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무원칙한 공천과 빛바랜 연동형 비례대표제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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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3-14   |  발행일 2020-03-14 제23면   |  수정 2020-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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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 (정치학)

21대 총선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의해 치러지는 첫 선거지만 이 제도는 일회성으로 끝날 것 같다. 미래통합당이 미래한국당이라는 위성정당을 만들 때 이미 연동형제의 의미는 퇴색됐고 더불어민주당이 시도하는 또 하나의 비례위성정당 역시 연동형제가 목적했던 다당제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선거 승패와 무관하게 연동형 비례제도는 양대 거대정당에 의한 정당체제가 가져오는 대립·갈등의 지양과 다당제를 통한 다양한 시민사회의 의사 반영이라는 목적 달성은커녕 카르텔 구도에 의한 적대적 공생을 강화할 뿐이다.

21대 총선의 무원칙한 정당 이합집산은 가히 역대급이다.

민주당의 공천에서 청와대 출신 참모 그룹의 대거 약진이 이루어졌고 세대교체가 당내에서 제기되었지만 주력부대인 86그룹도 건재했다. 결국 민주당은 공천에서 인상적인 인적쇄신과 혁신공천을 보여주지 못했으며 현역 교체율도 저조했다.

통합당은 어떤가. 강성 보수로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다는 이유로 '탄핵5적'으로 지목된 김무성, 유승민, 김성태, 권성동 의원과 홍준표 전 대표는 불출마 선언, 공천 배제 등으로 귀결됐다. 통합당의 공천이 탄핵에 관하여 표면적으로는 균형을 맞춘 것 같지만 결국 탄핵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두루뭉술 넘어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바른미래당, 무소속에서 다시 통합당으로 자리를 옮기며 수구강성 발언을 쏟아냈던 대표적 철새정치인 이언주 의원이 통합당 텃밭인 부산에서 공천을 받고, 시대를 거스르는 극우적 주장을 일삼던 김진태 의원도 공천을 받았다. 김형오 위원장이 대구·경북, 부산·경남지역에서 시도한 물갈이가 평가받지 못하는 이유이다.

"진영정치에서 벗어나 실용적, 중도정치를 만드는 중도정당을 만들겠다"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자신이 만들고 스스로 탈당했던 바른미래당 의원들의 통합당 행을 인정하고 국민의당은 지역구 후보를 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국민의당이 지역구 후보를 내지 않으면 이는 사실상의 통합당과의 선거연대로 볼 수 있다. 결국 안 대표는 보수를 통한 자신의 정치입지 강화를 중도로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

2017년 탄핵에 찬성한 인사들이 자유한국당을 탈당하여 바른정당을 창당하고, 이후 일부 의원의 자유한국당 복당이 이루어졌다. 2018년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통합이 바른미래당 창당으로 이어지고, 다시 일부는 통합당으로 복당했다. 한편 바른미래당으로의 통합을 거부한 구 국민의당 세력은 민주평화당으로 분당했고, 이들 중 일부 의원이 대안신당을 만들었다.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대안신당은 다시 민생당을 만들었다. 그리고 통합당 발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 민주당 발 '비례연합정당'이 연동형 비례제도의 근간을 무너뜨릴 확률이 높아지는 형국이다.

역대 어느 선거가 이렇듯 무원칙한 합당, 창당들로 점철됐는지 알 수 없다. 지난해 내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와 공직선거법 개정을 둘러싸고 여야가 격돌했으나 선거 국면에서 선거법의 허점을 이용한 꼼수와 편법, 술수들이 판을 치고 있다. 진보 가치를 신봉하는 것처럼 보이던 정치인이 아무런 설명 없이 보수정당에 입당하여 공천을 받고, 정당 이적을 밥 먹듯이 하는 의원이 공천을 받는 등 선거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정치 퇴행은 정치권의 일상이 되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등장과 함께 사실상 생명을 다했다. 총선 후 연동형 선거제의 전면 재검토는 물론 정략적 공천과 정당이기주의를 최소화하기 위한 정치개혁이 절실하다.

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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