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시대공감] K-pop 팬들에게 타격당한 트럼프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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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7-10   |  발행일 2020-07-10 제22면   |  수정 2020-07-10
미국내 K-pop팬들 영향력
이젠 정치로까지 영역 확대
노쇼에 트럼프도 유세 망신
소수자·진보운동과 맞물려
어엿한 하위문화 자리매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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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

최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클라호마주 털사에서 진행된 유세 행사 흥행 실패로 망신을 당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수많은 사람들이 운집할 거라고 과시했지만, 막상 행사 당일에 빈자리가 많아서 크게 격분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이 사건에 K-pop 팬들이 관여했다고 해서 화제다. 뉴욕타임스는 10대와 K-pop 팬들이 털사 유세 입장권을 예약했다가 가지 않는 방식으로 행사를 타격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캠프에서 유세 입장권 예약 공지를 띄우자마자 K-pop 팬들이 이 내용을 퍼나르며 신청을 독려했다고 한다. 그리고 당일에 가지 말자고 모의했다는 것이다.

K-pop 팬들의 노쇼(예약하고 가지 않기) 공세가 실제로 얼마만큼 유세 행사 실패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K-pop이 미국에서 정치운동으로 이어지는 것 자체가 이채롭다. 얼마 전엔 트럼프 대통령이 생일을 맞아 생일축하 메시지를 요청했는데 K-pop 팬들이 엉뚱한 가수의 영상을 대량으로 보내기도 했다. 미국 댈러스 경찰이 흑인 인권과 관련된 불법 시위 영상을 보내달라고 하자 K-pop 팬들이 일제히 신고앱 서버에 접속해 서버를 다운시킨 적도 있다. 미국의 백인우월주의자들이 '백인 목숨도 소중하다(White Lives Matter)'는 해시태그 운동을 벌이자 거기에 맞서서 같은 해시태그로 K-pop 영상이나 이미지를 대량으로 올려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운동을 무력화시키기도 했다.

K-pop 팬들의 정치적 영향력에 미국 매체들도 주목한다. 뉴욕타임스는 '음원 차트를 휩쓸고 콘서트 티켓을 매진시키며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아이돌을 화제로 만들어온 K-pop 팬들이 이제는 미국 정치로까지 활동 영역을 넓혔다'고 보도했다. "(흑인인권 시위대의) 예상치 못한 동맹군"(AP통신), "소셜 미디어계의 가장 강력한 군대"(CNN)라는 보도들도 나왔다.

K-pop에 정치적 메시지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 자체에 정치적 의미가 있다. 바로 비백인 비미국 비영어, 즉 타자 소수인종의 음악이라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주류 백인만을 배타적으로 결합시키자, 타자 소수인종 이슈가 미국에서 점점 중요한 정치 현안으로 부상했다. 최근의 페미니즘 운동도 소수자 이슈의 불길에 기름을 끼얹었다. 그러다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트럼프의 인기가 떨어진 상황에서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이 발생하자 소수자 이슈가 폭발하고 말았다.

이런 이슈에 분노하는 사람들과 K-pop 팬층이 겹쳤다. 백인우월주의자들은 한국인의 한국어 노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이질적인 소수자의 노래에 마음을 여는 사람들은 그 자신이 소수자이거나, 트럼프와는 정반대로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성향일 가능성이 높다. 또는 트럼프와 같은 기존 기득권 집단을 '꼰대'라고 생각하며 자신들만의 새로움을 적극적으로 찾으려는 젊은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트럼프에게 반발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그 결과 K-pop 팬들이 정치운동에 나선 것 같은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런 움직임을 통해 K-pop에 진보적 운동의 연결고리라는 정치적 의미가 생겨나고 있다. 물론 아직 K-pop이 미국 주류 문화 수준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건 아니지만, 무시할 수 없는 하위문화로 자리 잡은 것이다. K-pop에 이런 정치·사회적 의미까지 더해지면 그 인기의 수명이 더 길어질 수 있다.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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