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파라다이스 힐스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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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3-20   |  발행일 2020-03-20 제38면   |  수정 2020-03-20
소녀들의 아름다움 완성시켜 주는 꿈의 공간
뒤틀린 상류층 삶에 대한 상상·상품같은 존재 전락
환상적인 비주얼과 어우러진 매혹적 미장센 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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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마(엠마 로버츠)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오게 된 고립된 섬, 파라다이스 힐스에서 깨어난다. 누구에 의해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곳은 소녀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것들로 가득하다. 파라다이스 힐스를 관리하고 있는 공작부인(밀라 요보비치)은 "이곳은 초대된 모든 소녀의 아름다움을 완성시켜 주는 환상적인 공간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마는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찾고 만족하는 친구들과 달리 끝까지 의심의 끈을 놓지 않는다.

영화 '파라다이스 힐스'는 판타지와 미스터리의 자연스러운 결합을 통해 완성된 새롭고 신비스러운 경험으로 관객을 인도한다. 그 무대가 되고 있는 파라다이스 힐스는 푸른 정원과 바다, 장미 숲으로 꾸며진 쾌적한 리조트형 숙소로 개인맞춤 식단, 애프터눈 티타임, 애티튜드를 위한 요가 클래스 등 다양한 교육과 신체 관리가 엄격히 이뤄지고 있는, 어떻게 보면 모든 여성이 꿈에 그리던 이상적인 공간이다.

시작부터 판타지로서의 토양을 단단히 구축한 영화는 차츰 폐쇄적인 공간을 무대로 미스터리를 구축해 간다. 그 중심에서 서사를 이끌어가는 건 우마를 포함한 여자 캐릭터들이다. 우마보다 먼저 초대된 대부분의 소녀들은 혼란스러움 대신 모든 것이 갖춰진 이곳 생활에 만족해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왠지 섬뜩하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고 있는 것 같고, 자유가 없기에 지시하는 것만 할 수 있다. 우마와 전직 유명 가수 아마르나(에이사 곤살레스)는 그래서 이곳을 탈출하려 한다.

영화가 주목하는 건 온갖 아름다운 것들로 꾸며져 있는 파라다이스 힐스의 감춰진 이면이다. 계급, 외모, 욕망, 권력 등 다양한 주제를 함축해 시각적 볼거리로 펼치지만 이는 뒤틀린 상류층 삶에 대한 일반적 상상, 그 너머를 역설적으로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우마와 친구들은 부모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기준에 맞춰지기 위해 자신들이 이곳으로 보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인간 본연의 가치를 상실한 하나의 상품과 같은 존재로 전락한 것이다.

'파라다이스 힐스'가 보여주는 세계는 상류층과 하류층의 계급분화가 지금보다 더 심화되고, 자아와 개성이 거세된 미(美)를 숭배하는 디스토피아적 근미래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하류층을 상징하는 대체인을 등장시켜 장르적 호기심을 증폭시킨다. 상류층에 속하는 우마와 친구들은 그들을 부러워하고 동경하는 많은 대체인의 롤모델이다. 대체인들은 우마와 친구들을 향해 "너희는 최소 가진 걸 즐겨야 했어"라며 자신들이 그들의 모습으로 대신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한다.

볼거리는 풍성하다. 상영 내내 각각의 공간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환상적인 비주얼이 형형색색 아름답고 조화롭다. 이야기를 채워가는 배우들의 조합도 나쁘지 않다. 9세의 나이에 할리우드에 데뷔해 탄탄한 연기 커리어를 쌓아 온 우마 역의 엠마 로버츠를 위시해,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의 히로인 밀라 요보비치, 2020년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한국계 아콰피나까지 매혹적인 미장센에 이들 각각의 매력이 제대로 어우러진다. 다만, 많은 의미를 함축한 영화의 주제를 지탱할 서사 구조가 헐거워 아쉬움을 남긴다. (장르:미스터리 등급: 12세 관람가)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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