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우골탑과 쪼글탑

  • 백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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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0-15   |  발행일 2020-10-15 제23면   |  수정 2020-10-15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경제성장의 기적을 이룬 한국의 가장 큰 요인으로 '우골탑(牛骨塔)'을 지목했다. 고귀한 학문을 상징하는 대학의 상아탑이 아니라 고액의 등록금 마련을 위해 부모가 내다 판 소의 뼈다귀로 세운 대학이라는 뜻이다.

우골탑은 1970~1980년 무렵에 가난한 농촌의 부모가 자신의 못 배운 한을 자식이 풀어주기를 바라며 재산 목록 1호인 소를 팔아 등록금을 마련하면서 생긴 말이다. 우골탑은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수많은 학부모는 가난한 농부였고, 힘 없고 백 없는 농부는 자식의 교육투자를 집안의 신분 상승의 목적으로 삼은 것이다.

애지중지 키우던 소와 땅을 팔아 대학을 졸업한 장남이 나중에 집안을 먹여 살렸던 힘든 시절 소설 같은 이야기다. 당시 대학생 신분은 모두의 선망 대상이었다. 장남이 대학에 합격하면 동네에는 '삼거리 00 아들 00 대학 합격'이라는 현수막이 나붙었고 동네잔치를 벌였다. 개천에서 용이 나던 시절 이야기다. 1990년대 들어서 우골탑은 비싼 등록금 마련과 자식 수발로 부모의 등골이 휘어졌다는 '인골탑(人骨塔)'으로 발전했다. 2000년대에는 인골탑으로 대학에 보낸 자식이 생활고와 취업난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탑(自殺塔)'이 생겼다. 요즘 서울의 대학가에는 비싼 집값 탓에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쪼글탑'이 다시 세워지고 있다고 한다. 쪼글탑은 서울에서 기숙사에 입사하지 못한 생활이 어려운 대학생이 쪽방이나 원룸에서 여러 명이 쪼그려 잔다는 표현이다.

사실 부모가 소와 땅을 팔지 않고, 자식을 대학에 보내지 않았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하는 궁금증도 생긴다. 아마도 급등한 농촌의 땅값 덕분에 부모는 편안한 노후를 보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싶다. 그렇지만 부모는 자신과 같은 고난의 삶이 아니라 양복을 입은 번듯한 직장인을 기대하면서 모든 것을 쏟아붓는 고난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자신의 노후 대신 아들과 딸의 삶을 포용하는 부모는 곧 하늘이면서 태양이다.

백종현 중부지역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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