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석의 일상의 시선] 내려놓는 마음의 성찰

  • 박진관
  • |
  • 입력 2020-08-14   |  발행일 2020-08-14 제22면   |  수정 2020-08-14
집착을 떠나보내기 위해선
일단 다 비워내는 것이 중요
우리의 사회와 경제, 문화는
채우기만 급급해 많이 훼손
삶의 무게 좀 더 가볍게 해야

#비우기

아는 이가 좋아하는 화가의 멋진 그림을 사자마자 거실 벽을 새롭게 리모델링했단다. 걸릴 그림에 맞추어서 벽 전체를 비운 것이다. 떼 내고 보니, 그동안 벽에 붙어 있던 것들이 새삼 자질구레하게 여겨지고, 어째서 그런 것들에 눈길을 주며 지내왔는지 의문스럽기까지 했단다. 비우고 다시 채우는 감정의 교차가 그렇게 이루어지기도 하는 모양이다.

요즘 주위 사람들이 버리기에 꽤 마음을 쓰고 있는 듯 보인다. 저마다 가지고 있는 게 많다고 생각하고 그걸 부담스러워하는 걸까. 이조차도 코로나19의 영향이 아닐까 여겨지기도 한다.

비우기는 쉬운 듯해도 어려운 일이다. 흔히 인테리어의 제1 수칙은 비우는 거라 한다. 비울수록 공간감이 고급스럽게 느껴진다고도 한다. 그런데도 가득 채워진 상태에서 버릴 걸 골라내는 건 쉽지 않다. 물건들이 제각각 나름의 의미를 가진 채 수납되기 때문에 그 애착을 떨쳐내기가 아쉬운 것이다. 그래서 일단 눈 꼭 감은 채 다 비워내고, 다시 필요한 것을 하나하나 채우는 것을 권한다. 버리면 많은 번뇌가 다 사라진다고 우스갯소리를 하는 이들도 있다.

기실 비우는 건 삶에 있어서도 중요한 화두다. 마음 비우기로 바꾸어 말하기도 하는데, 불교가 특히 그걸 강조한다. 집착을 떠나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 일단 다 비워내는 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불교 화두에 꽤 잘 쓰이는 '내려놓다'는 말도 그런 뜻과 다르지 않다.

#버리기

왜 버리기가 코로나19와 관련이 있다고 여겨질까. 이 기간 중에 유독 집안의 것들을 덜어내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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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대구문학관장

코로나19로 봄에는 학교도 직장도 다 문을 닫았다. 대부분 집에만 틀어박혀 지냈다. 그러자 비로소 내부의 것들이 눈에 띈 걸까. 집 안이 왜 이리 복잡하지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게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도 집안의 가구와 옷가지 등 갖가지 물건들을 내다 버리는 집들이 이 기간 중에 많았다. 인테리어용 장식품과 액자들, 화분과 수석과 인형들까지 다양한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쌓인 책들을 부담스러워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렇게 버려진 것들은 나름 쓸 만한 것들이기도 해서 골라서 가지고 가는 이들도 있게 마련이다. 안 쓰는 물건을 파는 인터넷의 사이트에는 유독 이 기간 중에 많은 물건들이 나왔고,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러니까 저마다 가진 것들이 너무 많아 그걸로 꽉꽉 채우느라 집 안이 좁아진 것을, 집에서 종일 지내다 보니 문득 깨달은 것이다. 아파트는 일반 주택보다는 더 한정된 공간이라 무한정 채울 수가 없다. 채우고 채우다 보니 속이 답답했고, 그리하여 속을 비워내야겠다고 여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 만사는 비우는 게 중요해 라고 자못 의미심장한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중얼거리며. 우리 사회·경제·문화 모든 면에서 그동안 너무 채우기에만 급급하여, 결과적으로 많은 것들이 훼손되고 망가져서(특히 생태 환경이 그러하다)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는 생각도 하면서.

코로나19로 인해 생겨난 새로운 풍속도라 할 수 있겠는데, 어쩌면 코로나라는 공포의 재앙 앞에서의 자기 성찰이 이런 식으로도 표출되는 게 아닌가 여겨진다. 감당하기 힘든 시기에 삶의 무게를 좀 더 가볍게 하자는 생각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는지도 모른다.
시인·대구문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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