자 할 때 상투적으로 사용하는 구문인 “나 때는 말이야”를 영어 표현을 이용하여 재치있게 표현한 것이다. 이 표현은 ‘오케이, 부머’처럼 한국 사회에서 꼰대 문화를 비꼬는 말이다. 공통적으로 이 두 표현은 세대 간의 갈등이 2019년 현재 전세계적으로 뜨거운 이슈임을 보여주는 언어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해마다 ‘~ 세대’류의 어휘가 새로운 말로 만들어진다. 국가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신어 조사 자료에서 2000년대 초반부터 2018년까지의 신어 중 ‘~ 세대’류의 어휘는 수집 당시 특정 연령층의 사람들이 가진 특성을 포괄적으로 표현하여 해당 시점의 사회적 분위기나 상황 등을 짐작하게 한다.

연도순으로 ‘~ 세대’류의 어휘를 나열해 놓고 보면 2000년 초반에는 ‘1020세대’ ‘2030세대’와 같이 단순한 연령으로 세대를 분류한 가치중립적 어휘가 많고 신세대 및 기성세대를 가리키는 어휘가 균형적으로 발견되는 데 반해, 2000년대 후반 및 2010년 이후부터는 ‘반퇴세대’ ‘국정세대’를 제외하면 거의 신세대를 가리킨다는 특징을 찾을 수 있다. 특히, 과거의 신어들에는 신세대를 새로운 것을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잘하는 사람으로 규정하며 긍정적 의미를 내포한 것이 많은 반면, ‘88만원 세대’ 이후 신어는 신세대를 좌절하고(좌절 세대), 삶에서 가치 있는 것들을 차례로 포기하며(5포/7포/n포 세대) 아무것에도 의미를 두지 않는(無mean 세대) 부정적 존재로 표현한 경우가 많다. 결국 앞선 세대에 비해 성공보다는 좌절을 더 흔하게 경험하면서 이미 더 많은 것을 포기하고 한계에 내몰린 젊은이들은 기성세대가 이야기하는 “나 때는 말이야”나 “노오력”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학교에 있다 보니, 해마다 새로 만나는 후배나 학생들을 대할 때는 혹시 나도 ‘꼰대’처럼 말한 것은 아닐까 매 순간 조심스러워지곤 한다. 후배나 학생들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을 때는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지”라고 한 번 더 생각해 보자고 스스로를 독려한다. 기성세대든 신세대든 “내가 옳고 너는 틀렸다”는 태도를 취한다면 결국 ‘꼰대’ ‘젊꼰(젊은 꼰대)’이라는 평가를 피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수진 경북대 국제교류처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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