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어둠·모순, 과거의 철학자에게 '답 구하다'

  • 노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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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4-04   |  발행일 2020-04-04 제16면   |  수정 2020-04-04
틸리 서양철학사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니체와 러셀…
서양 철학의 사상·특징 시기별 정리
과거 철학이 후대에 미친 영향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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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철학'이 필요한 시절이다. 갑자기 인류에게 찾아온 '코로나19'라는 이 불청객은 첨단 과학에 둘러싸여 무뎌진 인간들의 무언가를 건드리고 끄집어낸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것들에 대해 자꾸 질문을 던지게 하는 것.

'전염병이란 무엇인가' '삶과 죽음이란 무엇인가' '맹목적 신앙이란 무엇인가' '정치란 무엇인가' '마스크란 무엇인가' '빈부격차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코로나19가 들춰낸 생경한 광경들은 자연스레 인간을 철학의 세계로 이끈다. '생각'하지 않고선 풀리지 않는 의문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류는 오랜 세월 '고민하는 존재'였고, 철학의 역사는 인류 역사와 함께해 왔다.

'틸리 서양철학사'는 앞선 시대를 살았던 서양 철학자들의 주요 사상과 특징을 시기와 주제별로 담고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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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틸리 지음/ 김기찬 옮김/ 현대지성/ 824쪽/ 2만2천원

저자인 프랭크 틸리(1865~1934)는 미국 신시내티대학교와 독일 베를린대학교를 졸업했으며,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에서 평생 철학 교수로 학생을 가르쳤다. 저자의 저서 중 한 권인 이 책은 여러 서양철학사 중에서도 명료하고 균형감 있게 쓰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총 800여쪽 분량의 이 책에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부터 데카르트와 스피노자, 니체와 러셀까지 우리가 한 번쯤 들어 알 만한 철학자들의 철학이 집대성돼 있다.

책은 1부 '그리스 철학', 2부 '중세 철학', 3부 '근대 철학'으로 나뉘며, 세부적으로 총 22장으로 구성돼 있다.

'자연 철학' '인식과 행동의 문제' '위대한 체계들의 시대' '르네상스의 철학' '대륙 합리론' '계몽의 철학' '헤겔 이후의 독일 철학' '실용주의, 실증주의, 분석철학' 등 다양한 소제목을 단 철학 이론들이 펼쳐진다.

책을 읽다 보면 인간이 만들어낸 철학사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 그리고 비판과 수용의 과정을 이어가며 발전해가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지금 내가 가장 궁금해하는 것들에 대해 과거 철학자들에게 해답을 구할 수도 있다. 그들이 정립한 철학적 이론은 현재의 어둠과 모순을 비판하고자 하는 우리에게 든든한 지식적 배경이 된다.

예를 들어, 책에서는 인간과 신(神)에 대한 니체와 사르트르의 철학적 이론을 비교하며 살펴볼 수 있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에 대한 설명 방식은 '철학사' 서술에 대한 이 책의 관점을 보여준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스승 하이데거의 실존주의처럼 신학적이라기보다 세속적이며 무신론적이다. 무신론적 공식(신은 죽었다)에 대해 그는 니체에게 빚을 졌다… 그리고 그의 의식 개념은 데카르트적 기원을 갖고 있다." "그의 인간 개념에 핵심적인 것은 의식적인 주관성, 자유, 무(無)의 개념들이다. 이 모든 것은 실존적 실재성에서 자신의 존재론적 토대를 갖는다."

사르트르를 설명하기 위해 그의 철학에 영향을 끼친 철학자 세 명의 이름이 등장한다. 하지만 사르트르는 자신보다 앞세대 철학자들의 이론을 바탕으로 보다 새롭게 발전된 자신의 이론을 구축할 수 있었다.

고대 철학자인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비교해보고 이들의 철학이 후대 철학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줬는지도 책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또 1800년대 독일을 지배했던 헤겔 철학이 하나의 '학파'로까지 발전했으며, 헤겔 사후 그 학파가 보수파와 자유파로 분열돼 대립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도 나온다. 헤겔이 명확히 밝히지 않았던 신학적 문제(신, 그리스도, 불멸성)에 대한 의견 차이가 학파의 분열로 이어졌다는 설명과 함께.

책의 특징 중 하나는 '비판'에 대한 통찰이다. 철학사는 스스로 자신의 최고 비판자라는 것.

"하나의 (철학)체계는 후속 체계에 통합되거나 변모되거나 보충되거나 대체되며, 그 오류와 모순이 드러나며, 종종 새로운 사상 노선의 출발점이 되곤 한다."

철학의 가장 중요한 측면 가운데 하나는 과거의 체계에 대한 비판이지만, 비판을 가하기 전에 먼저 해당 체계를 이해해야 한다는 문장이 특히 인상 깊다.

"이 연구는 과거와 현재의 윤리적·종교적·정치적·법률적·경제적 개념들이 전제하는 근본 원리를 드러냄으로써 그 개념들에 빛을 던져 준다. 그처럼 철학사 연구는 철학적 사색을 위한 유용한 준비과정으로 이바지한다." 책은 '철학사의 가치'에 대해 이렇게 강조한다.

지금 인류가 처한 이 상황들은 앞으로 어떤 철학을 탄생시킬지 궁금해진다.

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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