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타임] 끝나지 않는 경제 거품

  • 홍석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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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0-04   |  발행일 2020-10-05 제26면   |  수정 2020-10-04

경제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사례가 하나 있다. 17세기 발생했던 '튤립 버블'이 그것이다. 대서양 무역을 통해 많은 돈을 벌어들였던 네덜란드에는 당시 튤립을 키우고 자랑하는 상류층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튤립 가격은 급등했다. 당연히 튤립 투자는 광풍으로 이어졌고, 튤립 한 송이와 배 한 척의 가격이 엇비슷할 지경이었다. 가격이 급격하게 오른 한 달 동안 상승률은 무려 2천600%에 달했다. 하지만 튤립 가격은 불과 4개월 만에 99% 폭락한다.


20세기 이후 경제 규모가 성장하면서 거품경제도 빈번하게 발생하곤 했다. 최악의 거품으로 꼽히는 것은 일본의 자산버블이다. 도쿄의 상업용 부동산 가격은 1984년 이후 5년간 2.7배, 주거용 부동산 가격은 같은 기간 2.2배 올랐다. 버블 경제 전성기였던 1990년에는 주택 가격이 직장인 연봉의 8배, 수도권 신규 아파트 가격은 직장인 연봉의 18배에 달했다. 정부가 대출 규제와 세금 인상, 부동산 감정가 현실화,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하자 전국적으로 아파트와 토지 가격은 절반 이하로 추락했다.
 

국내에서도 버블경제의 쓰린 기억이 없지는 않다. 외환위기 직후의 닷컴 버블이 대표적이다. 정부의 벤처기업 육성책에 힘입어 IT(정보기술) 기업들이 상장해 있던 코스닥 시장은 한때 284포인트까지 급등했다. 코스닥 지수가 2004년 10을 곱해 재출범했던 것을 감안하면 닷컴 거품이 한창일 때 코스닥 지수는 현재의 코스피 지수보다도 높은 2,840선까지 올랐던 것이다. 당시 골드뱅크와 드림라인의 주가수익 비율은 무려 9천999배에 달하기도 했다. 얼마나 큰 광풍이 불었는지 미루어 짐잘 할 수 있다.
 

버블경제의 징후 중 대표적인 것이 있다. 투자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다. 자산 가치가 급등하고 있기 때문에 투자하지 않으면 나만 손해 볼 것 같은 심리적 조급함도 한몫한다. 이는 당연히 '묻지마식' 투자 분위기로 이어진다.
 

현재 우리나라는 '영끌 매수'(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것)와 '빚투'(신용대출 등으로 빚내서 투자하는 것)가 화두가 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8월 은행 가계대출은 948조2천억원이다. 전달에 비해 한 달 만에 11조7천억원이나 늘어났다. 그 증가 폭은 역대 최대치다. 1년 전 보다는 1.5배 넘게 늘었고 2018년 8월 보다는 무려 2배나 증가한 수준이다.
'거품은 인간의 광기를 먹으면서 자란다'는 격언의 의미를 곰곰히 되씹어봐야 할 시간인 것 같다.
경제부 홍석천기자 hongsc@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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