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월가의 유리 천장을 깬 '프레이저'

  • 박진관
  • |
  • 입력 2020-09-22   |  발행일 2020-09-22 제27면   |  수정 2020-09-22

2020092101000741700029391
김순덕 한국여성경제인협회 대구지회장

"누가 됐든 월가 최초의 여성 CEO 탄생을 보고 싶다."

2018년 미 CNN방송과의 인터뷰를 가진 지 2년 만에 프레이저는 스스로 그 '누구'가 됐다. 유리천장을 깨고 미국 월가의 주요 10대 은행 가운데 첫 여성 CEO라는 새로운 역사를 쓴 프레이저 대표는 월가에서 주목받아 온 대표적인 여성 금융인이었다. 골드만삭스 런던지점에서 인수·합병(M&A)을 담당했고, 컨설팅회사 맥킨지앤드컴퍼니에서 10년간 경력을 쌓았다. 포천지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경제인 51'에도 뽑혔다.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관심을 끈 것은 그의 화려한 경력보다 육아와 업무를 병행하며 성공한 '워킹맘'으로 평가받았다는 점이다. 육아와 업무를 병행하면서도 성공적인 뱅커로 성장했지만 프레이저 대표는 맥킨지에서 10년간 일하는 동안엔 육아를 위해 파트 타임으로 일하기도 했다. 아이들의 엄마로서 경력을 쌓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절감했다는 그의 고백이 그냥 들리지 않는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능력 있는 여성이 일과 가정 사이에서 힘들어하다가 직장을 그만두는 일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그렇게 사라져간 여성 후배들이 한둘이겠는가.

우리나라의 조사 결과도 비슷하다. 여성경제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일과 생활의 균형이 어렵다고 답한 여성 기업인은 무려 75.2%에 달했다. 보통 미만이라고 대답한 것은 24.8%에 불과했다. 다섯 명 중 한 명은 일과 생활의 균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기업인이 받는 차별도 심각하다. 남성기업인에 비해 차별적 대우를 경험했다는 응답률도 44.6%에 달했다. 여성 경영인의 능력 및 전문성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과 편견, 대표가 여성임에도 최고경영자로 보지 않고 하위직급으로 인식하는 등 거래처의 무시, 영업활동·접대에서의 남성 중심적 문화, 거래 시 성별에 대한 직·간접적 차별 등 그 차별의 유형은 다양하다. 이 같은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여성기업인 10명 중 8명(75.8%)은 남성 기업인에 비해 더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가정 양립을 지키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투자(29.5%)하고 더 많은 준비(26.7%)를 하고 더 많은 공부(25.7%)를 하면서 차별의 벽을 뛰어넘으려 애쓰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많은 여성기업인들은 하루 24시간을 분단위로 쪼개가며 슈퍼우먼이 되어 직장과 가정을 오가며 치열하게 살고 있다. 남들보다 2~3배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서는 이 살벌한 경쟁에서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여성기업인의 대우와 조건·배려를 따로 법제화하고, 차별을 개선하기 위한 지침을 정립해 처우 개선을 위한 노력을 수행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출산휴가·육아휴직 시 대체인력 고용지원제도 도입, 돌봄과 양육 비용에 대한 소득공제 지원 확대, 여성기업인의 기업 활동에 대한 긍정적인 사회 인식 확산 등이 시급하게 필요하다. 지역 중소기업의 성장을 위한 여성 전문 창업BI(창업보육센타) 지원, 관할 공공기관의 여성기업제품 공공구매 의무 강화, 공공기관의 지역 중기제품의 우선 구매·지원 등이 기왕에 마련된 제도의 엄격한 실천도 필요하다.

여성의 일방적인 희생과 노력만으로 유리천장을 깰 수 없으며, 바람직한 일도 아니다. 따라서 사회 전체의 제도와 인식 변화가 절실하다. 스스로 능력과 꿈을 접어야 하는 경단녀들은 당신의 어머니이고 아내이고 또한 당신의 딸이다.
김순덕 한국여성경제인협회 대구지회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