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원하는 밸런스...육식이냐? 채식이냐?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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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4-24   |  발행일 2020-04-24 제33면   |  수정 2020-04-24
과도한 육류 섭취 인한 건강 위험 경보
고기 식단과 癌 발병 통념 '채식신드롬'
채식주의 고집 영양학적 위험성 반격도
식품전문가 견해 제각각 '채·육식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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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립 진영에 있는 가정의학 전문의들은 채식의 단점과 육식의 장점을 절충한 육채식 균형 식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고기가 무조건 나쁜 것도 아니고 굽기보다 가급적 삶아서 적정량을 먹으면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채식주의자 중에도 암에 걸려 육식을 절충하기도 하고 육식 위주 식단에서 벗어나 채식 위주로 식사를 해 건강을 회복한 이들도 있다.
지금 당신의 식성(食性)은 무탈한가? 그 식성은 온전히 '자율적'인가. 어쩜 지금 당신의 식성은 단편적 타당성만 가진 식품의학 정보로 인해 타율적으로 왜곡됐을지도 모른다. 식품 관련 방송 프로그램과 전국 유명 가정의학과 전문의, 식치(食治) 전문가들의 중구난방 주장으로 인해 현재 우리 국민의 식성은 누군가로부터 원격조종 당해 패닉 상태에 빠져있다. 일반인은 전문가가 이 말을 하면 이런가 싶고, 저 말을 하면 또 저런가 싶다. 그들의 말 한마디에 지옥과 천국을 오간다. 같은 식품도 실험에 따라 정반대의 결과가 나온다. 인간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이 힘든 탓이다. 다들 시험용 쥐를 이용해 단일 식품 단일 효능만을 족집게처럼 뽑아내 발표한다. 어느 날부터 이런 소리가 들린다. 식품의학 정보의 세계에선 더 이상 팩트(Fact)를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정설은 거의 없고 소수설, 개인적 의견이 진리인 양 과대포장돼 국민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조작된 식욕, 왜곡된 식성. 우리는 과연 무슨 음식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가? 다들 알아서 먹는다고는 하지만 우린 어쩜 교묘하게 짜인 자동프로그램에 의해 '로봇'처럼 식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육식이냐 채식이냐 그것이 문제로다'란 제목의 글을 적고 싶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보름 정도 구글에 노출된 채식과 육식 관련 빅데이터를 다각도로 분석했다. 그러면서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채·육식에 대한 식품의학 전문가의 견해가 너무 제각각이었다. 모든 전문가가 공감할 수 있는 '국민식단'은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단적으로 말해 어떤 전문가를 만나느냐에 따라 자신의 식성이 완전하게 달라질 수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갈수록 육식은 악마, 채식은 천사표란 인식이 깊게 각인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내 첫 '채식 신드롬'이 시작된 건 1988년부터. 국내에 채식주의 광풍과 '엔도르핀 돌풍'을 일으킨 이상구 박사로부터 비롯됐다. 그는 유전자의학 등을 주제로 숱한 강연을 하다가 10년 전 강원도 속초 설악리조트에 암 환자 등을 위한 '뉴스타트센터'를 개소했다. 여기 식단도 완전 채식이다.

하지만 2000년대로 넘어오기 전까지 국내 대다수는 육식이 강세였다. 채식 전문레스토랑조차도 볼 수 없었다. 2008년 광우병 파동을 거치면서 육식에 대한 위험경보가 발효된다. 국민은 '고기를 먹으면 암에 걸린다'는 통념을 은연중에 갖게 된다.

2011년 5월 의사 300여명이 모여 강력한 채식주의 단체를 출범시킨다. 바로 '베지닥터(VEGEDOCTER)'이다. 강령의 요지는 이렇다.

'세계보건기구에서 육류섭취가 인류의 건강을 해치는 바를 공식적으로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인류사회는 그 심각성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과도한 동물성 육류 섭취를 계속해 미국의 남자 두 명 중 한 명은 암을 겪고, 나머지 한 명은 심장 및 뇌혈관질환으로 생명을 마감해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2015년 세계보건기구는 붉은 고기와 육가공품을 발암식품으로 지정, 전 세계에 육류 섭취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2013년 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김윤덕 당시 민주당 의원이 육식을 반대하는 내용이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걸 문제 삼은 것이다. 대충 이런 내용이 실렸다.

'식탁 위에 작은 변화를 일으키라. 육류를 피하고 식물성 음식을 많이 섭취하라. 채식을 선택하는 순간 당신은 앞으로 건강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채식은 특별한 사람들의 유별난 식사 습관이 아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현대인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식생활이다. 더욱이 채식으로 모든 생명이 존중받는 건강한 사회를 꿈꿀 수 있다.'

점차 세계 이목은 두 권의 책에 집중된다. 한 책은 채식을, 다른 책은 육식을 비판한 것이다.

'노동의 종말' '소유의 종말' '엔트로피'의 저자이자 행동주의 철학자인 제레미 리프킨이 2002년 출간한 '육식의 종말'. 이 책은 육류 섭취에 대한 경고가 아니라 육식을 중심으로 한 문화가 환경과 생태계를 얼마나 파괴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그는 인간의 식단에서 육류를 제외시키면서 육식 문화를 넘어서는 것이야말로 인류학적 전환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채식주의자 리어 키스의 반격이 이어진다. 2013년 '채식의 배신'이란 책을 통해 채식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알렸다. 20년간 극단적인 채식을 실천하던 비건 출신의 저자가 채식주의자의 주요 주장이 무지에 기초하고 있음을 밝히고, 도덕·정치·영양학적 면에서 그 주장들을 논박한다. '포화지방과 콜레스테롤을 많이 섭취할수록 심장질환 위험이 높아진다'는 지방 가설을 반박하고, 채식주의자들이 만병통치약처럼 떠받드는 콩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경고한다. 그녀는 '인간은 원래 육식을 하지 않았고 산업화 이후로 육식에 적응된 것'이란 채식주의자의 주장에 대해 '본래부터 인류는 육식을 통해서만 충분한 칼로리를 얻었다'고 반박한다. 우리는 상반된 두 주장 앞에서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다. 다들 두 주장의 공통점이 뭔가를 궁금해하기 시작한다.

이춘호 음식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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