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벽돌 책' 깨기

  • 최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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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9-28 07:55  |  수정 2020-09-28 08:54  |  발행일 2020-09-28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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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동 〈대구 다사고 교사〉

미카엘 엔데의 소설 '모모'는 주인공 모모가 사람들에게서 시간을 빼앗아가는 시간 도둑과 맞서 싸우는 이야깁니다. 이 소설에는 화려한 언변으로 사람들을 속여 넘겨 시간을 빼앗는 계약서에 서명하게 만드는 기술을 가진 회색 신사가 나옵니다. 회색 신사는 부지런하고 친절한 이발사 푸지씨를 향해 이렇게 꾸짖습니다. "…일을 더 빨리 하시고 불필요한 부분은 모두 생략하세요. 지금까지 손님 한 명당 30분이 걸렸다면 이제 15분으로 줄이세요…." 회색 신사는 파괴와 경쟁, 반목과 시샘, 무관심을 부추깁니다. 결국 사람들은 돈벌이가 되지 않는 일에 시간과 열정을 쏟는 것을 낭비라고 여기고 업무 효율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 모든 시간을 줄이거나 없애고 기계처럼 살아갑니다. 행복한 시간을 줄이고 불행의 늪으로 빠져들게 되지요.

이 소설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 삶에서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에서 행복을 느끼는가?" 우리는 사랑, 친절, 우정, 취미, 여가, 건강과 웃음, 가족과 공동체와 함께 할 때 행복을 느낍니다. 그럼, 회색 신사가 빼앗아간 행복을 되찾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시간을 함께 보내며 그 속에 좋은 이야기를 담기 위해서 새로운 경험을 의식적으로 계획해야 합니다.

지난여름, 가까이 지내는 지인들과 온라인 독서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모임 이름은 '벽돌 책 깨기'라고 지었어요. 욕심내지 말고 석 달에 한 권 정도를 읽기로 하되, 책은 반드시 목침으로도 쓸 만한 두께의 '벽돌 책'으로만 하자고 정했습니다. 언젠가 읽으려고 사기는 했지만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책, 모두가 훌륭한 책이라 말해서 막상 첫 페이지를 펼쳤으나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 덮어버린 책, 억지로 읽기는 했는데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는지 불안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이해했는지 기어코 알아보고 싶은 책을 '벽돌 책'의 범주로 정했습니다.

우리 모임의 목표는 함께 '벽돌 책'을 깨는 것입니다. 첫 번째 책을 정하는 온라인 대화 시간, 다들 주변 사람들에게 '나 요즘 책 모임에서 이런 책을 읽고 있어'라고 자랑할 만한 책을 정하고 싶다는 생각에 예상 외로 활발한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정한 책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모임에 참가하는 네 명 모두 문과형 인간이라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시작했던 대화는 이런 기회가 아니면 절대 읽지 않을 거라는 기특한 생각으로 발전하여 말 그대로 벽돌처럼 두꺼운 두 권의 책으로 결론을 맺었습니다.

지난주에 그 첫 번째 독서 모임을 진행했습니다. 온라인으로 만나지만 진짜 카페에서 만난 것처럼 해 보자는 누군가의 말에 각자 자기 집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코스모스'는 우주가 얼마나 광활한지 끊임없이 이야기하다가도 인간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소중한 지구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오지요. 무엇을 이야기하든 계속 인간의 문제로 돌아온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칼 세이건이 들려주는 휴머니즘에 감동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첫 독서모임이 정말 그랬습니다. 하는 일도 사는 모습도 조금씩 다른 네 사람이 한 권의 책을 펼치고 나누는 이야기에서 오랜 세월을 만나고도 몰랐던 그 사람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합니다.

학교에서 독서 활동을 진행하며 저의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모든 책읽기가 책 속에 담긴 정보를 다 이해하는 것으로 흘러갈 필요는 없음을, 내가 사랑하는 대상,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메시지를 최선을 다해 전달하는 작가의 태도를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한 독서 활동이 될 수도 있다고 말이지요. 그러니 책이 너무 두껍다고 걱정하지 말고 일단 함께 첫 페이지를 펴 보시기 바랍니다. 새로운 시간이 시작될 것입니다.
김언동 〈대구 다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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