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때론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

  • 장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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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9-22   |  발행일 2020-09-22 제26면   |  수정 2020-09-22
前·現 법무장관 논란과 공방
국민 짜증과 피로감만 유발
국정 고민해야 하는 자리서
개인일로 다툼 벌이는 풍경
더는 익숙해지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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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영 동부지역본부장

돌이켜보면, 국민들이 힘들어하던 시기마다 스포츠 스타들이 적잖은 위안과 함께 용기를 줬다. IMF 외환위기 당시 1998년 US여자오픈 골프대회에서 박세리는 해저드 라인에 걸친 볼을 치기 위해 물속에서 '맨발샷'을 날리며 우승컵을 들었다. 금융위기 여파가 지속될 무렵에는 김연아가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뽐내며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후 '박세리 키즈' '김연아 키즈'가 속속 등장하며 또 다른 영광과 희망을 선사하고 있다.

이들의 경이로운 활약 덕분에 자신감과 자존감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었던 국민들은 자연스레 골프와 피겨스케이팅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영상과 스토리가 전해주는 감동의 크기는 해당 종목의 경기방식이나 용어에 친숙해질수록 커졌다. '라이를 읽는다'거나 '트리플을 시도한다' 등의 해설이 낯설지 않게 된 것은 긍정적인 학습효과였다. 아는 만큼 보였고 보이는 만큼 느낄 수 있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IMF나 금융위기 때보다 더한 어려움이 2020년을 관통하고 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를 코로나19가 일상을 집어삼킨 가운데 태풍이 연이어 전국을 할퀴며 지나갔고 인간말종이나 저지를 법한 범죄도 잇따랐다. 정말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한 해로 남을 듯하다. 이 와중에 법치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법무부 장관도 2명 연속 구설수 풍년이다. 조국 전 장관은 여러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이며, 추미애 장관 역시 아들 문제로 고소·고발이 난무하는 등 논란의 중심에 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닐지 몰라도, 많은 사람들은 보이는 대로 본다. 대학 입시를 비롯해 병역이나 성폭력, 그리고 위안부 할머니 문제 등은 휘발성이 강한, 그래서 국민에겐 역린이나 다름없는 영역이다. 일반적이지도, 상식적이지도 않은 지저분한 일들이 집권 여당이나 국무위원 주변에서 반복되는 현상이 과연 정상적일까. 인사 검증 시스템은 '기-승-전-임명'으로 작동하고 대립과 갈등, 혐오 등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짜증과 피로감을 유발한다. 이런 상황은 코로나19와 상관없이 이전부터 횡행했으니 그 연속성과 '내로남불'에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아직도 현재진행형이어서 누가, 언제, 어떻게 끝날 것인지 백신 출시만큼 궁금하고 기다려진다.

최근 조 전 장관에 이어 부인 정경심 교수와 아들도 형사소송법 제148조(근친자의 형사책임과 증언거부)를 각각 100여 개와 50여 개에 이르는 검찰 질문에 답변을 거부했다. 그동안 조 전 장관은 법정에서 진실을 가릴 것이라고 스스로 말해왔었지만 결국 증언거부권을 행사했다. 덤으로, 법조인이 아니라면 148조를 평생 모르고 살았을 수많은 사람에게 깨알 같은 지식을 알게 해줬다.

이미 검찰개혁과 관련, '마이 웨이'를 외치고 있는 추 장관은 아들 병역특혜 시비로 공방이 치열하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그런 의혹에 대해 "휴가 연장은 카톡으로도 신청이 가능하다"고 거들었다. 그리고 며칠 뒤엔 느닷없이 안중근 의사까지 소환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고추장 대신 빨간 물감 풀어 넣고도 손님상에 올리려나. 제발 비유와 인용도 정도껏 하자. 옛말에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했다. 한없이 경박하고 몰상식한 엄호는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

감투가 무거우면 묵묵히 바른 자세로 견디거나, 아니다 싶으면 벗으면 된다. 벗기엔 아쉽고 견디기도 싫으면 어쩌자는 건가. 치열하게 국정을 고민해야 하는 자리에서 가열차게 개인 일로 공방을 벌이는 풍경에 익숙해지고 싶지 않다. 내용과 본질이 물론 중요하지만, 때로는 형식이 내용을 지배할 수도 있음을 생각해 본다.
장준영 동부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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