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소소한 패션 히스토리] 오랜 시간 속옷으로 치부…이제는 남성 스타일링의 마침표

  • 유선태
  • |
  • 입력 2020-08-28   |  발행일 2020-08-28 제37면   |  수정 2020-08-28
■ 셔츠
장기간 남성 정장 슈트 안에 입던 부속품
1550년경 소매·손목 도드라보이게 발전
현대적 형태 19세기 후반에 와서야 성립
1880년대 노동자계층의 색깔 있는 셔츠
상류층은 非노동자 과시 위해 흰색 착용
슈트에 매치해 로맨틱 테일러드룩 연출
루즈핏 팬츠와 보헤미안 스타일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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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할 때 자외선 차단제를 챙겨 바르고, 피부 노화를 염려해 콜라겐을 섭취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며, 긴 여행을 위해 메이크업 파우치를 꼼꼼하게 체크하는 일이 이제 더 이상 여성들에게만 적용되는 일상은 아니다. 쇼핑 채널에서 다양한 기능성 메이크업 제품과 트렌디한 패션제품을 소개하는 남성 쇼호스트를 보는 것이 이상하지도, 이런 제품들의 사용에 남녀 성차별이 없어진 것이 언제인지 분명한 시기가 구분돼 떠오르지도 않는다. 현대를 살아가는 남성들은 자기표현을 위한 패션트렌드에 보다 민감해졌고 자기만족을 위한 투자에 더 이상 망설임이 없어졌다는 것만이 팩트다.

돌이켜 보면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사회 문화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성(性) 역할과 성 정체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약해지기 시작했는데 이는 패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게 된 현대사회가 점차 개성과 감성 중심으로 변화하면서 패션은 남성들에게도 자기를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남성들은 스스로 자신의 취향에 맞는 패션 스타일을 즐길 줄 알게 되었으며 스타일에 어울리는 옷을 직접 선택하고, 또한 자신의 외모를 가꿀 필요성을 느끼며, 그것이 곧 자기의 경쟁력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2000년대 초반 '꽃미남' 열풍이나 '메트로섹슈얼(Metrosexual : 패션에 민감하고 외모에 관심이 많은 남성을 이르는 말)' 트렌드의 등장은 남성들에게 내적으로뿐 아니라 외적으로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으며, 남성들은 더 이상 '남성다움'이라는 단어가 내포하는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게 되었다. 과거에는 사회적으로 권위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남성상이 올바른 것으로 인식되었지만 요즘은 여성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양성성(Androgyny)을 가진 남성이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남성 패션 디자인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남성복 가운데 주목할 만한 아이템인 셔츠(Shirt)는 양복 안에 받쳐 입거나 겉옷으로도 입는 상의다. 그중 드레스 셔츠(Dress Shirts)는 남자 정장 슈트(Suit) 밑에 입는 밴드가 달린 칼라와 단추가 달린 앞단으로 처리돼 넥타이를 곁들이는 정통 정장 스타일의 셔츠를 이르는 말이다. 드레스 셔츠는 오랜 동안 슈트를 갖춰 입을 때 안에 입는 기본적인 품목으로 착용돼 왔지만 현대 남성 패션에서는 그 자체로도 개성을 표현할 수 있도록 다양한 디테일과 색상, 문양, 소재를 적용한 디자인으로 출시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남성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있어서 옷을 입을 때 생각하게 되는 격식에 대한 가치관이나 패션에 대한 시각이 개방적으로 변화함에 따른 당연한 흐름으로 간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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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릿이 들어간 재킷 사이로 보이는 16세기 고전적인 스타일의 화이트 셔츠. Simon Vouet(파리 1590~1649), 개를 데리고 있는 신사의 초상화, 캔버스에 유채. 출처 : https://han.gl/HGQIh

셔츠는 본래 상반신을 덮는 '속옷'이었다. 약 18세기 이전까지 몸에 땀이나 외부로부터의 오물이 묻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속옷의 개념으로 착용돼 왔는데, 셔츠는 팬티의 역할까지 담당해 뒤판의 밑자락과 앞판의 밑자락이 가랑이 사이에서 만나 앞단추로 고정시켜 입었다. 지금도 셔츠의 밑자락이 둥근 라운드 형태로 된 것이 바로 이러한 역사적 유래를 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과 같은 기본 셔츠 형태가 나타나기 이전에도 셔츠의 기능을 담당했던 '슈미즈(Chemise)'가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셔츠의 형태를 띠고 있지는 않았다.

