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바다인문학] 전어 이야기

  • 유선태
  • |
  • 입력 2020-10-23   |  발행일 2020-10-23 제37면   |  수정 2020-10-23
맛 좋아 가격 안따지고 먹는 물고기…겨우살이 준비할 때 잡는 가을이 제철

5
새코시 형태로 썰어낸 전어회

'서울 사람들이 감히 전어 맛을. 어림도 없는 소리였지.'

전남 강진 마량항에서 전어 그물을 손질하던 늙수그레한 어부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1990년대 후반 살아 있는 전어가 횟집은 물론 포장마차까지 점령했다. 넙치와 우럭(조피볼락)에 익숙한 서울 사람들에게 하늘하늘 은빛 비늘을 휘날리며, 그것도 가을에 나타났으니 오죽했겠는가. 씹을수록 고소하고 값도 비싸지 않았으니 금상첨화였다. 남은 것은 그대로 굽기만 하면 새로운 맛으로 변하니. 세상에 이런 생선이 어디 있겠는가.

전어는 청어과에 속하는 바닷물고기다. 몸은 긴 타원형으로 납작하며 등은 청색, 배는 은백색이며 그 사이에 황록색을 띤다. 아가미 옆에 검은 반점이 있으며 배 가장자리에 날카로운 모 비늘이 있어 손질할 때 주의해야 한다. 우리나라 전 연안에서 자란다. 남해 연안만 아니라 동해안 울진과 서해 인천 앞에서 전어가 잡힌다. 한류와 난류의 경계가 무너진 탓인 것 같다.

씹을수록 고소한 맛에 반해
회로 먹고 남으면 구워먹고
1990년대 포장마차까지 점령

개흙서 작은 동물 먹고 살아
강 하구·연안에 어장 생겨
자산어보선 '육지 근처' 선호

봄철엔 고소함보다 여린 맛
7월엔 살 안오르고 비리기도
몸 키운 '가을전어'가 제맛

2000년대초 산지서 1㎏ 3천원
최근 2만~3만원으로 올라
추석 연휴 전후에 몸값 절정

이상기온 탓에 어장 형성 안돼
식객들 주머니 두둑히 채워도
전어 안잡혀 입맛만 다실 판


◆육지 전어가 맛있다?

정약전 '자산어보'에 '전어 큰 놈은 1척(약 30㎝) 정도다. 몸통이 높고 좁다. 색은 청흑이고, 기름이 많으며 맛은 달고 진하다. 흑산에 간혹 있지만, 육지 근처에 나는 놈만 못하다'라고 했다. 주목해야 할 것이 '육지 근처에 나는 놈만 못하다'는 대목이다. 생선은 무엇을 어디에서 먹느냐가 맛을 결정한다. 전어는 개흙에 서식하는 작은 동물들을 잡아먹고 살을 찌운다. 주요 어장이 강 하구나 연안에 형성되는 이유다.

'난호어목지'에는 '입하 전후 풀이 있는 물가에서 진흙을 먹을 때 어부들이 그물을 쳐서 잡는다. 살에 잔가시가 많지만 부드러워 목에 걸리지 않으며 씹으면 기름지고 맛이 좋다'고 했다. 특히 '상인들이 소금에 절여 서울에 파는데 귀천을 가릴 것 없이 모두 진귀하게 여긴다. 그 맛이 좋아서 사는 사람들이 가격을 따지지 않기 때문에 전어라고 한다'고 했다. 대나무에 10마리씩 끼워서 팔아 전어(箭魚)라 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지역에 따라 새갈치, 대전어, 엿사리, 전어사리 등으로 불렀다. 가장 독특한 이름은 동해안에서 불리는 '어설키'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이나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함경도 해역의 토산으로 나타나고 있다.

오늘날 가을철 전어축제가 개최되는 포구는 크게 인천 소래포구, 김포 전류리, 서천 홍원항, 보성 율포, 광양 망덕포구, 마산 어시장, 부산 명지어시장 등이다. 이쯤이면 서해와 남해를 아우르는 생선임에 틀림없다.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먹이가 풍부한 지역이다. 봄철 산란을 한 후 전어들이 찾아드는 곳이다. 섬진강과 한강을 제외하고는 물길이 막혔다. 섬진강이 어떤 강인가. 지리산을 굽이쳐 흐르고 깨끗한 곳만 찾는 은어가 서식하는 곳이다. 전국 전어가 망덕포구 전어로 둔갑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망덕포구 외망리 어부 강순종씨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로 손암 정약전의 이야기를 확인한 셈이다.

