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대구경북의 선택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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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4-09   |  발행일 2020-04-09 제26면   |  수정 2020-04-09
표심 황금분할 충청과 달리
대구경북 보수정당 철옹성
지난 10여년간 총선 싹쓸이
하지만 결과는 TK발전 홀대
이번 선거 지혜로운 선택을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는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다"란 명언을 남겼다. 풀어 말하면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란 의미다. 그렇다. 결혼·진학 같은 중대사 말고도 매일 수십 번씩 자잘한 선택을 반복하는 게 우리 일상이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는 인생은 숱한 선택의 점이 이어지는 것이며 현재의 결정이 미래와 연결된다고 했나 보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포레스트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말한다.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은 거야. 네가 어떤 것을 고를지 모르니까." 초콜릿 상자를 빌려 선택과 인생의 함수관계를 묘사한 은유가 탁월하다.

선거와 정치 역시 밀접한 함수관계를 갖는다. 지역발전 또한 선거나 정치지형과 무관치 않다. 이번 총선 후 대구경북의 정치지형은 어떻게 달라질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여론조사에선 후보 선택에 고려하는 사항으로 인물·능력, 정책·공약, 소속 정당이 각각 29% 안팎으로 엇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대구경북지역의 여론조사 결과는 달랐다. 보수의 텃밭답게 '정당을 우선 한다'는 응답이 훨씬 높게 나왔다.

정당 깃발만 보는 '묻지마 투표'는 일종의 관성이다. 뉴턴 제1운동의 법칙인 관성의 법칙은 외부의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운동하는 물체는 계속 그 상태로 운동하려 하고, 정지해 있는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으려고 하는 현상을 말한다. 달리는 자동차가 바로 정지하지 못하는 것도 관성의 법칙이고, 시청자들이 보던 드라마를 쉽게 바꾸지 못하는 것도 관성 때문이다.

관성적 투표 성향은 4·15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의 대구경북 싹쓸이 가능성을 예고한다. 지난 10여 년도 대구경북은 보수정당의 철옹성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어땠나. 국책사업에서 홀대받고 정부정책에서도 대구경북은 후순위였다. 영남권 신공항은 김해공항 확장 꼼수에 좌절됐고, 첨단의료복합단지는 두 군데로 쪼개졌다. 여러 지역에서 손사래쳤던 사드는 성주에 배치됐다. 이게 특정 정당에 표를 몰아준 부메랑이라면 참담한 귀결이다.

충청도는 전략적 투표의 전범(典範)이다. 늘 양분지계(兩分之計)로 캐스팅보트를 쥔다. 20대 총선에선 새누리당 14석, 더불어민주당 12석을 나눠줬고, 28석이 걸린 4·15 총선도 미래통합당과 민주당의 백중세다. 이러니 어느 정권도 감히 충청의 심기를 건드리지 못한다. 세종시, 오송 첨복단지, 대전충남 혁신도시 건설 등 충청이 누리는 과분한 혜택이 '표심의 황금분할' 덕분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코로나19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장의 능력을 검증하는 시험대였다. 속절없이 무능을 드러내는가 하면, 평소 보이지 않던 역량을 입증한 단체장도 있었다. 주민 입장에선 역병 방역 잘하고 재난지원금 많이 챙겨주는 단체장이면 그만 아닌가. 여기에 정당 색깔과 진영논리가 개입할 여지는 없다. 국회의원도 마찬가지다. 민의를 떠받들어 대의(代議)정치 전령 노릇 제대로 하고 온몸으로 지역발전을 견인하는 일꾼이면 족하다.

스티브 잡스는 리드대학 입학 6개월 만에 자퇴한다. 그는 훗날 "당시엔 두려웠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었다"고 회고했다. 잡스가 그랬듯 변화엔 두려움이 따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했다. 아마 그 '정치적'에 내재된 함의 중 하나는 '지혜로운 선택'일 게다. 대구경북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적' 은유에 부합하는 변화를 선택할 수 있을까.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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