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초동대응·전체주의·染病의 상관관계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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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2-06   |  발행일 2020-02-06 제30면   |  수정 2020-02-06
중국의 은폐에다 굼뜬 대책
언론 통제도 골든타임 허비
코로나 감염 들불처럼 번져
독재 시스템의 비효율 노정
발병 초기 창궐을 막지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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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初動)은 초기 행동의 준말이다. 연예계에서 초동은 '초기 반응'을 의미하며, 앨범 발매 후 일주일간의 판매량을 말한다. 일본에서도 초동매상과 초동이란 단어가 같은 뜻으로 사용된다. 초동대응은 전염병이 돌 때나 위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초기의 대응 상황을 말한다. 흔히 초동대응과 초기대응을 혼용하지만 어감의 온도 차는 확연하다. 초동엔 능동적 대응이란 함의가 내재해 있는 까닭이다.

항공기 사고에는 '90초 룰'이라는 게 있다.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90초 이내 승객을 기내에서 탈출시켜야 한다는 의미다. 해난사고 골든타임은 1시간으로 항공기에 비하면 다소 여유가 있다. 섬나라 일본의 해난사고 구조율은 96%에 이른다. 특수구난대의 전광석화 같은 초동대응으로 웬만해선 골든타임의 임계점을 넘기지 않기 때문이다. 위난사고에서 골든타임은 초동대응의 효율성을 담보할 수 있는 시간이다. 전염병도 다르지 않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확산도 중국의 초동대응 실패에서 비롯됐다. 2003년 774명이 사망한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판박이다. 골든타임을 그냥 흘려보냈다. 은폐와 언론 통제도 그때와 빼닮았다. 사스는 발병 45일 후 처음 보도됐고 중국 정부는 발병 5개월이 돼서야 공식 인정했다. 이번 우한 폐렴도 지난해 12월12일 첫 환자가 발생했지만 중국은 은폐에 급급했다. 언론의 발병 보도를 확인해주지 않았고 의료진 집단감염 사실도 숨겼다. 굼뜬 대책도 여전했다. 발병 3주가 지난 1월1일에야 발원지 화난수산시장을 폐쇄했고, 1월23일 우한시를 봉쇄했으나 이미 500만 명이 빠져나간 뒤였다.

왜 사스에 이어 우한 폐렴까지 염병(染病)이 유독 사회주의 국가 중국에서만 창궐할까. 중국에선 언론이 본연의 감시·비판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 언론이 공산당에 예속돼 있기 때문이다. 관료들도 최고 지도자가 움직여야 비로소 행동에 나선다. 일당독재 시스템의 비효율이다. 쉽게 은폐가 가능한 구조다. 중국이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고 언론의 감시 기능이 작동하는 정상적 민주국가였다면 사스도 우한 폐렴도 발병 초기에 잡혔을 확률이 높다. 염병 바이러스가 중국에서 들불처럼 번져간 배경엔 음습한 전체주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초동대응이 허접할수록 염병은 걷잡을 수 없이 도지고, 전체주의 국가에선 염병이 창궐할 개연성이 크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중국의 사례는 염병과 초동대응, 국가 통치 시스템 간의 상관관계를 고스란히 노정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우리의 초동대응도 낙제점이다. 우왕좌왕, 오락가락에 중구난방이다. 강단(剛斷)이 필요한데도 미적댄다. 타이밍도 한 박자씩 늦었다. 더 일찍 빗장을 걸었어야 했다. 전파력 높고 백신 없는 염병엔 '초기의 완벽한 봉쇄'만이 해법이다. WHO(세계보건기구) 권고 사항이라고는 하나 굳이 정부가 나서 우한 폐렴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라고 공식화한 것도 마뜩잖다. 그렇다면 미국 독감, 일본 뇌염이란 명칭도 다 바꿔야 하나. WHO는 이미 세계의 신뢰를 잃었다. 뒷북 대응에다 함량 미달의 사무총장이란 자가 염병을 퍼뜨린 중국에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은 황당하고 역겨웠다.

염병(染病)은 전염병을 뜻하지만 욕으로 쓰이기도 한다. '염병하다'는 '지랄하다'와 비슷한 욕이다. 중국의 반복되는 은폐와 초동대응 실패를 보면 부아가 치민다. 사스 바이러스 숙주가 박쥐와 사향고양이로 밝혀졌는데도 중국인들의 야생동물 식습관은 고쳐지지 않았다. 우한발(發) 코로나바이러스는 '염병할 염병'인가 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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