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 방금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죠?

  • 박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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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6-22 07:56  |  수정 2020-06-22 07:59  |  발행일 2020-06-22 제15면

문제일

'오스틴 파워스'는 살인면허를 가진 영국 첩보원 007 제임스 본드를 패러디한 B급 코미디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너무 웃기면서도 공감이 가서 잊지 못하는 장면은 닥터 이블이 자신의 부하들을 모아놓고 이야기하는 장면입니다. "난 이 세상에 무서운 것이 딱 세 개가 있어"라고 이야기하곤 두 가지만 이야기를 합니다. 세 번째가 무엇인지 듣고 싶어 기다리는 부하들의 간절한 표정과 갑자기 자기가 이야기하려던 세 번째가 무엇인지 잊어버려 얼버무리는 닥터 이블의 능청스러운 표정이 너무 웃겼습니다.

여러분도 이와 비슷한 경험이 많지 않은가요? 회사 상사에게 메모 없이 많은 지시를 받으면, 나중에 지시사항을 수행할 때 처음 몇 가지는 떠오르는데 나머진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가 있죠? 이는 우리 뇌 속의 '작업기억'의 용량 때문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3가지 형태의 기억을 활용하는데 장기기억, 단기기억, 그리고 작업기억입니다.

장기기억은 수년이 지나도 다시 떠올릴 수 있는 기억입니다. 여러분이 기억하는 초등학교 친구들의 이름·얼굴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단기기억은 몇 시간 정도 보존되는 기억으로 특별히 관심을 두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지는 기억입니다. 아침에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마주친 사람의 얼굴 같은 정보가 해당되겠죠. 작업기억은 정보 활용을 위해 일시적으로 가져온 기억입니다. 전화통화를 하려면 휴대폰에 전화번호를 입력해야 해 전화번호를 떠올리게 되는데, 그때 우리는 작업기억에 의존해 그 전화번호를 기억합니다.

작업기억 이론은 1974년 영국 요크대학교의 앨런 배들리 박사와 그레이엄 히치 박사가 '작업기억 모델' 저서를 통해 제안한 인간 기억의 모델입니다. 작업기억의 용량은 뇌의 발달과정 혹은 훈련으로 확장될 수 있는데, 이는 집중력과 주의력에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책을 읽을 때도 방금 읽은 내용은 작업기억에 의존합니다. 따라서 작업기억 용량이 크면 방금 읽은 단어들을 기억해서 내용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집중력이 좋으며, 작업기억 용량이 작을수록 정보가 머릿속에 기억되지 않아 활용할 수 없기 때문에 집중하기 어려워집니다.

2020년 미국 시카고대학교의 모니카 로센버르그 교수 연구진의 'Journal of Neuro science' 발표 연구결과 역시, 더 좋은 작업기억 능력을 가진 9세와 10세 사이의 아이들은 인지, 언어, 그리고 문제 해결에서 더 좋은 성과를 보였다고 합니다. 어린 아이들의 뇌는 발달이 계속되고 있으며, 차분한 독서 등을 통해 작업기억 용량 향상이 가능합니다. 이번 여름방학은 사람들과 충분한 거리를 두고 시원한 곳에서 독서를 하며 자녀들의 작업기억 용량을 늘려주는 시간 보내면 어떨까요? 가을이면 여러분 자녀들의 늘어난 작업기억 용량 덕분에 집중력이 아주 좋아진 것을 경험하게 될 겁니다.
<DGIST·뇌 인지과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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