4
전어구이

◆왜, 가을전어라 할까

전어 맛이 절정에 달하는 시기는 추석 연휴 기간이다. 몸값도 절정에 이른다. 가족들이 모여서 한쪽에서는 고기를 굽고, 그 사이 한쪽에서는 전어를 썰어두고 회포를 푸는 것이 일상이다. 전어가 2000년대 초반 산지에서 1㎏에 3천원이었다. 그런데 최근 2만~3만원으로 올랐다. 전어 시세가 가장 좋은 추석 연휴에는 이보다 더 비쌀 것이다. 전어값도 올라 1㎏에 8천원에 거래되었다. 소비자들은 추석 연휴에는 3만원에 먹었다.

전어는 난류성 어류로 차가운 바다를 싫어한다. 서식하기 적정한 수온을 찾아 산란하기 좋은 장소를 찾아 4월이면 연안으로 여행을 시작한다. 그래서 봄철에 남해안 연안에서 잡히는 전어들은 고소함보다는 여린 맛이 앞선다. 산란을 위해 들어오는 전어들이다. 부드럽고 살며시 녹는 맛을 즐긴다면 남해와 접한 삼천포가 좋다. 보통 7월을 전후해 산란을 한다. 이때 잡은 전어는 아직 살이 오르지도 않았고 비린내가 나며 고소함이 덜 하다. 산란한 후 바닷물 온도가 내려가면 다시 깊은 바다로 나가야 하기 때문에 강 하구에서 열심히 먹이활동을 한다. 부지런히 몸을 만들고 겨우살이를 준비하는 것이다. 이때 연안에서 그물을 드리우고 전어를 잡는다.

너무 일찍 잡으면 전어가 먹은 펄이 몸에 남아 있어 고소함이 떨어진다. 너무 늦으면 깊은 바다로 나가니 닭 쫓던 개 꼴이 되고 만다. 요즘 이상기온으로 전어어장이 형성되지 않는 해도 있으니 가을입맛에 길든 식객들은 호주머니가 두둑해도 입맛만 다셔야 할 판이다.

3
전어는 성질이 급해 수족관에서 나오면 바로 눕는다.

◆그래도 남해가 전어몰이해

바닷물고기는 조류, 온도, 수심 등에 민감하다. 전어가 뭍사람과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이 남해안이다. 사천, 삼천포 광양, 망덕포구, 여수 여자만, 고흥 득량만 등이 들끓기 시작한다. 삼천포에는 7월 중순 전어 금어기가 끝나면 횟집 수족관에 전어가 채워진다. 가장 이른 시기에 전어맛을 볼 수 있는 곳이다. 7월 말이면 전어축제도 펼쳐진다. 이 무렵 가덕만 명지전통시장, 마산 어시장, 사천항, 광양망덕포구, 보성율촌항, 서천홍원항, 충남 무창포, 김포 전류리 등 강과 바다가 만나는 포구와 어시장에서 연이어 전어축제가 시작된다. 작은 포구에서 도심 마트는 물론 강원도 산골까지 한반도는 전어 굽는 냄새로 진동한다. 추석에 고향으로 내려와 전어 맛에 여름철에 잃은 입맛을 되찾은 도심사람들의 식탐이 시작될 무렵 전어의 귀환은 절정에 이른다. 가을전어의 고소함이란 이렇게 다 자란 살이 오르고 뼈가 억센 전어를 구울 때 나는 냄새와 그 맛을 말한다. 그 냄새가 '집 나간 며느리'를 돌아오게 하는 그 냄새다.

2020102301000539600021401

맛도 좋아 엽전(돈)을 세지 않고 먹었다. 어민들은 '봄은 칠산에 조구둠벙이여, 가을은 망덕에 전어둠벙'이라 했다. 섬진강하구 망덕포구에 어부들이 모여들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사천에서는 '돈 주러 간다고 해서 돈어'라고 부르기도 했다. 가덕과 진해만에서 잡히는 전어를 '떡전어'라고 불렀다. 큰 것은 체장이 30㎝ 너비는 6㎝에 이르는데 보통 3년 이상 자란 전어다. 인근 갯벌에 먹이가 풍부하고 거센 조류의 영향을 받아 육질도 쫄깃쫄깃해 서해산 전어와 다르다고 한다.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원〉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