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아침에 직장 잃은 자괴감 텃밭 가꾸고 글쓰며 극복했죠"

  • 천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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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9-09   |  발행일 2020-09-09 제12면   |  수정 2020-09-09
경산서 식당 운영 장성식씨
직장 파산에 50대에 실직
힘든 시기 취미로 글쓰기
자연과 마주하며 용기 얻어
8월엔 생애 첫 시화전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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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산역 맞이방에서 시화전을 열고 있는 장성식씨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텃밭을 가꾸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이제 일상이 됐습니다. 삶에도 후반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올해 66세로 경북 경산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장성식씨는 지금부터의 삶이 인생 후반전이라고 말했다. 그는 취미로 글쓰기, 그림 그리기, 손글씨 쓰기 등을 시작했으며, 지난 8월3일부터는 약 한 달 일정으로 경산역 맞이방에서 생애 첫 시화전을 열었다.

10여 년 전 다니던 직장이 파산하면서 갑자기 직장을 잃은 장씨는 이후 분노와 자괴감으로 한동안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했다. 그런 그가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게 된 것은 텃밭을 일구면서다.

"50대 중반에 실업자가 됐습니다. 애정을 쏟았던 만큼 분노가 증가했고, 버려졌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더 컸습니다."

일자리를 잃은 그는 아침에 일어나 경산 남천면 산전리 비내골 텃밭으로 출근했다. 호미를 들고 무작정 땅을 팠다. 힘들면 하늘과 땅을 향해 욕도 하고, 울화가 치밀면 텃밭과 이어진 산으로 올라갔다. 그래도 화가 가라앉지 않으면 찬물을 뒤집어썼다. 심심하면 밭둑에 늘어져서 잠을 잤다.

그러는 사이 분노는 차츰 가라앉았고, 씨를 뿌리고 채소를 가꾸면서 예상치 못한 재미를 하나씩 얻기 시작했다. 씨를 뿌리고 며칠 지나면 꼬물거리는 작은 생명이 흙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자연과 마주하는 시간은 갈등도 대립도 분노도 없었다. 무엇이든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겼다.

때마침 지역 문인협회에서 '나도 작가가 될 수 있다'라는 이름으로 글쓰기 강좌가 열렸다. 장씨는 주저 없이 등록했다. 살아가는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텃밭의 작물이 자라듯이 글도 자라는 것 같았다. 비내골 텃밭 이야기로 수필을 써 계간 수필미학에 투고했는데 뜻밖에 신인상을 수상했다.

지역문화센터에서 열리는 그림 수업과 손글씨 수업에도 참가했다. 식당을 열고 아내와 함께 운영하면서 틈틈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식당 2층에는 작은 작업실도 마련했다. 공모전에서 수상도 했다. 분노와 자괴감이 사라지고 살아가는 재미가 생겼다. 함께 글쓰기 공부를 했던 동료들과 수필문학 동아리를 만들어 회장을 맡았다.

"코로나19가 오기 전에는 식당 운영도 할 만했습니다. 장사가 안 되고 어려워졌지만 이제 버텨낼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이 환하다.

글·사진=천윤자 시민기자 kscyj83@hanmail.net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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