간단한 린넨 슈미즈의 형태는 르네상스 시대까지 부분적으로 유지되다가 1500년경부터 1550년경까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셔츠의 고전적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셔츠는 헐렁한 소매와 손목 부분에 주름을 잡아 밴드를 묶거나 러플(Ruffle)을 달기도 했는데, 이전까지 속옷으로만 치부되던 셔츠가 이러한 디테일의 사용으로 부분이나마 외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후로 셔츠는 디자인과 구성 요소의 중요성이 부각되며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겉옷의 가장자리와 트임, 네크라인에서 노출돼 당시 남성 패션에 활기를 불어넣는 아이템이 되면서 비로소 셔츠에 장식적인 요소가 발달하기 시작했다. 16세기 후반에 와서는 네크라인과 커프스가 다양하게 나타나면서 셔츠의 형태가 더욱 사치스러워졌다. 역사적으로 르네상스, 로코코, 바로크 시대를 거치면서 남성복의 장식성이 극대화되었고 셔츠 또한 이러한 변화와 함께하며 발전했다.

셔츠의 현대적 형태는 19세기 후반에 와서야 성립됐다. 1871년 Brown, Davis & Co.에서 기존의 위아래로 입고 벗는 형태의 셔츠에서 처음으로 가슴 아래로 버튼이 달려 내려오는 현대적 형태의 셔츠를 제안했는데, 칼라는 탈부착이 가능한 형태였으며, 풀을 먹여 매우 단단했다. 1870년대 후반부터는 셔츠의 양 어깨에 천을 덧붙였고, 후에는 등과 어깨에까지 이어지게 돼 요크가 생겨나게 되었다. 1880년대에 이르러서는 셔츠의 앞부분이 유채색이거나 화려하게 꾸며진 것을 선호하게 되었고, 시골에서는 색깔 있는 셔츠를 착용했다. 노동자 계층에서도 색깔 있는 셔츠를 착용했으나 상류층은 여전히 비노동층임을 과시하기 위해서 흰 셔츠와 칼라를 상징적으로 고수했다. 그러나 20세기 초반기부터는 세습제에 따른 계층적 구별이 약화되는 대신 신흥 부자의 등장을 통해 부의 표현이 중요하게 간주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경제적 풍족함을 겉으로 드러내기 적합한 외의인 슈트가 중요하게 부각되었고 셔츠는 계층에 따른 제약이 없어짐에 따라 신분 표시로서의 기능에서 멀어져 슈트의 스타일링을 도와주는 아이템 본연의 역할에만 충실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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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감하고 강렬한 색조로 변신한 클래식 드레스 셔츠는 평범한 느낌의 오피스 룩에 생동감 있는 터프 감각을 더해준다 .(2020 F/W Coach 1941) 출처 : wgsn.com

이렇듯 남성복 셔츠의 발생과 발전은 파란만장했다. 과도한 장식의 화려했던 역사를 뒤로한 채 오랫동안 밋밋하게 스타일링의 보조적인 역할에 만족해야 했으나 남성들의 패션의식이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는 현재에 이르러는 다시금 화려한 부활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부드러운 남성미와 미니멀 스타일이 트렌드로 강하게 자리하게 된 이번 시즌 역시 이러한 부활의 전주를 보여주는 듯, 컬렉션에 나타난 남성 셔츠는 군더더기를 뺀 미니멀한 스타일부터 화려한 로맨틱 블라우스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자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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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본 달린 넥라인, 블라우스를 연상시키는 실루엣과 풍성한 러플은 보헤미안 셔츠를 차별화하는 주요 디테일이다. 출처 : wgsn.com

다가올 새로운 계절에는 우울함을 떨쳐버리기 위해서라도 이제까지의 기본 스타일에서 벗어나 컬러, 프린트, 여성스러운 디테일의 시도를 통해 완벽한 자기표현에 도전해 보자. 풍성한 느낌의 컷과 로맨틱한 분위기가 스며든 셔츠는 남성복의 선입견에 도전하며 개성 넘치는 스타일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고, 슈트와의 코디네이션을 통해 로맨틱한 테일러드 룩을 연출하거나 부드럽게 흐르는 루즈핏 팬츠와 재킷을 함께 착용함으로써 보헤미안 감성이 물씬 풍기는 스타일링을 완성하기에도 안성맞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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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계명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계명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참고자료

△F/W 20 남성복 컬렉션 리뷰 : 셔츠&우븐탑_ wgsn.com △F/W 20 남성복 주요 아이템 : 셔츠_ wgsn.com △S/S 21 남성복 코어 아이템 : 셔츠&우븐탑_ wgsn.com △셔츠 디테일을 활용한 디자인 개발_한성현(학위논문, 2014) △셔츠(Shirt) 이미지를 활용한 패션디자인 연구_서경(학위논문, 2014) △현대 남성 드레스 셔츠에 나타난 젠더 밴딩 (Gender-bending) 디자인 특성_한솔비(학위논문,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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