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일상의 공간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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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6-19 07:46  |  수정 2020-06-19 07:52  |  발행일 2020-06-19 제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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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향 〈샘갤러리 대표〉

지금은 대학생이 된 딸아이를 어렸을 때 '소학' 강좌에 데리고 간 적이 있었다. 강의를 시작하며 큰 소리로 함께 낭독하고, 강의 마무리에도 낭독을 하는데 저음의 '합창'하는 소리에 딸애의 웃음보가 터졌다.

사실 나 또한 처음 갔을 때 그 낯선 풍경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일상의 공간으로 다가온 어느 순간부터 반복되는 리듬에 흥이나 몸까지 왔다 갔다 하며 진지하게 동참을 하고 있었다. '원형이정(元亨利貞)은 천도지상(天道之常)이요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인성지강(人性之綱)이니라~' 그랬는데, 그 엄숙한 분위기에 딸애가 고개를 푹 숙이고 웃음을 억지로 참으며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보가 터져 참느라 애를 먹었다.

지금도 당시 이야기만 꺼내면 둘이 배를 잡고 웃는다. 딸애가 "엄마, 나 그때 죽는 줄 알았어. 막 참고 있는데, 엄마를 보니 더 웃긴 거야~" "야, 나는 니 때문에 죽는 줄 알았어~" 딸애에게는 유교 문화, 향교, 소학에 대한 교육적 내용보다 엄마와 함께 책상에 앉아 들키지 않으려고 애써 웃음을 참았던 그 상황이 유쾌한 기억으로 남았던 것이다. 또 수업을 마치고 가끔 식사하러 가는 길에 대학생 언니 오빠가 자기를 챙겨주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같이 나누었던 것을 아름다운 그림의 한 장면같이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제도도 바뀌어 왔다. 그러나 교육제도가 아무리 바뀌어도 아이들이 해야 하는 공부의 양은 변하지 않고, 알아야 하는 내용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교육의 본질에 입각한 질적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교사와 학부모는 방향성을 잡기 힘들고, 특히 학부모는 다른 대안이 없어 사교육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사교육을 받는 상황에서 다른 길을 찾는다는 것은 불안한 마음을 안고 개척자의 길을 걷는 것과 같다. 나 또한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최선의 교육이 무엇인가에 대해 갈등하며 보냈다.

어느 순간 다 커버린 아이를 보며 좋은 성적을 올리고 스펙을 쌓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까이 있는 사람과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 힘을 키워나가는 것이며, 이것이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교육에서 놓치고 있는 이러한 부분은 일상의 공간에 대한 관심과 타인과 나누는 시간을 통해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김미향 〈샘갤러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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