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볼턴 회고록, 妄言이지만 남북상황 재점검 이유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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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6-23   |  발행일 2020-06-23 제27면   |  수정 2020-06-23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22일 공식 브리핑을 통해 회고록 내용을 적극 반박했다. 정 실장은 "한국과 미국, 북한 정상들 간의 협의 내용과 관련한 상황을 자신의 관점에서 본 것을 밝힌 것"이라며 "정확한 사실을 반영하고 있지 않고, 또 상당 부분 사실을 크게 왜곡하고 있다"고 했다. 볼턴의 회고록은 편견적 주장으로 가득하다. 정부 간 협의 내용을 일방적으로 공개한 것은 외교적 큰 결례다. 이런 왜곡은 한미동맹의 근간을 훼손하고 한반도 평화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회고록 행간에 드러난 내용 일부는 문재인정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재점검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볼턴은 남·북·미 간 모든 정상 회동을 '사진찍기용'으로 폄훼했다. 대북 선제공격을 주장해온 매파 관점에서야 '대화'와 '평화'는 눈엣가시였을 테다. 영변 핵시설 해체 의지를 비핵화의 의미 있는 첫걸음으로 본 문 대통령을 보고 '조현병 환자 같았다'라고 막말을 했다. 그렇지만 메모광 볼턴이 밝힌 그간 알려지지 않은 일부 내용은 주목됐다. 즉흥적인 트럼프에 매달리다 남과 북이 갈팡질팡했던 상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한반도 운명을 놓고 가슴 졸이며 지켜봤던 하노이 회담. 그런데 트럼프는 '스몰딜'과 '걸어 나가기' 중 어느 것이 더 큰 뉴스거리냐를 놓고 궁금해 했다니 참으로 어이없다. 영변 핵시설에 미국이 부여하는 의미가 크지 않다는 것도 새삼 알았다. 한반도 종전선언이 백악관 내 매파들과 일본의 저지에 물거품이 된 정황도 드러났다.

이렇게 즉흥적인 미국에 의존해 북 비핵화를 도모해왔다는 데 적잖이 화가 난다. 결국 파탄 났다. 이제 지금껏 해오던 방식의 재점검이 필요하다. 위기상황이 다시 시작된 것은 안타깝지만 한편으로는 잘 됐다. 안 될 방식을 억지로 부여잡고 용쓰는 것처럼 미련한 짓이 없다. 오히려 방향 수정의 변곡점이 될 수 있다. 이제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리할 수밖에 없다.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로 생각한 것도 아니지 않는가. 협의의 틀, 접근 방식 모두 재점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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