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용 시인의 세월 산책] 내가 이름 지어 준 것들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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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6-05   |  발행일 2020-06-05 제38면   |  수정 2020-06-05
아프지 않고 슬프지 않게, 생기와 발랄의 이름을 지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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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마송이나 괴테의 초상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으로서의 초상화를 어떻게 그렸는지 미술에서도 끝 없는 변화 발전 혹은 가능성을 발견해 보면 좋겠다.

내가 이름 지어 주었던 풀잎이 바랬다. 내가 이름 지어 주었던 개들도 모두 떠나거나 죽었다. 혀를 깨물고 죽었고 치매에 걸려 우중에 집을 나가 버렸다. 내가 이름 지어준 코가 까만 고양이도 하룻밤 외출 사이 먹이통을 비우고 사라져 버렸고, 털이 노란 고양이가 살구나무 밑에서 마른 나뭇잎 마당을 긁으며 달아날 때 깜짝깜짝 놀라던 고양이도 죽었다. 그뿐이랴. 길에서 만난 떠돌이 개도, 몇 굽이 생의 우여곡절을 겪었던 앵두나무에게도 나는 이름을 지었다. 그들도 모두 죽었다. 등이 매끌매끌 했던 비 오는 날의 돌멩이도 비 그치고 겨울을 나고 다시 장맛비에 찾아갔더니 사라지고 없었다.

바람결이었나 싶다. 내가 이름 지어 준 것이 바람결 같았나 싶다. 어디 먼 타지에 가서 다시 또 다른 이름을 누군가 지어주려나. 바람결 같은 이름에 다시 몸을 얻어 또 어딘가에 닿을 여력을 얻기라도 하는 건가. 내가 이름 지어준 나뭇잎도 나의 외부로 떠나 버렸다. 맑은 봄바람에 갈피갈피 흔들리는 바람결의 잎들에게 나는 이름을 지었다. 그때는 내가 푸른 하늘에 은하수가 진짜로 흘러가는 줄 알았던 나이였다. 그때부터 나는 여태껏 나와 인연 닿는 사물들에게 이름을 지었다. 겨울이면 나무의 어린 가지에 매달려 마치 풍비박산 이 된 집안의 아우성 같았던 바람에게도 살점이 아린 이름을 지었다.

그래야 했다. 그러고 싶었다. 내가 이름 지어주면 마당의 동쪽 30년째 구석을 차지한 사철나무도 나의 여행지를 알아채고 내 보폭으로 세상을 유람할 수 있었다. 내가 이름 지어주면 나무들도 저마다의 보폭을 얻고 사계절의 옷을 갈아 입고 나타났다. 모두 다 저마다의 여행·유랑지를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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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용 시인

내가 이름 불러서 흙바람이 일어나고 젖은 땅에 풀잎이 기어갔다. 이름 밖으로 그 모든 것들이 우리의 걸음과 날개를 갖고 태어나고 죽을 수 있었다. 소나타 비바체 산조의 이름을 가진 잔가지들도 있었다. 꽃숭어리를 흔들던 석류나무도 있었다. 얼마나 많은 발자국들을 남겼던가. 나의 머리 위로 날아갔던 새들. 낡은 구두 같았던 새들. 그 새들에게도 나는 이름을 지었다.

휘파람을 불고 사물들에게 지어준 이름을 부를 때마다 별들이 눈을 깜짝거렸고 돌멩이들이 마당에서 등을 털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백발이 된 대파와 민들레들이 밤의 언덕을 넘었다. 모두가 이름이 있었기에 나는 기억하고 눈여겨보았고 함께 호흡했다.

내가 이름 짓지 않은 것들은 내게 오지도 않았고, 나를 떠나지도 않았으며, 목소리도 날개도 발걸음 등줄기도 보여주지 않았다. 물 안의 돌멩이와 맨발로 건너던 개울물에게도 나는 이름을 지었다. 그 냇물도 사라지고 없다. 돌멩이의 천국 같았던 까칠까칠한 발바닥 느낌에게도 나는 이름을 지었다.

오월이 햇살 한가득인 날 웃옷 벗고 일광욕하며 이 오월에게도 이름을 지어 주려 한다. 어떤 이름이어야 할까. 종일 호미 들고 마당의 풀 뽑고 국화를 손 보고 수국에 물을 주고 마른 갈잎의 부식 같은 부패를 호흡하면서 오월이 오월에 걸맞은 이름을 생각한다. 오월, 우리의 집단 무의식 안에 오월은 이미 커다란 상처의 오월이다. 이 오월에게도 생기와 발랄의 이름을 지어 주어야겠다. 아프지 않고 슬프지 않은 오월을 위해. 푸르게 키가 크고 꽃눈이 달리고 떡잎이 펼쳐지는 그런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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