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서의 예술공유] 바나나와 덕트 테이프 혹은 코미디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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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1-22   |  발행일 2020-01-22 제30면   |  수정 2020-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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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바나나를 공업용 덕트 테이프로 벽에 붙인 작품이 연일 언론 매체와 SNS를 통해 화제가 되었다. '코미디언'이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지난 해 12월 마이애미 아트 바젤에서 페로탕 갤러리에 전시된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작품이다.

이 작업의 가격은 무려 12만달러(1억4천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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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기획자
였으며, 3개의 에디션 중 개막일에 이미 2개가 팔려 화제를 모았다. 이 작품이 더욱더 폭발적으로 관심을 모은 것은 뉴욕 출신 행위 예술가인 데이비드 다투나가 배가 고프다며 문제의 이 바나나를 그 자리에서 먹어버리면서 논란과 관심은 더 확산되었다. 이 행위 예술가는 1억4천만원 상당의 작품을 먹은 것일까? 아니면 그냥 바나나를 먹은 것일까?

페로탕 갤러리의 관장은 바나나가 사라졌다고 해서 작품의 가치가 손상된 것은 아니며 이 작품에 대한 가치는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에 있다는 입장을 밝히며 바로 다른 바나나로 교체하였다. 카텔란의 바나나를 행위 예술가인 다투나가 먹으면서 역설적이게도 작품의 제목인 '코미디언'은 국제적인 미술의 무대에서 더 훌륭히 연기된 셈이다.

이 코믹한 연극은 SNS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제작한 다양한 형태의 '코미디언' 패러디 작품들을 재생산하며 확산시켰다. 사람들은 바나나뿐만 아니라 다양한 과일과 사물들을 이용하여 카텔란의 작품을 패러디하였다.

견고하고 영원한 것을 지향하는 전통적인 예술의 소재와는 달리 카텔란이 전시가 시작되기 전 전시장 주변의 마트에서 구매한 바나나는 곧 썩어 없어지는 재료이다. 당연히 작품을 구매한 컬렉터들도 바나나가 썩어 없어질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들이 작품 구매를 통해 소유한 것은 작품에 대한 정품인증서이다.

카텔란은 이 작품의 의미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SNS를 통해 사람들은 유쾌하게 의미를 다양하게 재생산해낸다.

이처럼 현대 예술에서 작품의 의미는 고정적이기보다는 유동적이고 다원적이다. 카텔란은 어쩌면 전시 중 이 바나나가 썩어 없어지거나 아니면 누군가 먹어 주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카텔란은 이 코미디에 관객을 초대하였고 관객의 다양한 반응과 함께 연극은 완성되어간다.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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